블룸버그통신이 최근 한국 누리꾼들 사이에 도는 밈(meme)을 언급하며 인공지능(AI) 붐이 반도체 엔지니어 일부를 하룻밤 새 억만장자로 만들어버렸다는 세태를 꼬집었다. 블룸버그 오피니언의 아시아 테크 담당 칼럼니스트 캐서린 소벡은 20일 게재한 칼럼을 통해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의 파업 예고 사태를 ‘AI 시대의 첫 번째 대형 노사 격돌’로 분석했다.
소벡은 CNN과 ABC뉴스를 거친 테크 저널리스트 출신으로, 블룸버그 오피니언에서 아시아 기술 산업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지난달 23일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앞에서 열린 삼성전자 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의 투쟁 결의대회에서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소벡은 이번 갈등의 핵심을 “기술에 밀려난 노동자들이 기업에 맞서는 싸움이 아니라, 가진 자와 더 가진 자 사이의 싸움(a fight between the haves and the have-mores)”이라고 규정했다. 삼성전자(005930)는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755% 급등했다. 삼성 반도체 부문 노조는 현행 성과급 상한제 폐지와 영업이익의 15% 배분을 요구하고 있다.
이 요구의 배경에는 선례가 있다. 경쟁사 SK하이닉스(000660)는 최근 성과급 상한제를 없애고, 노조 압력에 따라 영업이익의 10%를 직원 풀에 배분하기로 합의했다. 소벡은 “노동 행동은 서로를 자극하기 마련이고, 삼성 직원들의 요구는 놀랍지 않다”고 짚었다.
◇왜 70%는 파업에 반대하나
주목할 만한 대목은 여론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약 70%가 파업을 ‘부적절’하다고 답했다. 소벡은 이를 “재벌 옹호가 아니라 파업이 국가 경쟁력과 거시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로 해석했다. 삼성은 한국 전체 수출의 22.8%, 국내 증시 시가총액의 26%를 차지한다. 김민석 국무총리가 파업이 “경제에 큰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배경이다. 법원이 지난 18일 회사 측의 파업 금지 가처분 신청을 부분 인용했지만, 노조 측은 오는 21일까지 막판 합의가 없으면 파업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다.
소벡은 여기서 한국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을 짚었다. “산업 구조가 더 다변화되어 있다면 정부가 한 기업의 파업에 이토록 취약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역설적으로 이 집중은 삼성 직원들에게 막대한 협상 레버리지를 준 동시에, 경영진과 정책 입안자들에게는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부담을 안겼다.
이번 분쟁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AI 모델 구축 경쟁에 나선 기업들은 전력 부족이나 지정학적 긴장에만 취약한 게 아니라 ‘소수의 고숙련 핵심 인력’에도 취약하다고 소벡은 지적했다.
삼성전자 사측 대표교섭위원인 여명구 DS(반도체 부문) 피플팀장(왼쪽 사진)과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 최승호 위원장(오른쪽 사진)이 지난 18일 정부세종청사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열리는 2차 사후조정 회의에 각각 참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소벡은 삼성의 노사 관계 역사도 비판했다. 삼성은 오랫동안 노조와 협력하는 법을 배우는 대신 이를 저지하는 데 집중해왔다는 것이다. 그 결과 노사간 신뢰도 쌓이지 않았고, 타협하는 법도 몸에 배지 않은 채 고위험 파업을 맞게 됐다.
법원 결정이 파업의 즉각적 여파를 줄일 수 있어도, 이번 공개 충돌이 드러낸 조직 내 사기 저하 문제는 남는다고도 지적했다. 삼성이 수년간 불투명한 임원 보상에 대한 불만을 받아온 점도 언급됐다.
◇AI 패자들이 들고일어날 때를 대비하라
소벡은 칼럼 말미에 정책적 함의를 제시했다. 반도체 인재 부족은 글로벌 현상이므로 각국 정부는 명문대만이 아니라 직업 교육 프로그램, 기술 고등학교, 재직자 재훈련을 통해 인재 파이프라인을 지금 당장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협력해 직원들에게 국내 반도체 생산의 국가안보적 중요성을 적극 알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기술 혁명의 도구를 만드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레버리지를 발견했다”면서도 “그들의 반발은 AI 비판론자들이 우려하는 K자형(양극화) 경제를 더 심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AI의 승자들이 들고일어날 때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AI의 패자들이 들고일어날 때는 어떻게 될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삼성전자 노사 사후조정 이틀째인 지난 19일 경기도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주변에 삼성전자 노조의 파업 관련 현수막(오른쪽)과 파업을 반대하는 시민단체의 손팻말이 걸려 있다. (사진=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