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 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달러를 정리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블룸버그에 따르면 코스피는 최근 1년간 150% 이상 급등하며 전 세계 주요 증시 중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SK하이닉스(000660)와 삼성전자(005930)를 중심으로 한 반도체 업종이 글로벌 AI 투자 열풍의 수혜를 직접 받은 결과다.
반면 원화 가치는 올해 들어 달러 대비 약 4% 하락했다. 지난 3월 말에는 달러당 1500원을 돌파해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7년 만에 최저 수준을 찍었다. 이후 5월 들어서도 중동 긴장 고조로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다시 넘어서면서 원화는 3월 저점 근처까지 재차 밀렸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의 주간 거래 종가(오후 3시30분 기준)는 전날보다 11.1원 오른 1517.2원이다. 1504.7원에서 출발한 환율은 이날 장 중 1519.4원에서 고점을 형성하며 1520원대를 위협하기도 했다.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0.41% 올라 7847.71에 마감했다.
블룸버그는 “통화와 증시의 이러한 디커플링(괴리)은 이례적”이라며 “수출 주도형 경제에서는 증시 강세가 통화 강세를 동반하는 것이 통상적”이라고 짚었다.
코스피 지수와 원·달러 환율 추이 (단위: 포인트(좌축), 달러당 원(우축), 자료: 블룸버그)
코스피-원화 연동이 깨진 이유는 단기적 악재가 아니라 구조적 변화에 있다. 한국은행은 경상수지 흑자로 쌓인 해외 자산의 성격이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과거에는 경상흑자 대부분이 외환보유액으로 흡수됐지만, 이제는 가계와 기관의 해외 포트폴리오 투자로 빠져나가는 비중이 크게 늘었다. 빠르게 진행되는 고령화로 퇴직 자금을 고수익 해외 자산에 투자하려는 수요가 커진 탓이다. 한국은행은 경상수지 흑자와 원화 강세의 상관관계가 2015년경부터 이미 약화하기 시작했다고 보고 있다.
주식시장 내부 구조도 변했다. 외국인이 국내 주식을 팔아도 국내 투자자들이 그 물량을 받아내면서 증시는 버티지만, 이 과정에서 외화가 유입되지 않아 원화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원·달러 환율과 한국 경상수지 추이 (단위: 10억달러(우축), 달러당 원(좌축), 자료: 한국은행·블룸버그)
원화는 구조적 약점 위에 단기 악재까지 맞닥뜨렸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으로 국제유가가 급등한 것이 대표적이다. 한국은 에너지 수요의 거의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에 유가 상승은 곧 달러 수요 증가로 직결된다. 지정학적 불안이 글로벌 위험 선호 심리를 위축시키는 것도 원화에 불리하다. 원화는 글로벌 무역·성장 심리의 바로미터로 통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우리 정부가 미국과의 무역 협상 패키지로 3500억 달러(약 530조원)를 미국에 투자하기로 약속한 것도 부담이다. 이 투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원화를 대규모로 달러로 환전해야 한다는 우려가 시장에서 제기되고 있다.
◇정부 방어 나섰지만 효과는 단기적
당국의 대응도 없지 않았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은 작년 말 이후 투기적 거래를 경고하는 구두 개입을 강화했다. 한국은행 데이터에 따르면 외환 당국은 지난해 4분기에만 원화 방어를 위해 225억 달러를 시장에 순매도했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해외 주식 매각 수익의 국내 재투자 시 세제 혜택, 해외 자회사 배당 비과세 비율 상향(95→100%) 등 자본 유출 억제책도 내놨다. 하지만 이란 전쟁 발발 이후 원화는 다시 약세로 돌아서 효과가 단기에 그쳤다.
◇국민연금·한미 스와프 논의가 관건
향후 원화 흐름을 좌우할 변수로는 두 가지가 주목된다. 하나는 국민연금의 환헤지 정책 변화다. 국민연금공단은 지난 4월 환헤지 한도를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원화 수요를 늘려 환율 방어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 하나는 한미 통화 스와프 논의다. 정책 당국이 보다 항구적인 해법을 찾는 과정에서 스와프 협정 가능성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협정이 성사될 경우 투기적 원화 매도 심리를 억제하는 강력한 심리적 방어선이 될 수 있다.
원화 약세의 구조적 배경이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렵다는 점에서, 코스피 강세와 원화 약세의 괴리는 당분간 이어질 공산이 크다. 한미 무역 협상 결과와 중동 정세, 국민연금의 실제 환헤지 조정 속도가 달러·원 환율의 향방을 결정할 핵심 변수로 꼽힌다.
22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 종가가 나오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1506.1원)보다 11.1원 오른 1517.2원에 주간 거래를 마감했다. (사진=뉴스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