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기 없이 24시간 40배 베팅…美 개미들 '무기한 선물' 열풍

해외

이데일리,

2026년 7월 20일, 오후 07:16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미국 개인투자자들이 ‘가상자산(암호화폐)에서 가장 위험한 상품’으로 불리는 무기한 선물에 몰려들고 있다. 만기가 없어 1년 내내 24시간 거래되고, 적은 돈으로 수십 배 규모의 베팅을 할 수 있는 상품이다.

(사진=AFP)
(사진=AFP)
19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미국 예측시장 업체 칼시는 지난 5월 무기한 선물을 내놓은 지 일주일도 안 돼 거래대금 10억 달러(약 1조 4913억원)를 끌어모았다. 회사 역사상 가장 빠르게 성장한 상품이다. 무기한 선물은 만기와 실물 인도가 없는 파생상품이다. 비트코인과 같은 자산 가격이 앞으로 오를지 내릴지에만 베팅한다. 만기가 없는 대신 매수 쪽과 매도 쪽이 주기적으로 돈을 주고받는 방식으로 실제 시세에 값을 붙들어 맨다.

성장세는 가파르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에 따르면 암호화폐 무기한 선물 거래량은 2023년 약 30조 달러에서 지난해 약 90조 달러로 세 배가 됐다. 역외 거래소들은 에너지 가격부터 상장을 앞둔 비상장사 가치까지 온갖 자산에 최대 40배 레버리지를 붙여 판다.

미국은 그동안 역외 거래소들과 법정 다툼을 벌여왔지만, 올해 규제 당국이 칼시와 코인베이스 등 국내 업체에 처음으로 이 상품을 허용했다. 마이클 셀리그 미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위원장은 이를 미 자본시장의 “분수령”이라고 평가했다. 금융 혁신을 끌어안겠다는 트럼프 행정부 기조의 연장선이다.

틱톡에서는 앳된 얼굴의 투자자들이 무기한 선물로 벌어 샀다는 스포츠카와 별장을 자랑한다. 지난해 예측시장에서 돈을 빼 싱가포르 거래소 하이퍼리퀴드로 옮겨간 19세 대학생 시카르 세갈은 “높은 레버리지는 굉장하다”며 “짧은 기간에 믿기 힘든 수익률을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현물 거래보다 “100% 더 위험하다”며 “다음 날 아침 일어나면 포지션이 그냥 청산돼 있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위험은 구조에서 나온다. 전통 시장에서는 손실이 커지면 정해진 기한까지 돈을 더 넣으라는 마진콜이 온다. 무기한 선물은 그런 유예가 없다. 손실 포지션은 일정 선 아래로 떨어지는 순간 경고도 거의 없이 즉시 청산된다. 수익을 낸 포지션 조차 위기 때 거래소 파산을 막기 위한 최후 수단으로 강제 축소될 수 있다.

시간을 벌어주는 장치가 없으니 하락장에서는 매물이 한꺼번에 쏟아진다. 값이 더 하락하고 다시 청산이 이어지는 악순환이다. 지난해 10월 10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중국에 추가 관세를 매기겠다고 위협한 뒤 24시간 만에 암호화폐 투자자 150만명 이상이 강제 청산을 당했다. 비트코인은 10%가량 폭락했고, 이후 6주 동안 전 세계 암호화폐 시장에서 시가총액의 4분의 1인 1조 2000억 달러(약 1790조원)가 증발했다.

청산회사 데리버티브클리어링네트워크의 제임스 데이비스 창업자는 무기한 선물 설계가 “위기 때 완충 장치를 전혀 제공하지 않는다”며 “그냥 폭탄 돌리기다”고 지적했다. 그는 “단기 위험을 감수하려는 개인의 수요는 어마어마하다. 사람들은 도박을 하고 싶어 한다”면서도 “정작 무기한 선물로 얼마나 잃을 수 있는지 물으면 개인투자자들은 대답하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규제 방식도 논란이다. CFTC가 지난 5월 암호화폐 무기한 선물을 스와프가 아닌 선물로 분류하면서 규제와 증거금 요건이 느슨해지고 세제도 유리해졌다. CME그룹은 지난달 셀리그 위원장이 “펜 한 번 놀림으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도입한 규제를 되돌렸다며 CFTC를 제소했고, CFTC는 “경솔한 소송”이라고 반박했다.

소비자단체 베터마켓츠의 벤저민 시프린 증권정책국장은 무기한 선물이 개인투자자에게 “암호화폐에서 가장 위험한 상품이다”며 “CFTC가 자신이 승인한 상품이 안기는 위험을 완전히 무시한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반면 순기능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다. 타렉 만수르 칼시 최고경영자(CEO)는 무기한 선물을 “가장 순수한 형태의 거래”라고 묘사했다. 이언 드 보드 온도 사장은 “거래량이 충분히 많아 주말에도 실질적인 가격 발견과 신호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주식·원자재 시장이 문을 닫는 동안에도 시세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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