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반도체 부족하면 ‘기존 계약 무시·우선 배분’ 강제 추진

해외

이데일리,

2026년 5월 29일, 오전 09:27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유럽연합(EU)이 반도체 부족 사태가 벌어질 경우 공급망에 직접 개입하는 강력한 비상권한 도입을 추진한다. 칩 제조사에 위기 대응에 긴요한 제품을 우선 생산하도록 강제하고, 이를 위해 기존 계약까지 무시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사진=AFP)
28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EU는 다음 주 반도체법(Chips Act) 개정안 초안을 공개할 예정이다. 초안에는 회원국들의 반도체 공동구매를 허용하는 방안도 담겼다. 산업 공급망에 EU가 직접 개입하는 권한을 한층 확대하는 조치다. 반도체법은 칩부터 클라우드컴퓨팅, 인공지능(AI)까지 미국 기술 의존에서 벗어나려는 EU의 광범위한 노력의 일부다.

법안 초안은 무기·의료기기·디지털 인프라 등 핵심 품목의 공급을 위협하는 반도체 부족 사태가 발생하면 EU 집행위원회에 광범위한 권한을 부여하도록 했다. 집행위는 공급망 생산능력 관련 정보 제출 요구에 응하지 않는 기업에 최대 30만유로(약 5억 2000만원)의 벌금을 물릴 수 있다.

또 “반도체 제조사가 위기 핵심 제품 주문을 우선 처리하도록 강제하고, 기존 계약을 무시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회원국 공동구매를 통해 “협상력을 강화하고 한정된 물량을 두고 회원국끼리 경쟁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도 했다. 이 경우 집행위가 팬데믹 당시 백신을 확보할 때처럼 여러 회원국을 대신해 중앙 구매자 역할을 맡는다.

이러한 EU의 대응은 미국과 중국의 갈등 속에서 반도체가 경제적 압박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우려와 맞물려 있다. 지난해 네덜란드 정부가 중국계 소유주로부터 반도체 기업 넥스페리아의 경영권을 박탈하자, 중국이 자국 공장 생산분의 수출을 가로막았고 일부 유럽 완성차업체가 감산에 내몰린 것이 위험성을 단적으로 드러낸 사례였다.

특히 고성능 칩을 대만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현재 상황이 불안을 키우고 있다. EU는 반도체법에서 최첨단 칩에 대해 “미국과 아시아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한다”고 스스로 인정한다. 첨단 반도체 생산의 90% 이상이 TSMC의 본거지인 대만에서 이뤄진다. 현재 EU의 세계 반도체 생산 비중은 10% 미만으로, 2030년까지 점유율을 두 배로 늘리겠다던 계획은 차질을 빚고 있다.

FT는 “중국은 대만이 자국의 영유권 주장을 계속 거부하면 무력을 사용하겠다고 거듭 위협해왔다”며 “역내에서 충돌이 벌어지면 스마트폰과 AI 데이터센터부터 자동차, 의료장비까지 전자기기에 필수적인 부품의 공급난이 전 세계로 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EU 집행위는 논평을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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