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대란에 애플·MS도 흔든…중소 업체는 '생존 위기'

해외

이데일리,

2026년 6월 28일, 오후 04:04

[이데일리 임유경 기자] 인공지능(AI) 인프라 확충 경쟁이 촉발한 메모리 공급난이 글로벌 전자업계를 뒤흔들고 있다.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대형 기업들은 제품 가격 인상으로 대응에 나섰지만, 공급망 내에서 협상력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은 생존을 걱정해야 할 수준의 타격을 받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애플이 제품 가격 인상을 발표한 지난 2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의 애플 매장 앞을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다. (사진=AFP)
애플이 제품 가격 인상을 발표한 지난 2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의 애플 매장 앞을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다. (사진=AFP)
27일(현지시간) 미 경제매체 CNBC는 통신장비, 의료기기, 소매업 등 다양한 산업의 중소 전자업체들이 메모리 가격 급등에 따른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다고 전했다.

라우터 개발 키트 제작업체 모노 테크놀로지스는 올해 초 인터넷 속도를 높이려는 네트워크 마니아들 사이에서 좋은 반응을 얻으며 600달러짜리 제품을 약 1000대를 생산해 출하했다. 그러나 이후 메모리 공급난이 닥쳤다. 회사가 사용하는 마이크론의 8GB D램 가격이 제품 개발 당시 35달러 수준에서 현재는 300달러까지 치솟은 것이다.

직원 3명으로 운영되는 모노는 현재 제품 가격을 최소 3분의 1 이상 올려 생산을 이어갈지, 메모리 용량을 75% 줄인 저사양 제품을 새로 출시할지를 두고 고심하고 있다. 이미 100달러씩 계약금을 낸 고객 1300명에게 제품을 공급할 수 있을지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토마즈 자만 모노 공동창업자는 CNBC에 “우리 정도의 라우터를 900~1000달러에 판매하면 소비자 입장에선 너무 비싸게 느껴질 것”이라며 “하지만 현재로썬 가격을 올리지 않으면 사양을 최소 수준까지 낮출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방산기업에 통신장비를 공급하는 W5 테크놀로지스는 치솟는 D램 가격으로 서버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올해 초 W5는 위성통신 시뮬레이터에 사용할 서버를 대형 제조업체에 주문했다. 당시 가격은 8839달러로, 2020년의 5373달러보다 크게 오른 수준이었는데, 납기까지 당초 5월에서 8월로 미뤄졌다. 결국 W5는 현재 시험 중인 중고 서버를 고객인 방산업체에 우선 제공하고, 설치를 위해 직원들을 직접 파견하는 비용까지 부담하기로 했다.

일레인 퍼거슨 W5 공동창업자는 “최근 다른 프로젝트를 위해 같은 서버를 다시 주문했는데 가격이 이제 1만 5000달러에 육박한다”며 “납기 역시 언제 받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고, 받기만 해도 운이 좋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어려움은 소비자 전자업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액션캠 업체 고프로는 올해 1분기 말 기준 메모리 가격이 80~115% 급등하면서 사업 지속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된다고 밝혔고, 스피커 제조업체 소노스도 메모리 가격 상승으로 수익성이 악화되며 올해 들어 주가가 23% 하락했다.

시장조사업체 IDC의 나빌라 포팔 애널리스트는 현재 상황을 “절대적인 생존의 위기”라고 진단했다. 그는 “100달러 이하 스마트폰을 생산하는 중소 안드로이드 제조사나 지역 업체들이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있다”며 “메모리 업체들이 대형 고객사 주문을 우선 처리하면서 중소업체들은 아예 메모리를 확보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메모리 부족은 대형 IT 기업도 비껴가지 못했다. 애플은 마이크론의 실적 발표 다음 날인 25일 아이패드와 맥 제품군 가격 인상을 발표했고, 팀 쿡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메모리 공급난을 “100년에 한 번 올 만한 홍수”에 비유했다. 같은 날 MS도 엑스박스 시리즈 S 가격을 약 100달러 인상하며 “게임 콘솔용 저장장치와 메모리 가격은 이미 2.5배 이상 올랐고, 2027년 가을까지 다시 두 배가량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다만 애플과 MS는 막대한 현금 보유액과 강력한 공급망 협상력을 바탕으로 가격 인상을 통해 충격을 흡수할 수 있다. 반면 대부분의 소비자 전자업체들은 수익성이 낮은 데다 이미 인플레이션 압박을 받고 있어 가격을 쉽게 올리기도 어렵다. 업계에서는 메모리 공급업체와 긴밀한 관계를 맺지 못한 기업일수록 공급 부족과 가격 변동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반면 메모리 업체들은 AI발 공급 부족의 최대 수혜를 누리고 있다. 마이크론은 최신 분기 D램 평균판매가격(ASP)이 전년 대비 260% 이상 상승했다고 밝혔으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배 이상 증가했다. 매출총이익률도 지난해 39%에서 약 85%로 뛰었고, 실적 발표 이후 주가는 16% 급등했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등 주요 메모리 업체들도 AI 수요 확대에 따른 메모리 가격 강세의 수혜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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