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0일 이라크 알라비아 국경 검문소에서 트럭 한 대가 시리아로 넘어가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사진=AFP)
연료유는 선박 연료와 발전용으로 쓰이는 기름으로, 이라크가 수출하는 정제유 가운데 비중이 가장 크다. 하지만 이란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막혀 수출길이 끊기면서 정유공장 저장고가 가득 차 가동을 멈출 위기에 몰렸다. 공장이 서면 휘발유·경유 공급까지 흔들린다. 이라크가 비효율적인 육로 수송에 매달리는 이유다.
문제는 규모다. 트럭 한 대가 싣는 양은 20t, 배럴로 환산하면 135배럴에 불과하다. 반면 선박 한 척은 30만배럴을 실어 해상의 70만배럴급 대형 유조선에 옮겨 싣는다. 배 한 척을 대신하려면 트럭 수천대가 나흘에서 엿새를 달려야 한다는 뜻이다. 지중해 연안 바니야스항에는 이런 트럭이 수천대씩 몰려들고 있다.
시장 관계자들은 지난달 시리아로 실려간 연료유가 60만t을 넘었을 것으로 추산한다. 이라크 석유부는 시리아와 요르단을 합쳐 100만t이 트럭으로 나갔다고 밝혔다. 지난 5월(약 50만t)의 두 배 규모다. 요르단 홍해 항구 아카바를 통해서도 매달 10만t가량이 빠져나가고 있으며, 원유도 소량이지만 같은 방식으로 실려나가고 있다고 트레이더들은 전했다.
이라크의 우회 수출은 시리아 입장에선 내전 상흔을 씻어낼 기회라는 분석이다. 미국이 수년간 이어온 제재를 풀었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근 아메드 알샤라 시리아 대통령을 치켜세웠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국빈 방문했고, 파트릭 푸야네 토탈에너지스 최고경영자(CEO)는 시리아를 송유관 경로 후보로 꼽았다.
라드 알카디리 3TEN32어소시에이츠 매니징파트너는 “이번 전쟁으로 수출 경로 다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각인됐다”며 “1980년대에 팽배했던 이라크식 사고로 되돌아간 셈”이라고 말했다. 호르무즈가 취약해지면 다른 선택지가 무엇이냐를 따지던 시절로 돌아갔다는 얘기다. 트레이더들은 분쟁이 끝나고 해협 통행이 정상화돼도 이라크가 수출 경로 분산을 위해 트럭 수송을 이어갈 것으로 본다.
탈(脫)호르무즈는 이라크만의 일이 아니다. UAE는 기존 송유관으로 동부 항만을 통해 원유 일부를 우회시키면서 신규 송유관 건설을 앞당기고 있다. 사우디는 홍해 얀부항으로 이어지는 송유관을 쓰고 있고, 쿠웨이트는 이웃 국가들과 송유관 확장을 협의 중이다. 전쟁 전까지 호르무즈 해협이 전 세계 석유 공급의 5분의 1이 지나는 길목이었던 만큼, 해협 밖으로 나가는 길을 확보하는 것이 걸프 산유국들의 공통 과제로 떠올랐다는 평가다.
미국도 거들고 있다. 20년 넘게 멈춰 있던 키르쿠크~바니야스 송유관 재가동이 대표적이다. 블룸버그는 지난 14일 토머스 배럭 미 시리아·이라크 특사가 양국 관계자와 셰브런 등 기업을 불러모아 협의를 열었다고 보도했다. 미 국무부도 정부 차원에서 이 사업을 지원하고 있으며 미국 기업이 송유관 건설에 참여할 것으로 본다고 확인했다. 다만 이슬람국가(IS) 잔당이 활동하는 지역을 지나야 해 실제 건설까지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