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빚투' 소화불량...월가, 채권 발행 전략 다시 짠다

해외

이데일리,

2026년 8월 08일, 오전 02:16

[뉴욕=이데일리 성주원 특파원]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건설 자금을 마련하려는 빅테크들의 회사채 발행이 봇물을 이루면서, 정작 채권시장에서는 ‘소화불량’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발행 직후 채권 가격이 무너지는 사례가 잇따르자 월가 투자은행들이 발행 전략을 바꾸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사진=AFP
사진=AFP
채권은 발행 후 시장에서 거래되기 시작하면 가격이 변동하는데, 최근 빅테크 회사채는 상장 직후 가격이 발행가 아래로 떨어지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엔비디아·스페이스X·아마존은 각각 250억달러(약 35조2625억원)어치 채권을 발행했는데, 거래가 시작되자마자 가격이 발행가를 밑돌았다. 채권 가격이 이렇게 힘없이 무너지면, 이후 발행되는 채권을 사려는 투자자들도 줄어드는 악순환이 생긴다.

◇“단타족 대신 장기보유족에게 판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블랙록은 메타플랫폼스의 데이터센터 자금 조달을 위해 125억달러 규모 채권을 발행하면서, 이런 흐름을 피하기 위해 연기금·보험사 등 이른바 ‘리얼머니(real-money)’ 투자자들을 우선 배정했다. 이들은 사자마자 되파는 단기 매매 세력과 달리 채권을 만기까지 들고 가는 성향이 강해 발행 직후 시세가 흔들리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

전략은 통했다. 블랙록 채권은 청약 경쟁률(오버서브스크립션·수요예측 단계에서 목표액 대비 몰린 주문 규모)은 평소보다 낮았지만, 선별적 배정 덕에 거래 개시 직후 국채 대비 금리 차(스프레드·신용위험이 클수록 벌어짐)가 오히려 좁혀지며 선방했다. 다만 이를 위해 7.5%라는 높은 금리를 제시해야 했다.

JP모건 존 서비디아 투자등급금융 공동대표는 “은행과 발행사들이 직면한 가장 큰 걸림돌은 유통시장에서의 부진한 성과”라며 “시장이 이 정도 물량은 소화할 수 있다고 여전히 보지만, 발행 규모와 속도가 소화불량을 일으키고 있다”고 말했다.

◇빅테크들 “당분간 추가 발행 없다”

수요 냉각에 대응해 은행들은 발행 간격을 넓히고 속도 조절에 나섰다. 알파벳은 지난 6일 올해 미국 채권시장에서의 마지막 발행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메타는 지난 4월 250억달러 발행 당시 최소 4분기까지 추가 발행이 없을 것이라고 예고해 수요를 지지하는 효과를 봤고, 오라클도 2월 250억달러 발행 때 올해 채권시장에 다시 오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올해 들어 아마존·알파벳·엔비디아·메타·오라클·스페이스X 6개사가 달러 채권시장에서 조달한 금액은 2000억달러를 넘어, 지난해 같은 기간(130억달러)의 15배가 넘는다. 은행권에서는 9월초 노동절 연휴 이후에만 500억~600억달러어치 하이퍼스케일러(대형 데이터센터 운영 빅테크) 채권이 추가로 쏟아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다음 타자는 앤스로픽…21조원대 데이터센터 채권 준비

블룸버그에 따르면 모건스탠리 주도로 앤스로픽의 텍사스 데이터센터 프로젝트를 위한 150억달러(약 21조1515억원) 규모 채권 발행도 논의되고 있다. 이 채권은 알파벳 산하 구글이 지급을 보증하는 구조다. 골드만삭스도 블랙스톤이 투자한 QTS 데이터센터(마이크로소프트와 연계) 관련 최대 54억달러 채권 발행을 투자자들과 조율 중이다.

투자등급보다 신용도가 낮은 하이일드(고수익·고위험) 채권시장도 몸살을 앓기는 마찬가지다. 데이터센터 업체 코어위브는 회사채 대신 은행 대출인 레버리지론 비중을 늘리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캐나다생명자산운용의 크시티지 신하 채권 펀드매니저는 “모든 하이퍼스케일러들의 공격적인 설비투자 계획을 감안하면, 서둘러 채권을 사들일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미국 조지아주 페이엣빌에 위치한 QTS 데이터센터 단지의 모습. QTS는 세계 최대 사모펀드 운용사 블랙스톤이 소유한 대형 데이터센터 운영업체다. (사진=로이터)
미국 조지아주 페이엣빌에 위치한 QTS 데이터센터 단지의 모습. QTS는 세계 최대 사모펀드 운용사 블랙스톤이 소유한 대형 데이터센터 운영업체다. (사진=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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