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지 한 장’이 흔든 인도 젠지의 분노…불공정에 청년들 거리로

해외

이데일리,

2026년 7월 23일, 오후 06:05

[이데일리 김겨레 기자] 의대 입학시험 문제지 유출 의혹으로 촉발한 인도 젠지(Z세대)의 분노가 전국적인 반정부 시위로 확산하고 있다. 단순한 입시 부정 사건이 아니라 교육의 공정성이 무너졌다는 인식이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청년 실업률과 계층 이동의 좌절감 등이 맞물리면서 나렌드라 모디 정부의 정치적 부담으로 떠오르고 있다.

모디 총리는 23일(현지시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시험지 유출 사건 관련자를 엄벌하기 위한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겠다”며 “청년들의 미래를 해치려는 사람들은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고 밝혔다. 지난 5월 의대 입학시험 문제지 유출 의혹이 처음 불거진 뒤 모디 총리가 직접 입장을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회 풍자 운동으로 시작한 ‘바퀴벌레당’이 주도하는 이번 반정부 시위는 교육부 장관 사퇴와 입시 제도 개혁을 요구하며 뉴델리와 뭄바이, 벵갈루루, 고아 등 주요 도시로 확산하고 있다.

시위는 학생들을 지지하며 단식농성을 벌인 사회운동가 소남 왕축이 지난 19일 경찰에 의해 병원으로 강제 이송된 뒤 규모가 불어났다. 전날 인도 제1야당인 국민회의 하원 대표 라훌 간디는 학생들의 요구를 지지한다며 모디 총리 관저 방향으로 행진하다 경찰에 붙잡혔다. 이번 사태가 쉽게 가라앉지 않는 이유는 의대 입학시험이 인도 사회에서 지닌 상징성 때문이다. 의대 입학시험인 NEET는 매년 200만명 이상이 응시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전문직 선발시험이다. 의사는 안정적인 소득과 높은 사회적 지위를 보장받는 직업으로 여겨져 빈곤층과 하위 카스트 출신 청년에게는 사실상 계층 상승을 위한 가장 중요한 통로다. 올해도 약 228만명이 시험을 치르며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시험지 유출 의혹은 이러한 ‘마지막 희망’마저 공정하지 않다는 불신으로 이어졌다. 인도의 15~29세 청년 인구는 약 3억 7000만명에 달하지만 양질의 일자리는 충분히 늘지 못하고 있다. 올해 인도 대학 졸업자의 약 40%가 실업 상태인 데다 전문직 진출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카스트 제도의 유산이 남아 있는 인도에선 교육이 계층 이동의 핵심 수단이다. 극심한 입시 경쟁에 2024년 한 해에만 1만 4400명의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전체 인구의 자살률을 웃돌았다. 이런 상황에서 입시 공정성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자 청년들의 불만이 한꺼번에 폭발한 것이다.

특히 시위가 모디 총리의 핵심 지지 기반인 도시 중산층으로 확산하는 점은 모디 총리와 집권당에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인도 최대 유권자 집단인 25세 미만 청년층의 민심이 흔들리면 앞으로의 선거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인도 정치권은 이번 사태가 남아시아에서 잇따라 발생한 청년 중심 반정부 운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지난해 공무원 채용 할당제에 반대하는 학생 시위가 전국적인 반정부 운동으로 번져 셰이크 하시나 총리가 결국 사임했다. 네팔에서도 청년 실업과 부패에 항의하는 젠지 시위가 정권 교체의 도화선이 됐다. 인도 정부가 시험 관리 강화나 관련자 처벌을 넘어 청년 일자리 확대와 교육개혁에 대한 실질적인 해법을 내놓지 못한다면 이번 시위는 단발성 항의를 넘어 모디 정부의 국정 운영을 시험하는 장기적 정치 리스크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22일(현지시간) 인도 뉴델리에서 청년들이 의대 입학시험 유출 사건에 항의하며 반정부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AFP)
22일(현지시간) 인도 뉴델리에서 청년들이 의대 입학시험 유출 사건에 항의하며 반정부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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