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저축률 2.6% '뚝'…그래도 '소비절벽'은 아니다?

해외

이데일리,

2026년 6월 22일, 오전 09:44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미국의 개인저축률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소비자들이 분수에 넘게 지출하고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지만, 인구구조 변화와 가계가 쌓아둔 두툼한 현금성 자산을 감안하면 ‘소비절벽’이 임박했다는 신호로 보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진=AFP)
21일(현지시간)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미국의 개인저축률은 지난 4월 2.6%로 하락했다. 2008년 초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투자은행 베어스턴스가 무너졌을 때 이후 단 한 차례를 빼면 가장 낮은 수준이다. 세금을 떼고 난 뒤 남는 소득의 비율을 가리키는 개인저축률은 1970~2000년 약 10%를 유지했다. 1년 전만 해도 5% 안팎이었으나 올해 4월 그 절반까지 주저앉은 것이다.

최근 미국에선 연간 물가상승률이 3년 만에 처음으로 임금 상승률을 앞질러 급여를 갉아먹고 있다. 여기에 그동안 저축률을 떠받쳐온 세금 환급금마저 끊겼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에 따른 환급금이 대부분 지급 완료된 것이다. 환급액은 가구당 지난해보다 약 350달러(약 53만원) 많았다.

세금 환급은 받을 때 잠깐 소득을 늘려주는 일회성 자금이어서, 그 돈이 들어오는 동안에는 저축을 헐어 쓸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이 외부 수혈이 끊기면서 저축률은 더 낮게 찍힐 수밖에 없게 됐다는 게 이코노미스트의 설명이다.

미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개인소비가 지난 1년 약 2% 성장하며 견조한 흐름을 보였음에도 저축률만 놓고 보면 가계가 현금에 쪼들리는 것처럼 비친다.

하지만 이런 흐름에는 우려와 거리가 먼 설명도 있다. 우선 인구구조다. 현재 미국 내 연금생활자 비중은 사상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노동시장에서 벗어난 인구 가운데 65세 이상이 처음으로 절반을 넘어섰다.

이에 따라 사회보장연금 수령자가 지난달 5450만명에 달했다. 전체 인구(약 3억4900만명)의 15.6%로 10명 당 1.6명꼴이다. 이들은 당장의 소득은 적지만 평생 모은 저축을 헐어 지출을 이어간다. 저축률은 끌어내리되 재정적으로는 별 해가 없는 셈이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이코노미스트들의 연구에 따르면 전형적인 연금생활자는 매년 소득보다 1만5000~2만2000달러(약 2300만~3373만원)를 더 쓴다. 노년층 전반의 이런 ‘디저축’(dissaving·저축을 헐어 쓰는 행위)은 전체 저축률을 5%포인트 남짓 끌어내린다. 지금의 낮은 수치 일부는 젊은 가계의 돈이 떨어진 게 아니라, 노년층이 과거 저축을 헐어 쓰고 높은 자산가치에 힘입어 더 자유롭게 지갑을 여는 모습을 반영한 것이다.

가계 대차대조표를 봐도 소비절벽을 우려하긴 어려워 보인다. 저축률은 매달 소득에서 남은 돈을 잴 뿐, 가계가 이미 쥔 현금의 총량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연준 데이터를 보면 현금과 은행 예금, 머니마켓펀드(MMF)를 합친 유동자산은 연간 가처분소득의 약 84%에 이른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30년간의 70% 미만과 비교하면 크게 올라선 수치다. 이 완충 장치는 부유층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자산 기준 하위 절반 가계의 평균 유동성 잔고도 약 1만2800달러(약 1962만원)로 실질 기준 팬데믹 이전 어느 때보다 많다.

실제 소비 지표에도 위축 징후는 없다. 지난달 카드 지출(주유 제외)은 전년 동월 대비 약 5% 늘어 4년 만에 가장 빠른 증가세에 근접했다. 중산층을 대표하는 슈퍼마켓 월마트의 올 1분기 거래 건수는 2024년 이후 가장 빠르게 늘었다.

다만 소비자가 무적이 된 것은 아니다. 증시가 크게 무너지면 노년층마저 지출을 줄일 수 있어서다.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을 둘러싼 미·이란 잠정 합의에도 유가는 수개월간 높게 유지될 가능성이 크고, 트럼프 행정부의 징벌적 관세를 둘러싼 혼란도 거세질 수 있다. 미국·캐나다·멕시코 무역협정(USMCA)의 운명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소비자는 여전히 많은 것을 견딜 수 있지만, 무엇이든 견딜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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