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AFP)
물가가 내려간 것은 거의 전적으로 유가 덕분이다. 지난 2월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한 직후 배럴당 100달러(약 15만원)를 크게 웃돌던 국제유가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과 MOU를 맺은 뒤 급락했다. 휴전이 자리 잡고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에너지 수출이 늘면서 이달 70달러대 초반까지 밀렸다.
문제는 물가를 끌어내린 바로 그 요인이 뒤집히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주 이 합의가 “끝났다”고 선언한 데 이어, 이날 MOU가 애초에 “이란을 시험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며 사실상 파기를 선언했다. 그는 이란 선박에 대한 봉쇄를 재개하고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화물에 20%의 통행료를 물리겠다고도 밝혔다.
미국과 이란이 해협을 서로 막겠다고 위협하면서 이날 브렌트유는 6% 뛰어 배럴당 80달러(약 12만원)를 넘어섰다. 지난달 물가를 낮춰준 유가 하락이 이달엔 되레 물가를 밀어 올릴 형국인 셈이다.
변동성이 큰 에너지 가격을 걷어내면 물가 그림은 더 어둡다. 3.8%도 여전히 높은 수치다. 소비자들은 물가가 연 2%를 넘어서면 상승세를 체감하는데, 이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목표치이기도 하다. 케빈 워시 신임 연준 의장은 중앙은행이 이 목표를 5년째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에너지값이 내렸다고 이미 번진 물가 상승분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클라우디아 샴 뉴센추리어드바이저스 수석이코노미스트는 “2월부터 5월까지 오른 에너지 가격, 그리고 그 비용을 떠안은 기업들이 여전히 시스템 안에 남아 있다”며 “그것이 다른 상품이나 서비스 가격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꼬집었다.
에너지와 식품을 뺀 근원물가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하기 전에 이미 2.5%로 높은 편이었고, 5월엔 2.9%까지 올랐다. 기업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비용을 소비자에게 떠넘기면서 상품 가격을 올린 탓이다.
여기에 ‘끈적한 물가’가 겹쳤다. 이발이나 병원 진료, 자동차 수리처럼 서비스 가격은 좀처럼 할인하지 않고 한 방향, 즉 위로만 움직인다. 서비스업의 최대 비용이 인건비인데 임금은 좀처럼 내려가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은 경제의 4분의 3 가까이가 서비스업이어서 문제가 더 크다.
새로운 물가 뇌관도 등장했다. 인공지능(AI)이다. 데이터센터가 우후죽순 들어서며 전기요금은 1년 새 6% 가까이 올랐다. 데이터센터가 메모리 반도체를 싹쓸이하면서 칩값이 뛰자 애플은 아이패드와 맥 가격을 올리겠다고 밝혔다. 아비엘 라인하트 JP모건 선임이코노미스트는 AI 관련 하드웨어 비용이 10% 오를 때마다 소비자물가가 0.1%가량 상승한다고 분석했다.
전쟁 이후 무기 재고를 채우는 일도 물가를 밀어 올릴 요인으로 꼽힌다. 미 국방부는 무기 보충을 위한 추가 예산 876억달러(약 131조원)를 포함해 1조 5000억달러(약 2249조원) 규모의 지출을 요청했다. AI 투자에 무기 생산까지 겹치면 가뜩이나 모자란 기술 부품과 인력 수요가 한꺼번에 몰리게 된다. 조 브루수엘라스 RSM US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이미 강하게 성장하는 경제에 순풍이 불게 된다”며 “그건 인플레이션을 부른다”고 짚었다.
현재 미국인들은 팬데믹 이전보다 대부분의 상품과 서비스에 3분의 1가량을 더 내고 있다. 거스 포셰 PNC파이낸셜서비스그룹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소비자들이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느끼려면 몇 년간 낮은 물가를 겪어야 한다”며 “사람들이 다시 괜찮다고 느끼기까지는 길고 지루한 과정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