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호텔값 급등에 '있는 사람'만 여름휴가 떠난다

해외

이데일리,

2026년 5월 28일, 오후 10:51

[이데일리 장영은 기자] 미국에서 항공권과 호텔 숙박료가 크게 오르면서 올 여름휴가가 고소득층과 중·저소득층을 가르는 또 하나의 ‘K자형 양극화’ 현상으로 번지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연료비 급등과 물가 상승으로 여행 비용이 치솟자 서민층과 중산층은 여행을 미루거나 취소하는 반면, 부유층은 가격 부담에도 불구하고 휴가 계획을 그대로 유지하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사진= AFP)
로이터에 따르면 최근 딜로이트 설문조사에서 미국인의 45%만이 이미 올 여름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답했는데, 이는 지난 6년 간 가장 낮은 수준이다. 특히 연소득 10만~19만 9000달러 중산층 가구에서 여름 여행 계획 비율이 1년 전 45%에서 37%로 크게 떨어지며 가장 큰 감소폭을 보였다.

항공업계에서도 소비 양극화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로버트 아이섬 아메리칸항공 최고경영자(CEO)는 전날 열린 번스타인 컨퍼런스에서 “여행 수요가 분명 K자형 패턴을 보이고 있다”며 “고소득층 승객 수요는 여전히 강한 반면 중·저소득층 수요는 상대적으로 뒤처지고 있다”고 말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다만 그는 “전 소득계층에 걸쳐 여행 수요가 여전히 성장세이며, 레저(여가) 여행 수요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incredibly)’ 강하다”고 덧붙였다.

미 정부 통계에 따르면 4월 항공요금은 1년 전보다 20% 이상 뛰었다. 로이터는 이 같은 상승세 배경으로 2월 말부터 본격화한 미국의 이란 공격 여파로 연료비가 크게 오른 점을 지목했다. 항공사들은 유류비 부담을 상쇄하기 위해 운임과 각종 수수료를 인상하고 있는데, 이는 상대적으로 가격에 민감한 이코노미석 승객에게 더 큰 타격을 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여름철 국제선 예약은 크게 위축되고 있다. 여행사 인텔트래블(InteleTravel)에 따르면 올 여름 미국발 해외 여행 예약은 1년 전보다 약 25% 줄었다. 인텔트래블의 제임스 페라라 CEO는 “이코노미 운임은 급등했지만, 프리미엄 좌석 운임 상승률은 약 7%에 그치고 있다”며 “상대적으로 고소득층에겐 비즈니스·일등석 가격 인상이 훨씬 감내할 만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중·저소득층 소비자 가운데 여행을 포기하지 않은 이들은 예약 시점을 최대한 늦추며 ‘할인 대기’에 나서는 모습이다. 또 비용을 줄이기 위해 해외 대신 국내 여행지로 방향을 틀거나, 항공 대신 자동차 여행·크루즈 상품 등 숙박·식사·활동을 묶은 패키지를 선택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여행 양극화는 호텔 시장에서도 나타난다. 로이터는 업계 관계자를 인용해 저가·이코노미 호텔 수요는 둔화돼 일부 업체들이 객실을 채우기 위해 가격을 할인하는 반면, 고급 호텔은 여전히 견조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 계열 투어리즘 이코노믹스의 아란 라이언 산업연구 디렉터는 “청년층과 불완전 고용 상태에 놓인 이들은 점점 더 여행 시장에 발을 들이기 어려워지고 있다”며 “그럼에도 올 여름 여행 수요 자체는 플러스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개별 소비자들의 체감도는 더 극명하다. 로이터는 미국 애틀랜타에 사는 24세 펜싱 선수 카마르 안드레아스의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올 여름 스페인 여행을 계획했지만 항공권 가격이 예상했던 1000달러의 두 배인 2000달러 수준까지 오르자 결국 여행을 취소했다. 안드레아스는 로이터에 “몇몇 필수적인 해외 대회 원정은 가야겠지만, 그마저도 가격이 좀 내려가기를 기다린 뒤 최대한 늦게 예약하고 있다”며 “지금 항공권 가격은 말 그대로 ‘황당한(absurd)’ 수준”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미국 여름휴가 시장이 ‘여행을 계속 즐길 여력이 있는 계층’과 ‘물가 부담에 여행을 줄이거나 포기하는 계층’으로 갈라지는 현상이 향후 소비 전반의 양극화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단면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여행 수요의 헤드라인 지표는 여전히 견조하지만, 그 이면에선 소득·자산 격차가 여가·휴가의 격차로 빠르게 번지는 모습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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