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AFP)
◇‘묵인의 시대’ 끝났다… 세금 고지서 한 장에서 출발
시작은 한 장의 세금 고지서였다. 베이징의 정보기술(IT) 기업 임원 톰(가명)은 수년간 별 탈 없이 해외 주식을 사고팔았다. 중국에서 개인의 해외 증시 거래는 일부 허용된 통로를 빼면 원칙적으로 불법이지만, 당국이 오랫동안 손대지 않은 탓에 사실상 묵인되는 관행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세무당국이 톰에게 해외 주식 차익에 대한 세금 10만위안(약 2209만원)을 물리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곧이어 규제당국은 톰과 수십만 명이 해외 거래에 이용하던 통로 자체를 막아버렸다.
중국인의 자금 해외 이전은 오랫동안 당국과의 ‘고양이와 쥐’ 게임이었다. 1인당 연간 해외 송금 한도는 5만달러(약 7478만원)지만, 지하은행과 가상자산(암호화폐), 심지어 가짜 수입 거래까지 동원해 더 많은 돈이 빠져나갔다. 수년간 유출을 조용히 조여온 당국이, 톰의 사례처럼 보이지 않게 압박해온 일들을 한꺼번에 수면 위로 끌어올리며 본격적인 단속의 막을 열었다.
◇왜 지금인가…말라붙은 나라 곳간
배경에는 절박한 세수 사정이 있다. 지방정부는 수년간 토지 매각을 주요 재원으로 삼아 중앙 의존도를 낮춰왔지만, 부동산 관련 세입이 2025년까지 5년간 48% 급감하면서 새 재원을 찾아야 했다. 지난해 개인소득세 수입은 2024년보다 11.5% 늘어 1조6200억위안(약 357조 8000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지만, 펑크 난 세수를 메우기엔 역부족이었다.
역설적인 것은, 부동산 침체야말로 중국 부자들이 자산을 해외로 옮기려는 큰 이유라는 점이다. 푸투와 롱브리지로 모두 거래해봤다는 상하이의 컨설팅 회사 직원 루이스는 “집값은 폭락하는데 30년짜리 주택담보대출 감옥에 갇히라는 거냐”고 토로했다. 부동산중개업체 센타라인에 따르면 중국 집값은 2021년 정점 대비 약 3분의 1 떨어졌다. 국제금융협회(IIF)는 지난해 중국 가계·기관·기업이 해외로 옮긴 자금이 약 8070억달러(약 1207조원)로 사상 최대였다고 추정했다. 부자들이 떠나려 할수록 당국은 더 세게 묶어두려는 셈이다.
◇어떻게 진행되나…타깃은 누구
당국의 칼날은 한 분야에 그치지 않는다. 신탁 구조 정비, 중국 기업의 해외 자금 조달 통로인 ‘레드칩 상장’ 제동, 외국인이 출자한 사모펀드(PEF)·벤처캐피털(VC) 증세 등 부유층 자산이 흘러가는 길마다 단속의 그물이 쳐졌다.
가장 큰 충격은 지난주 당국이 푸투홀딩스와 타이거브로커스(모회사 업핀테크), 롱브리지증권을 본토 내 무허가 영업 혐의로 겨냥하면서 나왔다. 당국은 이들 3사에 최소 3억3000만달러(약 4935억원)의 벌금을 예고하고, 국내외 법인에서 발생한 ‘불법 이익’을 모두 몰수하겠다고 밝혔다. 그 여파로 푸투와 업핀테크 주가가 하루 만에 시가총액의 4분의 1 이상이 증발할 만큼 급락했다.
중신증권은 이번 단속으로 홍콩 내 자산 최대 320억달러(약 47조 8560억원)가 영향을 받을 수 있고, 이 가운데 1800억홍콩달러(약 34조 5744억원)가 푸투 한 곳에 몰려 있다고 추산했다. 세 회사는 모두 당국에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제재는 사전에 큰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중국 증권감독관리위원회(증감회)와 인민은행, 공안부 등 8개 기관이 본토 투자자를 겨냥한 무허가 역외 투자 서비스를 뿌리 뽑겠다는 합동 계획을 내놓은 직후, 약 10분 만에 3사 제재가 이어졌다.
(사진=AFP)
부유층 ‘개인’에 대한 압박도 동시에 진행됐다. 베이징·상하이·광저우에서는 계좌에 3000만달러(약 449억원) 이상을 둔 부자들을 상대로 최소 2018년까지 거슬러 올라가 세무조사를 할 수 있다는 통보가 잇따랐다.
외국 여권을 취득했다가 중국으로 돌아온 이들이 많았으며 일부는 역외 신탁으로 자산을 관리해왔다. 이들은 투자 차익에 최대 20%의 세금과 연체 가산세를 물게 됐다.
다만 공식 지침 없이 개인과 지방 세무당국 간 사적 협상으로만 진행돼, 최종 추징액은 때로 흥정의 대상이 된다. 당국은 일부 극단적인 경우 경찰 개입까지 거론하며 압박 수위를 높인 것으로 전해졌다.
신탁과 펀드도 사정권에 들어왔다. 일부 역외 신탁 수익자에게는 배당과 주식 매각 차익 등 자산 정보를 상세히 보고하라는 요구가 떨어졌다.
외국인이 본토 자산을 살 수 있는 적격외국유한파트너(QFLP) 펀드 구조에 대한 세금도 인상됐다. 새 법을 만든 게 아니라 기존 세법을 조용히 재해석하는 방식이다.
로펌 DLA파이퍼에 따르면 종전 약 10%였던 양도차익 원천징수세가 25%의 법인소득세로 두 배 넘게 뛰었고, 일부는 소급 적용돼 외국인 투자자들이 과거 신고분을 다시 들여다봐야 하는 처지가 됐다.
홍콩 증권거래소. (사진=AFP)
홍콩이 정면으로 영향권에 들어왔다. 일부 은행은 이미 본토 고객의 예금·투자 계좌 개설 심사를 강화했고, 주요 중국계 은행들은 본토 거주자의 투자·자산관리 계좌 개설을 중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홍콩 대형 은행들은 그간 중국 자금을 끌어들여 짭짤한 수익을 올려왔다. BOC홍콩은 지난해 고액 국경 간 고객이 21% 급증했고, HSBC도 2023년 1월 이후 홍콩 고객이 약 30% 늘었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따르면 홍콩은 최근 스위스를 근소하게 제치고 세계 최대 국경 간 자산관리 허브에 올라섰는데, 그 동력이 곧장 약해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크리스토퍼 마퀴스 케임브리지대 중국경영학 교수는 “부유한 중국 고객을 역외에서 상대하는 일은 이제 훨씬 복잡하고 위험한 사업이 됐다”며 “이들을 적극적으로 상대해온 곳들은 자신이 다음 차례가 될까 두려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본토 투자자가 해외 주식을 살 통로는 더 좁아졌다. 본토 증권계좌에 50만위안(약 1억 1045만원) 이상을 둔 투자자는 교차거래(스톡커넥트)로 홍콩 상장사를 살 수 있지만, 다른 증시에 투자하려면 적격국내기관투자자(QDII) 펀드를 거쳐야 한다. 이 제도의 한도는 1760억달러(약 263조원)로, 중국 가계 저축 25조달러(약 3경 7388조원)에 비하면 극히 일부다.
부자들의 셈법도 바뀌고 있다. 중국 투자자들은 인공지능(AI) 열풍에 힘입은 미국 기술주에 특히 끌렸지만, 이제는 그 수익이 규제 리스크를 감수할 만하지 않다고 보는 이가 늘었다. 미 증시로 지난 1년 새 돈을 두 배로 불렸다는 한 부유한 투자자 좡은 더는 규제당국의 분노를 살 생각이 없다며 보유 주식을 정리하고, 그 돈을 중국 본토 A주에 넣기로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