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테크 AI인프라 투자 여력 있나' 불안 확산…증설경쟁에 공급과잉 우려도

해외

이데일리,

2026년 7월 08일, 오후 07:54

[이데일리 임유경 기자] 메모리 업황 피크아웃(정점 통과) 우려가 커지는 것은 단순히 주가가 많이 올랐기 때문만은 아니다. 월가에서는 공급 부족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면서도 빅테크의 인공지능(AI) 투자 규모 유지 여부, 대규모 생산능력(캐파) 증설, 메모리 사용량을 줄이는 기술 혁신 등이 동시에 나타날 경우 업황이 예상보다 빨리 꺾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다만 이는 ‘수요가 사라진다’기보다 ‘성장률이 둔화된다’는 의미다.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7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JP모건은 최근 보고서에서 메모리 기업 주가 하락 배경을 “투자자들은 메모리 공급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데 동의하지만, 클라우드 서비스 기업들의 설비투자(CAPEX)에서 AI 메모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가 지속 가능할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결국 시장의 관심은 ‘메모리가 부족하냐’보다 ‘빅테크가 지금처럼 메모리에 계속 투자할 수 있느냐’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메모리 슈퍼사이클은 마이크로소프트(MS), 메타, 아마존, 알파벳 등 빅테크들이 경쟁적으로 데이터센터를 증설하면서 만들어졌다. AI 서버 한 대에는 기존 서버보다 수배 더 많은 고대역폭메모리(HBM)가 탑재되는 만큼 빅테크의 설비투자 확대는 곧 메모리 수요 증가로 이어졌다.

하지만 빅테크의 AI 투자 규모가 사상 최대 수준에 이르면서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미 5대 빅테크가 밝힌 올해 설비투자 규모는 총 7300억달러에 이른다. JP모건체이스는 “설비투자 규모가 매출의 40% 수준까지 높아졌고, 시장에서는 AI 투자가 수익으로 이어지는 시점과 현금흐름 악화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함께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이 투자 속도를 조절하기 시작하면 반도체 기업의 실적 기대도 함께 낮아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메모리 업체들의 공격적인 증설도 장기적인 변수다.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등을 중심으로 대규모 생산능력 확대 계획을 발표했다. 정부는 향후 5년 안에 국내 메모리 생산능력을 두 배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세웠으며, 양사는 신규 클러스터와 기존 투자 계획을 포함해 총 3200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이는 AI 메모리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생산능력을 선제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지만, 시장에서는 현재의 공급 부족이 대규모 증설로 이어지고 결국 공급 과잉을 초래했던 과거 메모리 사이클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모닝스타의 징지에 위 애널리스트는 “메모리 가격은 결국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며 “향후 10년간 설비투자가 가속화되면 장기적으로 공급 과잉 위험도 커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CLSA의 산지브 라나 애널리스트는 “메모리 업체들은 공급 과잉 조짐이 나타나면 투자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갖고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메모리 가격 급등이 오히려 수요를 위축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투자은행(IB) 베어드의 테드 모턴슨 매니징디렉터는 마켓워치에 “공급 부족이 지속되면서 메모리와 저장장치 가격이 크게 오르고 있으며, 이러한 가격 상승이 이제 소비자 시장과 기업 시장 모두에 부담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실제 애플은 반도체 가격 상승을 이유로 맥북 등 일부 제품의 가격을 인상했다. 업계에서는 메모리 가격 상승 부담이 한계에 이를 경우 스마트폰과 PC 등 일반 IT 기기뿐 아니라 AI 서버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수요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기술 변화도 변수다. 최근 AI 반도체 업계에서는 적은 메모리로 더 많은 연산을 수행하는 기술 개발이 잇따르고 있다. 퀄컴은 HBM 사용량을 크게 줄이는 ‘고대역폭 컴퓨트’ 기술을 공개했다. 엔비디아 대항마로 불리는 AI 반도체 스타트업 세레브라스는 아예 HBM을 사용하지 않는 초대형 칩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구글 역시 AI 모델의 메모리 사용량을 크게 줄이는 압축 알고리즘 ’터보퀀트’를 발표한 바 있다.

빅테크들이 자체 AI 가속기(ASIC) 개발을 확대하는 것도 장기적으로 엔비디아 중심의 AI 반도체 생태계 균열을 가져오고 메모리 수요 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는 요인으로 꼽힌다.

일단 시장에서는 이달 말부터 시작되는 빅테크들의 실적 발표에서 언급될 설비투자 계획을 메모리 업황 피크아웃 여부를 판단할 핵심 지표로 주목하고 있다. AI 투자 증가세가 이어진다면 피크아웃 우려도 잦아들 수 있지만, 투자 속도가 둔화할 경우 현재 제기되는 메모리 사이클 논쟁은 더욱 힘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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