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시, 독립적으로 운영하라”던 트럼프…우회적 금리인하 압박(종합)

해외

이데일리,

2026년 5월 23일, 오전 04:47

[뉴욕=이데일리 김상윤 특파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케빈 워시 신임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에게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존중하겠다며 “스스로 판단해 자신의 방식대로 하라”고 말했다.

하지만 곧바로 “경제가 호황일 때 연준이 과민 반응할 필요는 없다”며 저금리 선호 메시지를 재차 강조하면서, 시장에서는 워시 체제가 출범하자마자 정치적 압박과 인플레이션 대응이라는 이중 과제에 직면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케빈 워시 신임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취임 선서식에서 워시 의장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AFP)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열린 워시 의장 취임식에서 “케빈이 완전히 독립적이길 원한다”며 “나를 보지 말고 누구도 신경 쓰지 말고 당신이 해야 할 일을 하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우리는 인플레이션을 멈추길 원하지만 위대함(greatness)을 멈추길 원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경제가 붐(boom)하고 있을 때는 그냥 계속 붐하게 두면 된다”고 말했다.

또 “케빈은 경제가 강하게 성장하는 것이 반드시 인플레이션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최근 중동 전쟁과 유가 급등 여파로 인플레이션 우려가 다시 커지는 상황에서도 연준이 지나치게 긴축적으로 대응하지 말아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우회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WSJ은 이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는 연준 독립성을 강조하면서도 실제로는 워시 의장이 저금리 기조를 유지해주길 기대하는 상반된 메시지를 동시에 보냈다고 분석했다.

워시 의장은 취임 연설에서 “연준의 사명은 물가 안정과 최대 고용을 촉진하는 것”이라며 “지혜와 명확성, 독립성과 결단력을 바탕으로 이런 목표를 추구할 때 인플레이션은 낮아지고 성장은 강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같은 방식으로 미국이 더욱 번영할 수 있고 국제적 위상이 더욱 공고해질 것”이라며 “이 같은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개혁 지향적인 연준을 이끌 것”이라고 강조했다.

워시 의장은 또 “과거의 성공과 잘못으로부터 배우고 경직된 틀과 모델에서 벗어나며 청렴과 성과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워시 의장이 연준 독립성 원칙을 강조하면서도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해온 연준 개혁 필요성에도 호응하는 메시지를 내놨다고 해석하고 있다.

워시 의장은 연준의 6조7000억달러 규모 대차대조표 축소와 새로운 인플레이션 분석 체계 도입, 대국민 소통 방식 개편 등을 포함한 대대적인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특히 금융위기 이후 비대해진 연준의 역할을 축소하고 보다 전통적인 중앙은행 체제로 되돌리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워시 의장은 취임 연설에서 “에너지와 목적의식을 갖고 역할을 수행하겠다”며 1987년 같은 장소에서 취임한 앨런 그린스펀 전 연준 의장을 언급했다.

반면 자신이 연준 이사로 재직했던 시절 의장이었던 벤 버냉키 전 의장에 대해서는 별도로 언급하지 않았다.

WSJ은 이를 두고 워시 의장이 금융위기 이후 버냉키 체제에서 확대된 연준의 시장 개입과 대차대조표 운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평가했다.

이날 취임식은 워시 의장의 공화당 내 오랜 인맥도 부각시켰다. 워시 의장은 클래런스 토머스 연방대법관 앞에서 취임 선서를 했고, 행사에는 브렛 캐버노 연방대법관과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 댄 퀘일 전 부통령 등 공화당 핵심 인사들도 참석했다.

워시 의장은 과거 스탠퍼드대 재학 시절 토머스 대법관 인준 과정에서 백악관 인턴으로 일한 인연도 소개했다.

하지만 워시 의장 앞에 놓인 통화정책 환경은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최근 미국과 이란 간 전쟁 장기화 우려로 국제유가가 급등하고 있고, 호르무즈 해협 물류 차질까지 겹치면서 시장에서는 에너지발 인플레이션 재확산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날 발표된 미시간대 소비자심리지수에서는 5∼10년 장기 기대 인플레이션이 3.9%로 상승하며 7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1년 기대 인플레이션 역시 4.8%로 올라 소비자들의 물가 불안이 여전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준 내부에서도 매파 기류가 강해지고 있다. 크리스토퍼 월러 연준 이사는 이날 독일 프랑크푸르트 행사에서 “연준의 다음 조치는 금리 인하만큼 금리 인상 가능성도 열려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정책 성명에서 ‘완화 편향(easing bias)’ 문구를 제거해야 한다”며 “인플레이션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또 “물가 기대심리가 흔들린다면 금리 인상을 지지하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는 연내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까지 일부 반영하기 시작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금리스와프 시장은 이날 12월까지 연준이 0.25%포인트 금리를 추가 인상할 가능성을 가격에 반영했다.

연준은 지난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연 3.5∼3.75%로 동결했지만, 내부 균열은 갈수록 커지는 분위기다.

당시 회의에서는 4명의 위원이 반대표를 던졌고, 이 중 3명은 성명서에 포함된 향후 금리 인하 시사 문구에 반대했다. 4명의 위원이 동시에 반대표를 행사한 것은 1992년 이후 처음이다.

의사록에서도 다수의 연준 인사들은 인플레이션이 목표치인 2%를 지속적으로 웃돌 경우 금리 인상을 검토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취임식에서 연준 위원들이 “각자 결정을 내리겠지만 결국 케빈의 말을 듣게 될 것”이라며 워시 의장의 영향력을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 연준의 금리 결정은 의장 단독이 아니라 위원회 표결 방식으로 이뤄진다. 현재 투표권을 가진 연준 인사들 상당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한 인물이 아니어서 워시 의장이 내부 공감대를 얼마나 빠르게 구축할 수 있을지가 초기 리더십의 핵심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