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관세 안 먹혀…삼성·LG에 밀린 美월풀의 몰락

해외

이데일리,

2026년 8월 04일, 오후 03:21

[이데일리 김겨레 기자] 115년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가전업체 월풀이 실적 부진과 시장 점유율 하락에 시달리고 있다. 해외 사업이 주춤하자 북미 사업에 올인하면서 미 주택 경기 영향이 커진데다 LG전자와 삼성전자의 제품 경쟁력을 뛰어넘지 못한 결과다.

지난 5월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한 홈디포 매장에 진열된 월풀의 세탁기(왼쪽), 건조기(가운데). 오른쪽 제품은 GE의 세탁건조기. (사진=AFP)
지난 5월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한 홈디포 매장에 진열된 월풀의 세탁기(왼쪽), 건조기(가운데). 오른쪽 제품은 GE의 세탁건조기. (사진=AFP)
월풀은 3일(현지시간) 올 2분기 매출액이 35억2000만달러(약 5조원)로 전년동기대비 6.8% 감소했다고 밝혔다. 조정 주당순손실은 21센트로 집계됐다.

월풀은 이날 연간 수익성 전망을 재차 하향 조정했다. 올해 조정 주당이익 전망을 2.50~3.00달러로 제시해 지난 5월의 3.00~3.50달러보다 낮췄다. 연초 제시한 약 7달러와 비교하면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주가도 장기 하락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월풀 주가는 2021년 이후 5년 새 80% 이상 하락했다. 월풀은 현금 확보와 부채 감축을 위해 70년간 이어온 배당도 중단했다.

시장조사업체 오픈브랜드가 집계한 지난해 4분기 미 가전시장 점유율(금액 기준)은 LG전자가 20.9%로 1위였고, GE가 20.1%, 삼성전자가 15.3%로 뒤를 이었다. 월풀 단일 브랜드의 점유율은 12.6%로 4위에 그쳤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월풀이 경영난에 빠진 것은 미국 시장 의존도가 높아진 탓이 크다. 미국에서는 이사와 함께 가전 제품을 새로 사는 경우가 많은데, 주택 시장이 침체되고 고물가가 이어지자 가전 교체 수요가 위축되며 월풀 실적도 하락세를 걷고 있다.

2015년까지만 해도 월풀 전체 매출에서 미국과 해외 비중은 절반씩이었다. 하지만 중국 가전업체의 부상으로 해외 사업이 주춤하자 월풀은 해외 사업을 잇따라 매각하며 수익성이 높은 미국 시장에 집중했다. 지난해 월풀의 미국 매출 비중은 20년만에 가장 높은 65%까지 상승했다.

2010년대 월풀은 LG전자와 삼성전자를 상대로 특허 소송과 반덤핑 제소, 세이프가드 요청을 일삼는 등 집중 견제했다. 이는 결국 LG전자와 삼성전자의 현지화를 앞당겨 최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대응력을 강화하는 역설적인 결과를 낳았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사후 평가에서 세이프가드 이후 미국 세탁기 산업의 생산과 점유율이 개선됐지만, 그 성과는 대부분 신규 현지 생산업체인 삼성과 LG가 주도했다고 분석했다.

LG와 삼성이 관세에 대응해 미국 생산을 확대하고 프리미엄·스마트 가전으로 판매단가를 높이는 동안 월풀은 비용 절감에 집중하며 제품 경쟁력을 높이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월풀은 지난 5년간 전세계 직원 수를 절반으로 줄였다. 월풀은 2022년 음식물처리기 업체 인싱크레이터를 30억달러(약 4조3000억원)에 인수했지만 재무 부담만 키웠다.

WSJ는 “월풀은 115년 역사 대부분 동안 가전업계 거물이었지만 북미 시장에 집중하면서 주택 시장 침체에 회사의 운명이 좌우되도록 만들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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