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지 맨지오니가 지난 8월 1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형사법원에서 열린 공판 전 심리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맨지오니는 이날 뉴욕 남부연방지방법원에서 마거릿 가넷 판사 심리로 열린 약 30분간의 재판에서 스토킹(살해 의도를 가진 미행) 혐의 2건에 대해 “유죄”라고 답변했다. 수갑을 찬 채 베이지색 수감복을 입고 법정에 들어선 그는 준비한 진술문을 읽으며 “2024년 12월4일 아침, 나는 맨해튼에서 톰슨씨를 쐈고 그는 사망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게 했을 때 내 행동이 그를 죽음이나 신체적 위해에 대한 공포에 빠뜨릴 것이라는 걸 이해하고 있었다. 내가 하는 일이 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맨지오니는 범행 동기에 대해 “수년간 등뼈 골절로 인한 극심한 통증을 견디며 의료 시스템의 여러 장벽과 씨름해왔다”고 진술했다. 그는 유나이티드헬스가 2024년 12월 뉴욕에서 투자자 콘퍼런스를 연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자산 5000만달러(약 708억4000만원) 이상을 운용하는 투자자를 사칭해 회사 경영진에게 이메일을 보내 콘퍼런스 정보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그는 “1시간 만에 답장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그는 타주에서 뉴욕으로 이동해 소음기가 달린 3D 프린터 제작 권총으로 범행을 계획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날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DNA와 지문이 맨지오니의 것과 일치했다고 밝혔다. 이전에도 검찰은 범행 도구인 총기, 그리고 의료업계 임원을 살해하려는 의도가 담긴 노트를 포함해 압도적인 증거를 확보했다고 밝힌 바 있다.
◇2024년 12월, 무슨 일이 있었나
톰슨(당시 50세)은 2024년 12월4일 오전 6시45분쯤 맨해튼 미드타운의 한 호텔 앞에서 총격을 받고 숨졌다. 유나이티드헬스그룹의 연례 투자자 콘퍼런스가 열리기로 한 호텔이었다. 콘퍼런스는 예정대로 오전 8시에 시작됐지만, 총격 소식이 전해지며 곧 중단됐다. 마스크를 쓴 범인은 톰슨을 향해 총을 쐈고, 톰슨이 몸을 돌려 범인을 마주 보자 다시 한 발을 더 쐈다고 검찰은 밝혔다. 현장에서 발견된 탄피에는 ‘거부(deny)’, ‘지연(delay)’, ‘기각(depose)’이라는 단어가 새겨져 있었다. 보험금 지급을 거부·지연·기각하는 보험업계 관행에 분노한 이들 사이에서 쓰이던 구호의 변형으로 해석됐다.
범인은 전동자전거를 타고 도주한 뒤 택시로 갈아타 조지워싱턴브리지 버스터미널로 이동했다. 닷새간의 추격전 끝에 펜실베이니아주 앨투나의 한 맥도날드 매장에서 검거됐다. 당시 그의 배낭에서는 소음기가 달린 권총과 노트가 발견됐는데, 노트에는 “표적은 보험업계다. 모든 조건에 부합한다”는 문구와 함께 투자자 콘퍼런스에서 보험사 CEO를 살해하겠다는 의도가 담긴 내용이 적혀 있었다고 검찰은 밝혔다.
지난 4월 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연방법원 밖에서 국토안보부(DHS) 요원들이 경계 근무를 서고 있다. 이날 루이지 맨지오니가 연방법원에 출석했다. (사진=로이터)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의 유력 가문 출신인 맨지오니는 아이비리그인 펜실베이니아대에서 컴퓨터공학 학사·석사 학위를 4년 만에 마쳤다. 데이터 엔지니어로 일한 이력도 있다. 그는 소셜미디어에 척추전방전위증(척추뼈가 어긋나는 질환)과 과민성대장증후군 등 여러 지병으로 인한 고통을 토로해왔다. 다만 그 자신은 유나이티드헬스케어 보험 가입자는 아니었다.
◇왜 미국을 떠들썩하게 했나
톰슨 피살 사건은 발생 직후부터 미국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보험금 지급을 까다롭게 제한하는 미국 의료보험 업계 관행에 대한 대중의 누적된 분노가 이 사건을 계기로 표출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맨지오니에게는 수천 명의 온라인 지지자가 생겼고, 그의 재판 때마다 수십 명이 법정 밖에 모여들었다. 일부 지지자는 비디오게임 캐릭터 ‘루이지’ 복장을 하고 법원 앞에 나타나기도 했다. 온라인 법률 지원 모금은 160만달러(약 22억6700만원)가 모였고, 그가 수감 중 받은 우편물을 손으로 기록한 목록은 82쪽에 달한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사건 이후 유나이티드헬스그룹은 미네소타주 본사 경비를 강화했다. 보험업계를 비롯한 여러 기업의 경영진들이 경호원을 고용하고 공개 일정을 취소하는 등 신변 보호에 나섰고, 기업들의 임원 보호 체계 전반을 재점검하는 계기가 됐다.
지난 1월 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연방법원 밖에서 루이지 맨지오니의 지지자가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로이터)
맨지오니는 이 사건으로 연방과 뉴욕주 두 곳에서 별도로 기소됐다. 주 검찰이 먼저 기소했고 연방 검찰이 뒤이어 기소했다. 그는 두 사건 모두에서 애초 무죄를 주장해왔다. 재판 과정에서 검찰 측에도 우여곡절이 있었다. 뉴욕주 법원은 테러 관련 혐의 2건을 기각했다. 살해 동기가 이념적이라는 검찰 주장이 법적으로 테러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판단해서다. 연방 법원의 가넷 판사도 추가 혐의 2건을 기각하면서 사형 선고 가능성을 배제시켰다. 연방법상 살인죄는 매우 제한적 요건에서만 적용되는데, 검찰이 그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이유였다.
이날 유죄 인정으로 연방 재판은 열리지 않게 됐다. 가넷 판사는 최고 종신형까지 선고할 수 있다고 밝혔고, 선고일은 오는 12월18일로 정해졌다. 뉴욕남부지검의 제이미 맥도널드 연방검사는 재판 후 취재진에게 “이는 우발적 폭력이 아니라 계획되고 치밀하게 계산된 범행이었다”며 종신형을 구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는 “어떤 불만이나 정치적 신념, 이념적 대의도 살인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암살에 영웅은 없다”고 말했다.
법정에 참석한 톰슨 측 유족은 “오늘의 유죄 인정은 브라이언과 우리 가족을 위한 정의를 향한 중요한 진전”이라며 “그를 잃은 아픔은 무엇으로도 치유되지 않지만, 연방 사법 시스템이 이 잔혹한 행위에 책임 있는 사람에게 책임을 물은 것에 감사한다. 이제 선고가 이 범죄의 중대성을 반영하기를 법원에 기대한다”는 입장을 냈다.
◇향후 절차는
관건은 뉴욕주에서 다음 달 8일로 예정된 별도의 살인 재판이다. 맨지오니는 주 법원에서 2급 살인 등의 혐의로 유죄가 인정되면 25년에서 최고 종신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그의 변호인 캐런 프리드먼 아그니필로는 재판 직후 취재진에게 뉴욕주의 이중처벌 금지 조항을 근거로 주 살인 혐의를 기각해달라는 신청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연방 혐의(스토킹)와 주 혐의(살인)가 법률상 명목은 다르지만 같은 행위에 대한 것인 만큼 두 번 처벌받을 수 없다는 논리다. 앞서 맨지오니는 올해 초 법정에서 예정에 없던 발언을 통해 “1 더하기 1은 2다. 상식적으로 봐도 이중처벌”이라며 답답함을 토로한 바 있다.
가넷 판사는 연방 선고형이 주 법원 판단과 별도로 합산될 수 있다고 밝혀 주 재판이 그대로 진행될 경우 형량이 추가될 가능성도 열어뒀다. 이중처벌 기각 신청이 받아들여질지, 주 재판이 예정대로 다음 달 열릴지가 주목된다.
루이지 맨지오니의 변호인인 캐런 프리드먼 애그니필로(왼쪽)와 마크 애그니필로가 1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형사법원 밖을 걸어가고 있다. (사진=로이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