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떼 목장이 발사장…뉴질랜드 '로켓맨', 머스크·베이조스에 도전장

해외

이데일리,

2026년 7월 23일, 오후 01:57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뉴질랜드의 ‘로켓맨’ 피터 벡 로켓랩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가 일론 머스크와 제프 베이조스가 앞서 달리고 있는 위성 인터넷 시장에 도전장을 냈다. 로켓을 쏘아 올려 온 회사가 이제 하늘에서 인터넷을 파는 사업까지 넘보게 된 것이다.

피터 벡 로켓랩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사진=AFP)
피터 벡 로켓랩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사진=AFP)
◇생애 최대 베팅…“로켓 가진 자가 우주 열쇠 쥔다”

22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로켓랩은 지난달 미국 증시 상장사인 위성통신 업체 이리듐을 80억달러(약 11조7416억원)에 인수하기로 합의했다. 벡 CEO가 평생 써본 가장 큰 액수의 수표였다. 이번 인수로 로켓랩은 이리듐이 보유한 위성 통신망과 주파수를 한꺼번에 손에 넣게 됐다. 주파수는 흔히 ‘이동통신 산업의 생명줄’로 불린다. 벡 CEO는 FT에 “로켓랩이 그런 회사를 사들이는 건 큰 모험이지만, 결국 현금을 벌어들이는 자리를 잡은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경쟁자들도 같은 길을 걷고 있다. 머스크의 스페이스X는 지난해 에코스타의 주파수를 170억달러(약 24조9509억원)에 사들였고, 베이조스가 세운 아마존은 지난 4월 글로벌스타를 116억달러(약 17조253억원)에 인수했다. 두 회사는 각각 스타링크와 아마존 레오라는 위성 인터넷망을 키우고 있다.

벡 CEO는 통신망과 주파수를 직접 만드는 대신 사들이는 방식을 택한 이유에 대해 “10~20년을 단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이리듐이 새 위성 무리를 쏘아 올릴 때 로켓랩의 발사 시설을 활용해 비용과 위험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는 “로켓을 가진 자가 우주로 가는 열쇠를 쥔다”고 힘주어 말했다.

루크 피어스 CCS인사이트 애널리스트는 “스페이스X, 아마존 레오, AST 스페이스모바일 같은 업체들과 나란히 설 또 하나의 믿을 만한 저궤도 경쟁자가 생긴 것”이라고 평가했다.

◇“우리는 겁 없는 신참”…주가 반토막에도 승부수

로켓랩은 가벼운 로켓을 기존 방식보다 싸고 자주 쏘아 올린다는 목표로 2006년 설립됐다. 2009년 첫 발사에 성공했고, 2017년에는 소형 위성을 실어 나르는 일렉트론 로켓이 스페이스X 팰컨9의 경쟁자로 떠올랐다. 다만 기업가치로 보면 스페이스X나 베이조스의 블루오리진보다 작다.

벡 CEO는 억만장자가 됐지만 “제프와 일론에 비하면 우리는 확실히 겁 없는 신참”이라며 “내가 화성 궤도의 소행성을 캐겠다고 말하는 건 들어본 적 없을 것”이라고 했다. 머스크가 내세워 온 우주 광물 채굴 구상을 겨냥한 말이다.

인수 시점은 껄끄럽다. 스페이스X 기업공개(IPO)를 둘러싼 열기가 식으면서 로켓랩 주가는 지난 5월 고점 대비 절반 넘게 빠졌다. 벡 CEO가 보유 주식 500만주를 4억6500만달러(약 6825억원)에 판 것도 부담을 키웠다.

로켓랩의 올해 1분기 매출은 2억달러(약 2935억원)로 1년 전보다 60% 넘게 늘었고, 순손실은 6000만달러(약 881억원)에서 4500만달러(약 660억원)로 줄었다. 벡 CEO는 아직 적자인 로켓랩과 달리 이리듐은 이미 흑자를 내고 있다며, 해상 통신 등에서 “엄청나게 방어력이 강한 고부가가치 틈새시장”을 확보하게 된다고 말했다.

◇양떼 목장을 로켓 발사장으로 만든 성공 신화

로켓랩은 벡 CEO 개인은 물론 뉴질랜드 전체에도 성공 신화로 통한다. 인구가 희박한 북섬 동쪽 해안의 외딴 양떼 목장 일대는 이제 로켓 발사 명소가 됐다. 뉴질랜드는 로켓 발사 횟수에서 미국과 중국에 이어 세계 3위다. 항공기와 선박 통행을 방해하지 않고 우주로 물체를 쏘아 올리기에 알맞은 위치라는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기업가치 400억달러(약 58조7080억원)의 로켓랩은 낙농과 가전이 주력이던 이 나라에서 나온 가장 큰 기업이다. 주가는 최근 하락에도 2021년 나스닥 상장 이후 약 600% 올랐다. 이 회사의 상장으로 뉴질랜드에서만 100명이 넘는 백만장자가 탄생했고, 퇴사한 직원들은 축산 기술 업체 홀터, 자동차 부품 유통 업체 파틀리, 경쟁사 던에어로스페이스 등을 창업했다.

로켓랩은 2013년 본사를 미국 캘리포니아로 옮겨 미 국방부의 주요 공급업체가 됐지만, 로켓 대부분은 여전히 북섬 마히아 반도의 외딴 발사장에서 쏘아 올린다. 오클랜드 동쪽 공장에서는 1000명이 대형 뉴질랜드 국기와 성조기 아래에서 로켓을 조립한다.

벡 CEO는 항공우주 산업과 교육에 기여한 공로로 2024년 뉴질랜드 정부로부터 공로훈장 기사 작위를 받았다. 그는 남섬 끝자락 인버카길에서 보낸 어린 시절 아버지가 우주에 대한 열정을 심어줬다고 회고했다. 별을 가리키며 “저기에 누군가 서서 너를 마주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던 말이 “내 머릿속 무엇보다도 큰 이야기였다”는 것이다. 벡 CEO는 이번 거래에 대해 “행운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지만, 그 별들이 모두 나란히 늘어선 건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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