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빅벤'으로 알려진 엘리자베스 타워 인근에 영국 국기가 펄럭이고 있다. (사진=로이터)
물가 둔화를 이끈 주요 요인은 에너지다. 지난 4월 1일 발효된 영국 에너지규제청(Ofgem)의 가격상한제 조정으로 전기요금이 전월 대비 8.4% 하락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전기요금이 2.9% 올랐던 것과 대조된다. 가스요금도 4.4% 내렸다. ONS 수석 이코노미스트 그랜트 피츠너는 “정부의 에너지 요금 지원 패키지가 변동·고정 요금을 낮췄고, 중동 분쟁 이전의 낮은 국제 도매 에너지 가격이 에너지규제청 상한제에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초콜릿·육류 등 식품 가격 하락과 패키지 여행 비용 감소도 물가를 끌어내렸다.
◇이란전 충격, 이미 연료비에서 시작됐다
가격상한제 혜택이 가정용 전기·가스요금에 집중된 탓에, 국제유가 직격탄을 맞은 유류비는 다른 세상 얘기였다. 소비자 연료비는 4월 한 달간 전년 대비 23% 급등했다. 2022년 9월 이후 최대 상승폭이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이 지난 2월 28일 시작된 이후 국제 유가가 가파르게 오른 결과다.
더 큰 충격은 예고돼 있다. 영국의 가스요금 상한제는 분기마다 업데이트되는 구조로, 오는 7월 조정 시 전형적인 가구 기준 요금이 13% 인상될 것으로 예상된다. 캐피털 이코노믹스는 이번 물가 둔화를 “폭풍 전 고요함”이라고 표현하며 “앞으로 닥칠 인플레이션 급등의 지속성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연말 영국 CPI가 4%를 웃돌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영란은행(BoE)도 이미 인플레이션 전망치를 대폭 상향 조정했다. BoE의 가장 비관적인 시나리오에서는 2027년 초 6.2%까지 치솟을 수 있다. 중간 시나리오에서는 연말 3.7%를 정점으로 전망하고 있다.
영국은 앞서 10개월 연속 주요 7개국(G7) 국가 중 가장 높은 연간 물가상승률을 기록했다. 지난 4월에는 미국에 1위 자리를 내줬지만, 국제통화기금(IMF)을 포함한 주요 기관들은 올해 말 영국이 다시 G7 최고 인플레이션 국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영국 소비자물가 상승률(CPI) 추이. (단위: %, 자료: 영국 국가통계청·블룸버그)
이번 물가 지표는 BoE의 고민을 오히려 깊게 만들었다. 예상보다 낮은 물가와 함께 고용 지표도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4월까지 석 달간 고용주들이 14만명 이상의 직원을 줄였고, 청년 실업률은 2015년 이후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영국 실업률은 올해 1~3월 5.0%로 2025년 12월~2026년 2월의 4.9%에서 소폭 상승했다.
시장은 이번 지표를 토대로 BoE의 6월 금리 인상 가능성을 20% 미만으로 낮춰 잡았다. 지난주 한때 50%에 달했던 확률이 급격히 낮아진 것이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의 댄 핸슨·아나 안드라데·맷 버니 팀은 “4월 CPI 지표는 6월보다 7월 금리 인상 쪽으로 저울을 기울인다”고 분석했다. 슈로더스의 시니어 이코노미스트 조지 브라운은 “노동시장 연착륙이 2차 파급효과(second-round effects) 위험을 제한할 것”이라면서도 “BoE가 매파적 기조를 유지하겠지만, 결국 금리 인상 직전까지만 갈 것”이라고 봤다. 노무라의 유럽 이코노미스트 조시 앤더슨은 “관건은 근로자들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기 시작하는지 여부”라며 “에너지 비용이 크지 않은 서비스업체들도 가격 인상에 나선다면, 그때 비로소 BoE가 금리 인상을 결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국 파운드화 가치는 이날 4월 CPI 발표 직후 달러 대비 한때 0.1% 하락해 1.3376달러까지 내렸으나 이후 낙폭 대부분을 회복했다. 영국 국채(길트·Gilt) 10년물 금리는 6bp(베이시스포인트·1bp=0.01%p) 하락해 5.07%를 기록했다.
한편 레이첼 리브스 영국 재무장관은 이란발 에너지 가격 충격에 대응해 추가 가계 지원책을 20~21일 잇따라 발표할 예정이다. 오는 9월 시행 예정인 연료세 인상 취소와 주요 식품에 대한 대형 슈퍼마켓 자율 가격 동결 도입 등이 검토되고 있다.
향후 변수는 이란 전쟁의 규모와 지속 기간이다. BoE는 전쟁 전개 양상에 따라 3가지 시나리오를 설정해 두고 있다. 앤드루 베일리 총재 등 금리결정위원회(MPC) 위원 4명은 이날 오후 의회 재무위원회에 출석해 이란 전쟁이 영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최신 평가를 밝힐 예정이다. 오는 7월 MPC 결정까지 남은 약 두 달이 영국 통화정책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19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 위치한 영란은행(BOE) 건물 전경. (사진=로이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