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젬픽·위고비가 뇌까지 바꾼다"…과학자들이 밝혀낸 충격적 사실

해외

이데일리,

2026년 5월 29일, 오전 11:13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미국 콜로라도대 앤슈츠의 앨리슨 샤피로 교수는 최근 GLP-1 약물을 복용한 환자들의 뇌를 복용 전후로 촬영했다가 깜짝 놀랄 만한 사실을 발견했다. 불과 몇 달 만에 ‘현저성 네트워크’(salience network·무엇에 주의를 집중할지 가려내는 뇌 신경망)의 연결이 크게 늘어나 있었기 때문이다. 샤피로 교수는 “이런 효과를 예상하지 못했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정말 모른다”고 말했다.

(사진=AFP)
비만·당뇨 치료제로 출발한 오젬픽 등 ‘GLP-1’ 계열 약물이 식욕뿐 아니라 뇌 자체를 바꾸고 있다는 정황이 잇따라 포착되며, 중독·신경·정신질환 치료제로서의 가능성에 기대가 커지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GLP-1 계열에는 수십 년간 연구돼온 당뇨약과 세마글루타이드 성분의 오젬픽·위고비, 티르제파타이드 성분의 마운자로·젭바운드가 포함된다.

과학자들이 GLP-1 약물의 효과를 중독·인지·신경 퇴행은 물론 동기와 쾌락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연구하고 있지만, 정작 약물이 뇌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는 아직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전 세계 수천만명이 복용하면서, 비만·당뇨약이 뜻하지 않게 ‘역대 최대 규모의 신경과학 실험’이 되고 있다는 게 WP의 진단이다.

◇최신 연구서 “식욕 넘어 감정·욕구까지 건드려”

GLP-1 약물은 식욕·혈당·소화를 조절하는 호르몬을 모방한다. 그런데 이 호르몬의 수용체는 위장뿐 아니라 심장과 뇌 깊숙한 곳까지 퍼져 있다. 과학자들은 약물이 뇌에 직접 작용하는지, 아니면 염증을 줄이고 대사를 개선하는 식으로 간접적으로 신경계를 바꾸는지 아직 규명하지 못했다. 분자가 커서 뇌를 보호하는 혈액뇌장벽을 얼마나 통과하는지조차 불확실하다. 다만 약물이 과활성 면역세포를 진정시켜 뇌 염증과 인지 저하를 늦추거나, 뇌세포가 더 효율적으로 기능하도록 직접 돕는다는 연구가 동시에 나오고 있다. 소화기관과 뇌를 잇는 미주신경을 통해 기분·갈망·인지에 영향을 줄 가능성도 제기된다.

효과가 긍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일부 복용자는 ‘브레인 포그’를 호소하고, 더 모호하게는 감정이 밋밋해지는 현상을 토로한다. 쾌락과 동기가 줄고 취미에 대한 흥미, 심지어 성욕까지 떨어졌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약물이 해로운 충동만 눌러주는 것인지, 아니면 사람의 성격까지 바꿔놓는 것인지 경계가 모호하다는 물음도 나온다.

◇술·마약 갈망 잠재우지만 쾌락·성욕도 무뎌질 우려

가장 활발히 연구되는 분야는 중독이다. 오젬픽이 다이어트 약으로 대중화되기 한참 전부터, 미국 국립약물남용연구소(NIDA)의 로렌초 레지오 박사는 이 약물을 중독 치료제로 연구해왔다. 2013년 스웨덴 동물실험에서 GLP-1 유사 약물을 투여한 설치류가 술을 덜 마신다는 결과가 단서였다. 과학자들은 GLP-1이 쾌감과 반복 행동을 결정하는 도파민 보상체계를 둔화시켜 갈망을 줄일 수 있다고 본다.

연구 범위도 알코올을 넘어 니코틴·마약·도박·폭식까지 넓어지고 있다. 특정 물질이 아니라 ‘갈망·충동’ 그 자체를 건드리는 약일 수 있다는 추정에서다. 일라이 릴리는 티르제파타이드의 알코올사용장애 치료 효과를 검증하는 대규모 임상을 진행 중으로, 이르면 올해 말이나 내년 초 결과가 나온다.

다만 갈망을 잠재우는 바로 그 작용이 식사·성욕 같은 건강한 욕구까지 함께 억누를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레지오 박사는 “매우 흥미로운 시기지만,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안전성 자료를 거듭 검토했으나 이를 광범위한 문제로 결론짓지는 않았다.

◇알츠하이머 임상 실패했지만 새 가능성 제시…정신질환 등 기대

중독에 이어 알츠하이머·파킨슨병·정신질환에서도 가능성이 타진되고 있다. GLP-1을 알츠하이머 치료제로 쓰려던 시도는 최근 큰 벽에 부딪혔다. 노보노디스크는 지난해 11월 경도인지장애나 초기 알츠하이머 환자 38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 3상에서, 세마글루타이드가 가짜 약(위약)을 투여한 환자들에 비해 인지·기능 저하를 의미 있게 늦추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데이터를 뜯어보니 희망의 실마리도 있었다. 임상에 참여하지 않은 알츠하이머신약발견재단의 에런 버스틴 연구원은 인지기능 자체는 나아지지 않았지만, 뇌척수액에서 신경 염증·퇴행 정도를 보여주는 지표가 약 10% 호전된 점에 주목했다. 이는 수십년간 알츠하이머의 원인으로 지목돼온 아밀로이드·타우 단백질 너머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최근 연구 흐름과도 맞닿는 대목이다.

일부 연구자는 약이 효과가 없었던 게 아니라 너무 늦게 투여됐을 뿐이라고 봤다. 이미 진행된 병을 되돌리는 ‘치료제’가 아니라, 발병 전에 미리 써서 병을 늦추거나 막는 ‘예방약’으로는 통할 수 있다는 것이다.

파킨슨병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테드 도슨 존스홉킨스대 신경퇴행성질환 교수는 동물실험에선 효과가 보였지만 사람 대상 임상에선 뚜렷하지 않았다며, 용량이 너무 낮았을 수 있어 더 젊은 환자에게 고용량을 시험하는 방안이 거론된다고 전했다.

정신질환은 또 다른 유망 분야다. 염증·대사·정신건강이 생각보다 훨씬 밀접하게 얽혀 있다는 증거가 쌓이면서, GLP-1이 불안·강박·우울감을 덜어준다는 환자들의 증언이 주목받고 있다. GLP-1 연구의 개척자인 대니얼 드러커 토론토대 교수는 “혈당 때문에 약을 먹었는데 훨씬 행복해졌다거나, 한 번 먹고 브레인 포그가 걷혔다는 사례가 넘쳐난다”고 말했다.

이처럼 알츠하이머·파킨슨병부터 정신질환까지 다양한 후속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GLP-1 약물은 아직 어떤 정신·신경 질환에도 치료제로 정식 승인을 받지 못했다. 과학자들은 항우울·항불안 효과를 뒷받침하는 연구도 아직 초기 단계라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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