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기름값 다시 갤런당 4달러대·비축유 40년래 최저…트럼프 이중고

해외

이데일리,

2026년 7월 21일, 오전 10:25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미국 휘발유값이 다시 갤런당 4달러를 넘어섰다. 미국과 이란의 교전이 9일째 이어지며 국제유가가 치솟은 탓이다. 유가를 눌러줄 전략비축유마저 40년 만의 최저 수준으로 쪼그라들어,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악재가 겹쳤다는 진단이다.

(사진=AFP)
(사진=AFP)
20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와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 등에 따르면 미국자동차협회(AAA) 집계 결과 이날 전국 평균 보통 휘발유 소매가격은 갤런당 4.003달러를 기록했다. 4달러를 넘어선 것은 한 달 만이다.

갤런당 4달러는 미국 소비자에게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통한다. 차 없이는 생활이 안 되는 나라여서 물가를 피부로 느끼게 하는 숫자이고, 이 선을 넘으면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는 경향을 보인다. 미 브루킹스연구소는 휘발유값이 3달러에서 4달러로 오르면 운전자 한 명이 월 36달러(약 5만 3000원)를 더 쓰게 된다고 분석했다. 차가 두 대인 가정은 부담이 두 배로 늘어 소득이 1% 넘게 깎이는 효과가 나며, 저소득층이 특히 큰 타격을 입는다.

미국 내 휘발유값은 지난 5월 갤런당 4.56달러까지 치솟았다가 휴전 합의 연장으로 이달 초 3.79달러까지 내렸다. 덕분에 지난달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연 3.5%로, 3년 만의 최고치였던 5월(4.2%)보다 낮아졌다. 하지만 진정 국면은 오래가지 못했다.

중동 정세가 다시 불안정해지며 국제유가를 밀어올린 탓이다. 미 중부사령부는 이날 이란을 겨냥한 새로운 공습에 나섰다고 밝혔다. 지난 17일 이란의 공격으로 미군 2명이 숨진 이후 양측은 공습과 보복을 반복하고 있다. 미국과 이란은 지난 4월 호르무즈해협을 여는 휴전에 합의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8일 튀르키예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서 휴전이 “끝났다”고 선언했다. 이어 10일에는 소셜미디어에 이란 측에 “어떤 애매함도 없이 휴전이 끝났다고 통보했다”고 적었다. 이후 양국은 해협 통제권을 놓고 다시 충돌하고 있다.

이에 미국 원유 지표인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한때 배럴당 85.39달러까지 올랐고, 글로벌 벤치마크인 브렌트유도 장중 90달러를 찍으며 이달 들어서만 20% 급등했다.

새로운 악재도 나왔다. 친이란 무장세력인 예멘 후티 반군이 사우디아라비아를 상대로 홍해 해상 봉쇄를 즉시 시행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유럽 조사기관 라이스타드에너지에 따르면 사우디는 홍해를 통해 하루 400만배럴의 원유를 수출해왔다. 호르무즈해협이 막힌 뒤 귀한 우회로 역할을 해온 통로다. 이 회사의 호르헤 레온은 “후티의 위협이 격화하면 유가가 큰 폭으로 반등할 위험이 극히 높다”고 지적했다.

기댈 곳도 줄고 있다. 미국의 전략비축유(SPR)는 최근 일주일 새 510만배럴 줄어 3억1140만배럴이 됐다. 1983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올해 2월 4억1544만배럴에서 25% 감소했다. 비축유 방출은 그동안 유가를 끌어내리는 수단이었던 만큼, 여력이 줄수록 유가와 휘발유값은 높은 수준에 머물기 쉬워진다.

정치적 대가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FT가 이달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8%는 이번 전쟁이 치른 대가만큼 가치가 없었다고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36%까지 떨어졌다. 미국 운전자가 1년에 50번가량 주유소를 찾는 만큼, 기름값은 표심을 가장 자주 건드리는 물가다.

케빈 북 클리어뷰에너지 상무는 “모든 원유 부족은 연료 위기로 번질 수 있다”며 “분쟁이 계속되면 이번 연료 위기는 더 나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인이 선출직 공직자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다면 주유소에 들러보라”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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