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이데일리 김상윤 특파원] 미국 뉴욕증시가 7일(현지시간) 인공지능(AI) 랠리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면서 일제히 하락했다. 올해 증시를 이끌었던 반도체주를 중심으로 차익실현 매물이 쏟아진 가운데 국제유가 상승과 국채금리 오름세까지 겹치며 투자심리가 위축됐다.
뉴욕증권거래소 (사진=AFP)
AI 관련 반도체주가 전체 주가를 짓눌렀다. 시장에서는 AI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에 따른 실적 개선 기대가 이미 주가에 상당 부분 반영된 만큼 앞으로는 높아진 시장 기대를 실제 실적으로 입증해야 하는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인식이 확산했다.
특히 삼성전자가 시장 예상을 웃도는 2분기 잠정실적을 발표했음에도 투자자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면서 반도체 업종 전반에 대한 경계심이 더욱 커졌다. AI 투자 확대가 현재의 높은 기업가치를 계속 정당화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다시 제기됐다.
◇반도체주 급락…AI 기대와 현실의 괴리
반도체주 매도세는 아시아 시장에서 시작돼 미국으로 이어졌다. 삼성전자 실적 발표 이후에도 한국 증시에서 반도체주가 약세를 보인 데 이어 뉴욕시장에서도 AI 관련 종목에 대한 차익실현이 확산했다.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SOX)는 4.65% 급락했다. 마이크론은 4.7% 하락했고 AMD는 6.5%, 마벨 테크놀로지는 7.45%, KLA는 7.2% 각각 떨어졌다. 브로드컴도 0.83% 내렸다. 반도체 업종을 추종하는 밴에크 반도체 ETF(SMH)는 3.78% 하락했다.
로이터통신이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가 자체 AI 반도체를 개발하고 있다고 보도한 것도 투자심리를 악화시켰다. 딥시크가 자체 칩 개발에 성공할 경우 엔비디아와 화웨이 등 기존 반도체 공급업체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됐다.
호라이즌인베스트먼트의 자커리 힐 포트폴리오운용 책임자는 “최근 몇 주간 시장의 핵심은 AI 인프라 구축과 반도체, 메모리주가 급등한 이후 나타나는 순환매”라며 “이들 기업에 대한 기대 수준이 거의 충족하기 어려울 정도까지 높아졌다”고 말했다.
오는 11일 나스닥에서 거래를 시작하는 SK하이닉스의 미국 상장도 AI 반도체 투자심리를 가늠할 시험대로 꼽힌다. 최근 반도체주 변동성이 커진 가운데 상장 흥행 여부에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나스닥100지수에 새로 편입된 스페이스X도 거래 첫날 6.8% 하락했다. 주요 증권사들이 잇달아 긍정적인 투자의견을 내놓으며 기업 분석을 시작했지만 차익실현 매물을 막지는 못했다.
◇기술주에서 금융·헬스케어로…순환매 본격화하나
반면 증시 전반에서는 자금이 다른 업종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S&P500 구성 종목 상당수는 상승했고 헬스케어와 금융주가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였다.
일라이 릴리는 2.89% 상승했고 JP모건체이스는 0.44%, 마이크로소프트는 0.5% 각각 올랐다. 월마트도 일부 상품 가격 인하 발표 이후 0.8% 상승했다.
시장에서는 AI·반도체주에서 빠져나온 자금이 시장 밖으로 이탈하기보다는 그동안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업종으로 이동하는 순환매가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UBS 글로벌자산관리의 울리케 호프만-부르하르디 최고투자책임자(CIO)는 “AI 성장 스토리에 대한 확신은 여전하지만 앞으로 증시 상승은 특정 업종이 아니라 시장 전반으로 주도주가 확대되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며 투자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조언했다.
모건스탠리의 마이크 윌슨은 그동안 급등했던 반도체주의 상승 모멘텀이 약해지는 대신 올해 상대적으로 부진했던 초대형 클라우드 기업(하이퍼스케일러)으로 자금이 이동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 같은 격차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밀러 타박의 매트 말리는 “현재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업종 간 순환매보다 기술주 내부의 순환매”라며 “반도체에서 다른 대형 기술주로 자금 이동이 이어진다면 증시 강세 기조는 유지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최근 4~6주간 증시가 횡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이는 4~5월 강한 상승 이후 나타난 숨 고르기 과정일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유가 급등에 인플레 우려…시장 시선은 FOMC 의사록
국제유가는 중동 지정학적 긴장 고조로 급등했다. 호르무즈 해협 인근 선박 공격 소식에 이어 미국 재무부가 이란산 원유 판매를 허용했던 제재 예외 조치를 철회하면서 공급 차질 우려가 커졌다.
ICE선물거래소에서 9월물 브렌트유는 배럴당 74.16달러로 전장보다 3.01% 상승했고, 뉴욕상업거래소에서 8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배럴당 70.44달러로 2.76% 올랐다.
유가 상승은 인플레이션 우려를 다시 자극했다. 에너지 가격이 오르면 최근 둔화 흐름을 보인 물가 상승세가 다시 강해질 수 있다는 우려에 미국 국채 가격은 하락했고 국채금리는 상승했다.
시장에서는 다음 주부터 시작되는 2분기 실적 시즌이 AI 랠리의 지속 여부를 결정할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AI 투자 확대를 주도해온 반도체 기업과 초대형 클라우드 기업들이 높아진 시장 기대를 뛰어넘는 실적과 투자 계획을 제시할 수 있을지가 핵심 변수로 꼽힌다.
야데니리서치의 에드 야데니 대표는 “기술기업, 특히 하이퍼스케일러들이 지나치게 높아진 시장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면 기술주 조정이 나타날 수 있다”면서도 “반대로 그동안 소외됐던 업종들이 양호한 실적을 내면 자금이 이동하면서 증시 전체는 큰 조정을 피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개별 종목 가운데 결제업체 피서브는 JP모건체이스와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미국 대형 은행들에 직불카드 결제망 사업 매각을 논의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상승했다.
한편 시장은 8일 공개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에도 주목하고 있다. 케빈 워시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취임 이후 첫 회의 의사록인 만큼 향후 금리 경로와 통화정책 기조에 대한 새로운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시장은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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