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D 밴스 미국 부통령. (사진=AFP)
이번 회담은 지난 17일 미국과 이란이 체결한 임시 평화 양해각서(MOU) 이후 처음 열린 최고위급 협상이다. 당시 양국은 전면적인 적대행위 중단과 후속 협상을 통한 항구적 합의 도출에 원칙적으로 동의했지만, 직후 레바논 전선이 다시 격화되고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폐쇄를 선언하면서 합의가 무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었다.
실제 주말 동안 긴장은 최고조에 달했다. 이란은 이스라엘이 레바논 남부 공습을 계속하고 있다며 호르무즈 해협을 다시 폐쇄한다고 발표했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해협 봉쇄가 현실화될 경우 군사행동 재개도 불사하겠다고 경고했다. 국제유가는 급등했고 원유 수송선들은 해협 진입을 주저하면서 에너지 시장 전반에 불안감이 확산됐다.
그러나 협상은 예정대로 진행됐고 결과는 예상보다 긍정적이었다. J.D. 밴스 부통령은 회담 종료 후 기자들에게 “성공적인 최종 합의를 위한 매우 좋은 토대를 마련했다”며 “주말 동안 위협도 있었고 불만도 있었지만 결국 대화는 계속됐고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고 평가했다.
밴스 부통령에 따르면 양측은 향후 60일 동안 기술 실무협상을 계속 이어가면서 핵 문제와 제재 완화, 동결자산 처리, 휴전 감시 체계 등을 포함한 포괄적 평화협정 초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미국은 협상 진전에 대한 첫 보상 조치로 즉각 제재 완화에 나섰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이날 재무부가 이란산 원유와 석유 관련 제품의 생산·인도·판매를 허용하는 60일짜리 일반면허를 발급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이란은 오는 8월 21일까지 원유와 석유화학 제품을 자유롭게 수출하고 대금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이는 미국이 지난 4월 이란 항만과 원유 수출망을 사실상 봉쇄한 이후 처음으로 이뤄진 대규모 제재 완화 조치다.
이란은 봉쇄 이전 하루 150만 배럴 이상을 수출했지만 미국의 해상 차단 조치 이후 수출 규모가 지난달 하루 26만 배럴 수준까지 급감했다. 특히 중국이 이란 원유 수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향후 중국행 수출이 빠르게 회복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압바스 아락치 이란 외무장관도 이날 소셜미디어를 통해 미국이 원유 및 석유화학 제품 수출 허용 외에도 일부 해외 동결자산 해제와 전후 재건·개발 프로그램 착수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특히 양측은 동결자산 관리 방안에서도 일정한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밴스 부통령은 백악관 특사인 재러드 쿠슈너가 중재한 새로운 구조를 통해 미국과 카타르가 해제된 이란 자금의 사용처를 공동 관리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자금이 미국산 옥수수와 대두, 밀 등 농산물 구매에 사용될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핵 문제를 둘러싼 양측의 입장 차는 여전히 남아 있다. 밴스 부통령은 이란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의 복귀를 허용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지만, 이란은 핵 프로그램 자체에 대한 새로운 양보는 없었다고 반박했다.
에스마일 바가이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국영 IRNA 통신에 “핵 문제와 관련한 논의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으며 새로운 의무를 수용한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란은 지난해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 이후 IAEA 사찰을 대폭 제한했고, 지난 2월 전면전이 시작된 뒤에는 사실상 사찰 활동을 전면 중단한 상태다. 이란은 자국 핵 프로그램이 민간 에너지 개발 목적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미국과 이스라엘은 핵무기 개발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다.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긴장도 빠르게 완화되는 분위기다. 베선트 장관은 이란이 해협의 자유롭고 개방적인 항행을 보장하기로 약속했다고 밝혔다. 미국 중부사령부(CENTCOM) 역시 이란이 폐쇄를 선언했음에도 실제 해협은 차단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전쟁 기간 동안 위치추적장치(AIS)를 끄고 운항하던 이란 유조선들도 다시 신호를 송출하기 시작했다. 미국 해군은 지난 19일 이란 항만과 연안 지역에 대한 봉쇄 조치를 공식 해제했으며, 원유 수송선들의 움직임도 점차 정상화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케이플러(Kpler)에 따르면 미국과 이란이 양해각서를 체결한 이후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 수는 빠르게 증가했다. 지난 21일에는 통과 선박 수가 35척까지 늘었지만, 이란의 추가 폐쇄 발언으로 혼선이 빚어지면서 22일에는 17척으로 감소했다. 다만 이는 전쟁 이전 하루 평균 100척 이상이 통과하던 수준에는 여전히 크게 못 미친다.
이번 합의에 따라 이란은 향후 60일 동안 선박들의 호르무즈 해협 통과를 통행료 없이 허용해야 한다. 이후에는 오만과 걸프 국가들이 참여하는 새로운 관리 체계를 논의하게 되며, 장기적으로는 해협 이용료 부과 문제가 협상 테이블에 오를 가능성도 있다.
레바논 전선 역시 진정 기미를 보이고 있다. 미국과 이란이 체결한 임시 평화협정에는 레바논 내 모든 적대행위 중단 조항이 포함돼 있다. 이스라엘은 협정 당사국은 아니지만 지난 20일 새로운 휴전에 동의했고, 이후 대규모 교전은 사실상 중단된 상태라고 레바논 당국은 밝혔다.
레바논 남부 나바티예 지역의 병원장 하산 와즈니는 로이터통신에 “전쟁이 시작된 이후 가장 오래 지속되는 휴전”이라며 “처음으로 이틀 연속 포격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군도 레바논 접경 북부 지역 8개 마을에 적용했던 안전 제한 조치를 해제하며 긴장 완화 신호를 보냈다.
다만 완전한 평화까지는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스라엘은 이번 협상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으며 레바논 내 병력 철수 계획도 밝히지 않고 있다. 이츠하크 헤르조그 이스라엘 대통령은 “외교적 해결을 반대하지 않는다”면서도 “이란이 제재 완화로 확보한 자금을 군사력 증강이나 헤즈볼라 등 역내 대리세력 지원에 사용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일단 협상 진전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우려가 완화되고 이란산 원유 수출 재개 가능성이 커지면서 국제유가는 이날 다시 하락세를 나타냈다.
전 세계 원유 공급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이 정상화 수순에 들어갈 경우 최근 전쟁으로 촉발됐던 에너지 공급 충격도 상당 부분 완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향후 60일 동안 진행될 핵 협상과 제재 해제 협상이 최종 합의로 이어질 수 있을지가 중동 정세 안정의 최대 변수로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