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공사 현장 (사진=연합뉴스)
새 아파트가 완공되기까지는 최소 3~5년이 걸린다. 반면 관리처분인가 이후 이주는 불과 몇 달 사이에 진행된다. 공급은 미래의 이야기지만 멸실은 현재의 현실이다. 공급 확대 정책이 시작되는 순간 시장에는 집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주택이 줄어드는 현상이 먼저 나타난다. 공급 확대 정책이 역설적으로 현재의 주거 불안을 키우는 이유다.
더 큰 문제는 이번 이주수요를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시장이 흡수할 수 있는 환경 자체가 무너졌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재건축 이주가 발생하더라도 일정 수준의 전세 물량과 매매 물량이 이를 흡수하는 완충장치 역할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토지거래허가구역 확대 지정으로 거래 가능 물량을 크게 줄었고, 임대차 2법 시행 이후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로 신규 전세 매물의 유통량이 감소했다. 여기에 최근 정부의 실거주 중심 정책 기조가 강화되면서 비거주자의 매물 공급은 더욱 위축되고 있다. 실거주 의무와 각종 세제 및 금융 규제는 투자 목적의 주택 공급을 줄이는 방향으로 작용했고, 결국 매매시장과 임대차시장 모두 유통 물량이 크게 감소했다.
문제는 이 시점에도 서울 전역에서 대규모 정비사업 이주가 시작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주수요는 줄어든 시장에 새롭게 발생하는 수요가 아니다. 공급이 감소한 시장 위에 또 하나의 거대한 수요가 덧씌워지는 것이다. 과거에는 받아낼 수 있었던 이주수요를 지금의 시장은 감당할 여력이 크게 줄어든 상태다.
서울시 정비사업 현황을 보면 이러한 위험은 더욱 분명해진다. 관리처분인가 단계 물량만 보더라도 송파구는 1만2276가구로 가장 많고, 성북구 9804가구, 동작구 9642가구, 은평구 7711가구, 강북구 7041가구가 뒤를 잇는다. 여기에 사업시행인가 단계는 서대문구는 1만5185가구, 강남구 9732가구, 영등포구 9380가구가 향후 이주를 앞두고 있다. 앞으로 서울 곳곳에서 수만 가구가 새로운 거주지를 동시에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서울시 자치구별 정비사업 사업시행인가, 관리처분 인가 자료수 (그래픽=도시와경제)
이주가 시작되면 조합원은 이주비 대출을 활용해 새로운 주택을 찾고, 세입자는 보증금을 돌려받아 인근 지역으로 이동한다. 중소형 아파트와 빌라는 빠르게 소진되고 전셋값과 월세는 상승한다. 결국 전셋값 상승은 다시 매매가격을 자극한다. 높은 전세금을 부담하느니 중저가 아파트를 매수하겠다는 실수요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전세가격이 매매가격의 하방을 지지하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영향은 정비사업 지역에만 머물지 않는다. 송파의 이주수요는 강동과 광진으로, 서대문의 이주수요는 마포와 은평으로, 동작의 이주수요는 관악과 금천까지 확산된다. 하나의 정비사업이 주변 지역 전체의 가격을 움직이는 풍선효과를 만들어낸다. 결국 서울 전역이 하나의 생활권으로 연결된 상황에서 특정 지역의 멸실은 인접 지역의 임대차시장과 매매시장까지 동시에 흔드는 연쇄작용을 일으킨다.
정비사업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처럼 서울 전역에서 동시에 속도전을 벌이는 방식은 시장의 흡수 능력을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 공급은 몇 년 뒤에 나타나지만 멸실은 오늘 발생한다. 여기에 토지거래허가구역, 임대차 2법, 실거주 중심 정책으로 매매와 전세의 유통 물량이 감소하면서 과거처럼 이주수요를 흡수하던 시장의 완충 기능마저 크게 약화됐다. 결국 각종 규제로 시장의 정상적인 거래 기능이 크게 위축된 상황에서 공급 확대 정책이 오히려 현재의 전세난과 매매가격 상승을 자극하게 된다.
이제 정책의 초점은 단순히 공급 물량을 발표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자치구별 관리처분인가와 사업시행인가 물량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이주 시기를 분산하고, 이주수요를 흡수할 수 있는 임대주택과 금융 지원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공급 확대의 성과가 나타나기 훨씬 전에 서울은 또 한 번 대규모 전세난과 가격 상승을 경험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제 정비사업 진행 단계에서 사업시행인가 물량과 관리처분인가 물량은 앞으로 어느 지역에서 전세난이 심화되고 집값이 움직일지를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선행지표다. 공급 계획보다 멸실의 속도를 먼저 읽어야 시장을 볼 수 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사진=도시와경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