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AFP)
이코노미스트는 29일(현지시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가 지난달 고점 이후 각각 41%, 52% 폭락해 한국 증시에서 1조 2000억달러(약 1735조원)가 증발했다고 전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 두 회사는 AI 호황의 최대 수혜자였다. 하지만 매체는 “SK하이닉스는 분기 영업이익이 1년 전보다 6배 급증했음에도 (투자자들은) 부족하다고 판단해 이번주 20% 넘게 빠졌다. 삼성전자 주가는 닷컴 거품 시절 이후 가장 심하게 출렁였다”고 짚었다.
내년 잉여현금흐름이 2000억달러(약 289조원)를 넘길 기업은 세계에서 세 곳뿐이다. AI 칩 설계사인 미국 엔비디아와 삼성전자, SK하이닉스다. 반면 알파벳과 아마존, 메타, 마이크로소프트는 합산 마이너스가 될 전망이다. 데이터센터에 쏟아부은 돈이 핵심 부품인 엔비디아 AI 칩과 삼성전자·SK하이닉스 메모리 반도체 ‘구매 대금’으로 상당 부분 흘러간 결과다.
정부도 증시를 부추겼다는 지적이다. 매체는 2024년 비상계엄 사태를 ‘실패한 쿠데타’로 묘사하며, 지난해 대통령이 증시를 띄워 국민을 달랜 덕에 코스피지수가 정부 목표치에 빠르게 도달했다고 평가했다.
기업 역사상 가장 큰 국경 간 현금 이동의 하나로 꼽힐 만큼 큰돈이 몰리자 시장은 과열됐다. 주식에 갓 눈뜬 개인들은 보험사와 은행에서 돈을 빼 주식으로 옮겼다. 일부 근로자들은 월가 수준의 성과급을 요구하며 파업을 위협해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직원들은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으로 받기로 했다. SK하이닉스에서는 1인당 올해 50만달러(약 7억 2300만원), 내년 80만달러(약 11억 5700만원)에 이를 수 있다. 지난해 골드만삭스 직원 평균 총보수(40만달러·약 5억 7800만원)를 웃도는 액수다.
거품을 부풀린 또 하나의 장치는 지난 4월 승인된 개별 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다. 주가 하루 등락폭의 몇 배를 돌려주는 상품이다. 지난달 매도세가 시작되자 이 상품 투자 계좌들은 추가 담보를 요구받고 수천개씩 강제 청산됐다. 금융당국은 신규 ETF 출시를 중단했고, 정치권도 사용을 엄격히 제한하겠다고 약속했다.
매체는 시장을 카지노에 비유한 정치인 발언을 소개하며 백화점 주가도 반도체주만큼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고 전했다. 주식으로 돈을 잃은 투자자들이 지갑을 닫아 명품 가방이 팔리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중국 추격에 계약 불확실성까지
관건은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언제 정점을 찍느냐다. 낙관론자들은 데이터센터 건설과 로봇 수요로 2030년대까지 공급이 부족할 것으로 본다. 반면 이코노미스트는 “역사상 모든 원자재가 그랬듯 1~2년 안에 새 공급이 쏟아져 가격과 이익이 떨어질 것이라는 시각이 점차 우세해지고 있다”며 “두 회사가 지난 1년간 평균 한 자릿수 주가수익비율(PER)에 거래된 것은 투자자들이 이익 정점을 이미 반영했다는 뜻”이라고 진단했다.
두 회사가 마주한 위험은 AI 산업 전반에 잠복해 있다는 분석이다. 첫째는 제품이 흔해져 값으로만 경쟁하게 되는 ‘상품화’다. 값싼 범용 메모리는 중국 경쟁사들의 점유율 상승에 위협받고 있다. 중국 최대 D램 업체 창신메모리(CXMT)는 지난 27일 상하이증권거래소에 상장해 첫날 주가가 공모가 대비 466% 폭등했다. 조달액은 579억위안(약 12조 3800억원)으로 중국 반도체 기업 사상 최대다. 두 회사가 주가 폭락에 시달리는 사이 추격자는 대규모 증설 자금을 챙긴 셈이다. 미국 AI 모델 기업들도 중국의 개방형 모델에 밀릴 수 있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다.
둘째는 고객이 내건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위험이다. 두 회사는 선불로 대금을 받고 가격을 확정한 장기 공급계약으로 수년치 이익이 보인다고 강조해왔다. 그러나 고객들이 유리해지면 빠져나갈 방법을 찾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처럼 불안한 구조를 지탱해온 것은 엔비디아다.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는 방대한 자금 연결망을 짜 잔치를 이어가고 있다. 오픈AI의 데이터센터 임대 계약 2500억달러(약 361조원) 보증을 협의 중이고, 지난 주말에는 SK하이닉스와 5000억달러(약 723조원) 규모 협력도 발표했다. 그런데도 투자자들은 시들한 반응을 보였다.
이코노미스트는 “중앙은행 총재가 시장에 개입할 때처럼 황 CEO가 손을 쓸수록 투자자들은 더 불안해한다”며 “결국 닥칠 붕괴도 그만큼 더 나빠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