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AFP)
제재 대상국들은 암호화폐로 무기와 드론, 연료 등을 구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체 토큰과 거래소까지 구축하며 제재망을 빠져나가고 있다. 미국은 이란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인 노비텍스 등을 제재 대상에 올렸고,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관련 자금 10억달러(약 1조5300억원)를 압수했다고 밝혔다.
특히 중국은 이란산 원유 대금을 암호화폐로 세탁하는 핵심 통로가 되고 있다. WSJ에 따르면 그 경로는 네 단계로 이뤄진다. 우선 중국의 구매자가 이란산 원유를 주문하면, 이 구매자는 대금을 위안화로 홍콩에 있는 페이퍼컴퍼니(서류상 회사) 계좌에 입금한다. 이어 페이퍼컴퍼니가 이 돈을 암호화폐로 바꿔 이란이 통제하는 전자지갑으로 보내면, 이란은 현지 거래소에서 이를 자국 통화인 리알로 환전하거나 예멘 후티 반군 등 대리세력의 지갑으로 이전한다.
이란은 최근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까지 암호화폐로 받고 있다. 이란 혁명수비대(IRGC)는 지난 3월 중순부터 해협을 지나는 선박에 원유 1배럴당 약 1달러의 통행료를 물리면서, 이를 비트코인이나 중국 위안화, 스테이블코인(달러 등 실물 자산에 가치를 연동한 암호화폐)으로 결제하도록 했다. 만선 유조선 한 척이 무는 통행료는 최대 200만달러(약 30억원)에 이른다. 국가가 주요 해상 요충지의 통행료를 암호화폐로 요구한 첫 사례로 꼽힌다.
암호화폐 거래소도 이 과정에서 통로 역할을 한다. WSJ는 중국인 엔지니어가 세운 거래소 코인엑스가 이란의 암호화폐 운영을 세계와 연결하는 역할을 키워 왔다고 전했다. 코인엑스 측은 “제재 대상 기관이나 개인에게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며 “제재 지정 이후 어떤 형태의 편의도 알면서 제공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러시아도 암호화폐를 제재 회피에 동원하고 있다. 러시아 국영 원자력기업 로사톰과 연관된 한 자금세탁 사건에서는 100만달러(약 15억원)가 여러 단계를 거쳐 최종적으로 한국의 한 아시아계 업체 계좌로 흘러 들어간 것으로 조사됐다. 국경 없이 이동하는 암호화폐의 특성이 자금 추적을 어렵게 만든 것이다.
북한은 탈취한 가상자산을 자금줄로 삼고 있다. 북한과 연계된 해커들이 빼돌린 암호화폐가 무기 개발 등 자금 조달에 쓰이는 것으로 의심된다.
전문가들은 제재 대상국들이 암호화폐를 국가 차원의 금융 도구로 삼으면서 기존 제재의 실효성이 흔들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이 제재망을 촘촘히 하더라도, 암호화폐를 완전히 차단하기는 쉽지 않다는 우려가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