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투자를 처음 해봤다는 40대 여성 윤모씨는 4일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모아둔 모든 저축과 남편 연금까지 주식에 ‘몰빵’했지만 9% 손실을 보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지난달 28일 서울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딜러가 코스피 지수가 표시된 전광판 앞을 지나고 있다. (사진=AFP)
이재명 대통령이 밀어붙인 증시 부양책이 인공지능(AI) 기술주 급락과 맞물리며 개인투자자들의 분노로 되돌아오고 있다. FT는 한국 증시의 극심한 변동성이 정치적 대가를 초래하고 있다면서, 이 대통령만큼 자신의 정치적 운명을 증시에 걸어온 한국 대통령은 없었다고 보도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는 지난 6월 19일 장중 사상 최고인 9385.59를 찍은 뒤 3일 6257.45로 마감해 33.3% 떨어졌다. 지난달 31일 하루 17.91% 올라 역대 최대 상승률을 기록했다가 한 거래일 만에 5.12% 급락하는 등 널뛰기가 이어지고 있다. 빚을 내 투자한 개인들이 직격탄을 맞았고 반대매매 위기에 몰린 이들도 적지 않다.
손실은 곧바로 정치적 부담이 됐다. 리얼미터가 3일 내놓은 조사에서 이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은 45.9%로 취임 이후 가장 낮았다. 리얼미터는 증시 폭락과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파장에 따른 경제 불안에 부동산 세제, 대통령 연임 개헌 논란 등이 겹친 결과라고 설명했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는 FT에 “회원 채팅방은 대통령을 비판하는 글로 가득하고, 다음 선거에서 여당을 찍지 않겠다는 이들도 많다”고 전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총선이 2028년 4월로 아직 남았지만 개인투자자의 분노가 여당의 승리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봤다. 그는 “국민에게 주식 투자를 권함으로써 대통령이 어느 정도 스스로 불러온 문제”라고 지적했다.
◇‘코스피 5000’ 공약…레버리지 ETF가 화약고
스스로 개인투자자였다고 밝혀온 이 대통령은 임기가 끝나는 2030년까지 코스피 5000을 달성하겠다고 공약했다. 10년 넘게 2000대에 머물던 지수였다. 부동산에 묶인 돈을 주식 같은 ‘생산적’ 투자로 돌려야 한다는 논리였고, 소액주주 보호를 강화해 자금을 끌어들이려 했다.
성과도 있었다. 김형균 차파트너스 본부장은 FT에 “상법 개정 등 투자자 친화적 조치는 임기 초반의 성과”라며 “인구의 3분의 1인 1500만명가량이 주식에 투자하게 됐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사상 최대 실적에 힘입어 지수가 목표치를 훌쩍 넘어선 뒤에도 이 대통령은 낙관을 거두지 않았다. 그는 지난 6월 기자회견에서 “시장이 예상보다 빠르게 올랐지만 여전히 저평가돼 있다”고 했다.
문제는 위험 상품까지 문을 연 대목이다. 정부는 지난 4월 자본시장법 시행령을 고쳐 개별 종목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레버리지 ETF의 길을 텄고, 지난 5월 27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추종하는 상품 18종이 한꺼번에 상장했다. 초기 설정액만 4조 3227억원으로 하루 상장 규모로는 사상 최대였다. 몇 주 만에 100억달러(14조 2510억원) 넘는 돈이 두 종목에 베팅하는 데 몰렸다. 시장이 꺾이자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도입에 유감을 표했고 당국은 규제를 조였다. 미래에셋증권에 따르면 이 상품 순자산은 6월 25일 16조 3000억원에서 지난달 말 8조 6000억원으로 반토막 났다.
존 리 코리아리스크그룹 편집장은 증권사에 길을 열어준 것이 투자자 선택권을 넓히려는 정부 기조였다면서 “그것이 정부 얼굴에 그대로 터졌다”고 FT에 말했다.
◇내 집 마련 노린 30대 직격…외신들 잇단 조명
타격은 30대에 집중됐다. 이 대통령 지지율은 이들 사이에서 지난주 7.4%포인트 빠지며 가장 크게 흔들렸다. 한 은행 관계자는 내 집 마련을 위해 투자한 이들이 많아 시장에 민감하다며 “상당수가 큰 빚을 지고 들어왔다가 손실을 봤다”고 FT에 말했다. 그는 투자 책임이 결국 개인에게 있다면서도 “많은 사람이 정부를 각별히 믿는다”며 정부가 주식 투자를 적극 권한 만큼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고 했다.
주요 외신이 이 문제를 다룬 것은 처음이 아니다. 이코노미스트는 지난달 29일 한국이 AI가 안긴 부를 가장 먼저 맛보고 가장 먼저 빼앗기고 있다며 레버리지 ETF가 거품을 키웠다고 지적했다. 블룸버그는 지난달 20일 레버리지 ETF 후폭풍이 이 대통령의 정치적 시험대가 됐다고 진단한 데 이어 지난 2일에는 개인투자자들이 대통령을 비난하며 시장을 떠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대통령실은 FT의 논평 요청에 답하지 않았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증시 변동성을 줄이기 위해 자본시장 체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