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PU보다 전기가 귀하다"…전쟁·AI가 바꾼 에너지 패권

해외

이데일리,

2026년 5월 20일, 오후 04:00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지난 2월 말 페르시아만을 가로지른 미사일로 시작된 전쟁이 글로벌 에너지 지도를 통째로 흔들었다. 이란 전쟁의 충격파는 단순한 유가 급등에 그치지 않았다. 석유와 가스가 얼마나 불안정한 기반 위에 서 있는지를 세계에 다시 한번 각인시킨 경고탄이었다.

지식경제부 제2차관을 역임한 김정관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이데일리DB.
지식경제부 제2차관을 역임한 김정관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은 20일 BKL 퍼스펙티브스 기고에서 “세계는 석유국가(petrostate)에서 전기국가(electrostate)로의 대전환을 서두르고 있다”고 밝혔다. 이미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해 말 발간한 ‘2026 세계에너지전망’에서 “세계는 전기의 시대로 본격 진입했다”고 선언했다. 전 세계 전기화율은 2010년 17%에서 2023년 21%로 높아졌고, 2030년에는 25% 이상, 2050년에는 최대 50%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지난달 21일 전기화 가속과 화석연료 감축을 위한 광범위한 계획을 발표했고, 우리 정부도 지난 4월 ‘에너지대전환 추진계획’을 통해 에너지의 전기 전환을 공식 선언했다.

김 고문에 따르면 전력 수요를 끌어올리는 압박은 두 갈래에서 동시에 밀려오고 있다. 하나는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AIDC)가 촉발한 신규 수요, 다른 하나는 석유·가스를 전기로 대체하는 전환 수요다. 고성능 서버가 쉬지 않고 돌아가는 AIDC에서는 단 1초의 정전도 치명적인 데이터 손실로 이어진다.

김 고문은 “현장에서 ‘그래픽처리장치(GPU)보다 전기가 더 귀하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온다”고 전했다.

미국에서는 AIDC 급증으로 전기요금 상승과 계통 혼잡이 심해지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빅테크에 “발전소를 직접 짓든지, 전력을 알아서 조달하라”고 주문하기에 이르렀다. 전기차와 히트펌프도 전환 수요의 양대 축이다. 이란 전쟁으로 유가가 급등하면서 전기차의 상대적 경제성이 부각돼 수요가 다시 빠르게 살아나고 있고, EU는 2030년까지 히트펌프 3000만대 이상을 보급해 가스 난방을 대체한다는 계획이다.

문제는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김 고문은 “안정적인 전력 공급의 더 큰 병목 구간은 발전이 아니라 전력망”이라고 짚었다. 그는 정부가 원전·소형모듈원전(SMR)·수소발전 등 무탄소 전원믹스를 재정립하는 한편, 건설·양도(BT) 방식 도입으로 민간 자본을 전력망 확충에 끌어들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기업에도 인식의 전환을 촉구했다. 김 고문은 “전기 다소비 기업은 전기요금 상승과 공급 불안에 수동적으로 끌려 다녀서는 안 된다”며 “태양광·수소연료전지 등 자체 발전 설비와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선제적으로 구축해 전력 자립도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상발전소(VPP), 마이크로그리드, AI 기반 에너지테크는 전력 수요 폭발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로 꼽혔다.

김 고문은 “전기를 단순한 원가 항목이 아니라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는 비즈니스 도메인으로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이 시급하다”며 “전기를 누가 더 잘 다루느냐가 국가와 기업의 미래 경쟁력을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의 한 전기차 충전소 모습.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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