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 타결 가능성은…" 전 주이란 대사가 본 미·이란 MOU

해외

이데일리,

2026년 6월 22일, 오전 08:44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미국과 이란이 종전 양해각서(MOU)에 전자 서명한 지 하루 만에 첫번째 조항부터 시험대에 올랐다. MOU 제1조는 ‘레바논을 포함한 모든 전선에서 군사작전을 즉각적이고 영구적으로 종료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서명 다음 날인 18일(현지시간) 밤사이 헤즈볼라의 공격으로 이스라엘군 전차대대장 등 4명이 전사했고, 이스라엘은 곧바로 레바논 남부에 대대적인 보복 공습을 가해 18일 자정 이후로만 최소 47명이 숨졌다. 19일 스위스에서 예정됐던 미·이란 첫 후속 실무협상도 결국 연기됐다.

다행히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 19일 미국과 카타르, 이란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헤즈볼라가 휴전에 합의하면서 이날 오후 4시부터 휴전이 발효됐다. 다만 휴전 발효 직후에도 한동안 공습이 계속됐다는 주장이 나왔고, 그날 밤 드론 공격으로 민간인 2명이 숨졌다는 보도까지 나오면서 휴전이 안정적으로 유지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주이란 대사와 외교부 경제외교조정관을 지낸 윤강현 법무법인 세종 고문이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김태형 기자)
2021~2024년 주이란 대사를 역임한 윤강현 법무법인 세종 고문의 우려가 현실화한 장면이다. 윤 전 대사는 최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MOU에 담긴 여러 조항 중 이스라엘이 합의에 재를 뿌릴 수 있는 가장 위험한 지점이 바로 제1조”라고 꼽았다. 윤 전 대사는 외교부 경제외교조정관(차관보)과 주이란대사를 지내며 미·이란 핵협상 실무를 직접 경험한 인사다.

◇“美, 시간에 쫓겨 예상 밖 양보…완전 타결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

윤 전 대사는 이번 MOU를 “굉장히 중요한 진전”이라면서도 “양측이 극단으로 몰려 합의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결과”라고 평가했다. 호르무즈 해협이 넉 달 가까이 막히면서 국제사회는 전략비축유 방출과 수요 억제로 버텨왔지만, 그 한계가 6월 중순이었다는 것이다. 미국 내 원유 비축분도 사상 최저로 떨어진 상태였다.

특히 그는 “이번 합의 14개 항을 보면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많은 미국의 양보가 들어가 있다”며 “그래서 미국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 내부에서도 ‘이건 거의 항복’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윤 전 대사는 60일로 설정된 후속협상 시한에 대해 “완전 타결될 가능성은 제로(0)”라며 두 가지 근거를 들었다.

첫번째 장애물은 핵심 쟁점인 우라늄 농축 권리를 둘러싼 미·이란의 입장 차이다. 이란은 “나머지는 다 양보할테니 농축 권리만 인정하라”는 입장이고, 미국은 “농축 자체를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더 근본적인 장애물은 이스라엘이라는 변수다. 그는 “MOU 1조의 레바논 관련 조항이 이스라엘이 합의에 재를 뿌릴 가장 위험한 지점”이라고 했다. 윤 전 대사는 “이스라엘은 지금 이 합의가 끝나는 걸 원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본인이 부패 혐의로 수감될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상황에서, 미·이란 합의가 그대로 이행되는 것이야말로 이스라엘에는 “최악의 시나리오”라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네타냐후 총리에게 격앙된 반응을 보인 것도 이런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고 그는 짚었다.

주이란 대사와 외교부 경제외교조정관을 지낸 윤강현 법무법인 세종 고문이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김태형 기자)
◇“미국 의문의 1패, 이스라엘 최대 패자, 이란은 진 듯 안 진 승자”

윤 전 대사는 이번 전쟁의 종전 협상 과정을 지켜보며 “미국은 ‘의문의 1패’, 이스라엘은 ‘이긴 것 같지만 사실상 최대 패자’, 이란은 ‘진 것처럼 보이지만 최대 승자’”라는 한줄평을 내놨다.

미국은 군사적으로는 이란을 압도했지만, 정작 전쟁의 본래 목표였던 정권교체(레짐 체인지)·핵 프로그램 제거·탄도미사일 능력 제거·친이란 대리세력(프록시) 지원 차단 가운데 단 하나도 달성하지 못했다. 오히려 이란 지도부 대거 제거가 혁명수비대(IRGC)의 ‘세대교체’로 이어지며 체제는 더 공고해졌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이스라엘을 ‘최대 패자’로 판정한 이유에 대해서 그는 “이스라엘이 가장 두려워할 시나리오는 이란이 핵 프로그램을 유지한 채 제재를 받는 것보다 이란이 핵을 포기하고 정상국가로 복귀하는 것”이라며 “정상국가가 된 이란이 막대한 에너지 수입을 국력 강화에 재투자하게 되면 이스라엘에 훨씬 위협적”이라고 했다.

반면 이란은 합의가 그대로 이행될 경우 빠른 속도로 국력을 회복할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게 그의 핵심 논지다. 동결자산 해제와 정상적 교역 재개가 이뤄진다면 세계 4위 원유·2위 가스 보유국인 이란은 ‘이전보다 훨씬 강한 이란’으로 재탄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란 재건시장, 한국엔 분명한 기회”

윤 전 대사는 이 대목에서 한국의 역할론을 강조했다. 그는 “이란은 제재 국면에서 어쩔 수 없이 중국·러시아에 기대왔다”며 “중장기적으로 다양한 종속 관계가 고착화될 것을 우려하는 이란은 중국 및 러시아에 대해 경계심이 있는 반면, 한국은 멀리 떨어진 작은 나라이면서 정서적으로 가깝다”고 말했다.

한국의 강점은 설계·시공·감리를 일괄 수행할 수 있는 컨소시엄 역량이다. 윤 전 대사는 “서방 국가들은 디벨로퍼로는 들어올 수 있어도 직접 시공할 능력이 없다”며 “한국은 더 싼 가격, 고품질, 빠른 납기를 동시에 제공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나라”라고 강조했다. 이란뿐 아니라 이번 전쟁에서 함께 타격을 입은 주변 중동국 인프라 재건까지 합치면 “우리 건설사들이 모두 달려들어도 남을 만큼의 물량”이라는 게 그의 전망이다.

윤 전 대사는 다만 한국 기업들의 무분별한 조기 진출에는 분명한 선을 그었다. 제재가 명목상 해제되더라도 미국의 이란 제재 시스템은 매우 치밀하게 구성돼 있어 달러 결제망을 거치는 거래는 여전히 2차 제재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경고다. 그는 “독소조항들이 있는 만큼 섣불리 단독으로 들어가면 안 되고, ‘팀 코리아’ 차원에서 정부·기업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3000억 달러(약 460조원) 이란 재건 기금 파이낸싱 전략에 대해서도 신중론을 폈다. 그는 “현재 단계에서 한국이 먼저 자금 지원 카드를 꺼낼 필요는 없다”며 “미국이 정중히 협조를 요청해올 때 다양한 현안들과 연계해 협상 카드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이란 대사와 외교부 경제외교조정관을 지낸 윤강현 법무법인 세종 고문이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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