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 인공지능(AI)을 주제로 인터뷰를 진행할 미셸 위트럽 주한 아일랜드 대사는 사회적 논의를 중시했다. AI 기술이 빠르게 발전할수록 그 과정에서 소외되는 이들이 생길 수밖에 없고, 상대적 박탈감과 사회적 불평등·양극화를 줄이려면 사회 구성원들이 기술의 이익과 비용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는 취지에서였다. 속도와 효율을 중시하는 ‘빨리빨리’ 한국인으로선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땐 수사(修辭) 정도로 생각했다. 수개월이 지나 ‘AI 초과이익 재분배’ 논의가 활발해진 지금 그 말의 무게는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AI 호황으로 발생한 초과이익에 대한 고민은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미국에서도 AI 산업의 성장과 부의 집중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민간 조사기관 사크라는 최근 상장한 미 항공우주기업 스페이스X와 두 회사의 추후 기업공개(IPO)로 1만 6000명 이상의 백만장자와 20명 이상의 억만장자가 추가로 나오리라 전망했다. 이러한 부의 효과가 집중되는 미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집값과 생활비가 치솟고 있다.
미국 정치권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달 초 “AI 산업에 너무 많은 돈이 몰려 있고 그 규모도 지나치게 크다”며 AI 기업의 이익을 공공과 나누는 방안을 논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무소속 버니 샌더스(버몬트) 상원의원은 AI 기업의 성과를 국민에게 환원하는 구체적인 방안까지 제시했다. 그는 지난달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을 통해 ‘미국 AI 국부펀드법’을 제안하며 AI 기업에 일회성으로 50%의 세율을 적용하자고 주장했다.
미국 버지니아주 애슈번에 위치한 디지털 리얼티 데이터센터(사진=AFP)
AI 관련 기업들이 막대한 법인세를 내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반론도 있다. 상당한 연구개발 비용과 실패 위험을 감수한 기업에 정당한 보상이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 있다. 어느 주장이 옳은지에 앞서 따질 것은 이러한 논쟁이 왜 발생했느냐다. AI가 사회에 미칠 영향과 그 비용을 누가 부담할지에 대한 충분한 국민적 논의 없었기 때문이다. 1810년대 산업혁명 당시에도 영국 노동자들의 분노는 방직기 등 기계 파괴로 번져 ‘러다이트 운동’이 펼쳐지기도 했다. 당시에도 기술 변화의 충격을 흡수할 제도와 사회적 합의가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였다.
AI 시대에도 마찬가지다. 기술이 향하는 방향을 국민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충분히 설명하고 논의하는 장이 마련돼야 한다. 사회적 합의 과정은 장기적인 발전을 위한 일종의 안전장치라는 인식이 필요한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