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방미 李, 대미투자 '막판 숙제'…15% 관세선 사수 시험대

해외

이데일리,

2026년 8월 17일, 오전 08:48

[이데일리 김상윤 기자] 이재명 대통령의 9월 미국 방문을 앞두고 청와대가 2000억달러 규모 대미 투자 프로젝트 이행 상황을 주요 통상 현안으로 챙기고 있다. 지난해 한국이 총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하는 대신 미국의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춘 만큼, 투자 이행이 지연될 경우 어렵게 확보한 ‘15% 관세선’에도 부담이 될 수 있어서다. 청와대로서는 이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마주 앉기 전 적어도 대미 투자 1호 프로젝트나 구체적인 이행 로드맵을 가시화해야 하는 상황이다.

대미 투자 발표가 계속 늦어지고 미국의 추가 관세 조치까지 현실화할 경우 이 대통령의 방미에서도 투자 이행 문제가 주요 통상 현안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청와대로서는 정상외교에 통상 현안이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의 이번 방미를 계기로 돌파구를 마련해야 하는 셈이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7월 7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앙카라 대통령궁에서 열린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부부 주최 공식 환영 만찬에서 대화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7월 7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앙카라 대통령궁에서 열린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부부 주최 공식 환영 만찬에서 대화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김정관 3주 만에 美행…“생각보다 다양한 쟁점”

김 장관이 1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를 다시 찾은 것도 이런 상황과 맞닿아 있다. 지난달 미국을 방문한 지 약 3주 만이다. 당초 예정에 없던 일정이었지만 대미 투자 프로젝트를 둘러싼 세부 협상이 막판에 접어들면서 직접 조율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김 장관은 워싱턴DC 인근 덜레스 국제공항에서 취재진과 만나 “막판이 되면서 실무적으로 다양한, 구체적인 쟁점들이 나오고 있다”며 “화상회의도 하고 실무 접촉도 했는데 전체적으로 한 번 정리할 필요가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목표로 해온 8월 말~9월 초 프로젝트 발표 가능성에 대해서도 “그 목표하에서 디테일하게 협상 중인데 생각했던 것보다 다양한 쟁점들이 나오고 있다”며 “그것을 목표로 어떻게 해서든 해결해 보자는 측면에서 왔다”고 설명했다.

김 장관이 3주 만에 다시 워싱턴행 비행기에 오른 것은 실무협상만으로 풀기 어려운 쟁점이 남아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김 장관은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 등 트럼프 행정부 관계자들과 만나 투자 대상과 사업 구조 등 세부 쟁점을 놓고 막판 협의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최근 산업부 등 관계 부처를 통해 대미 투자 프로젝트 진행 상황과 미국 측 요구사항을 점검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측의 투자 이행 요구가 거세지는 상황에서 이 대통령의 방미까지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은 만큼 투자 1호 프로젝트 선정과 향후 이행 계획을 서둘러 정리할 필요성이 커진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미국 텍사스주의 약 200억달러 규모 가스복합화력발전단지 건설 사업이 대미 투자 1호 프로젝트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대형 원전과 소형모듈원전(SMR) 관련 사업도 물밑에서 검토됐지만 적용 기술과 사업 구조 등을 놓고 한미 간 이견이 남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미 조인트팩트시트에는 한국이 트럼프 대통령 임기 종료 시점인 2029년 1월까지 조선업 협력 1500억달러와 전략투자 2000억달러 등 총 3500억달러의 대미 투자를 추진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환율 여건 등을 감안해 연간 투자 상한은 200억달러로 정했지만, 미국 측은 실제 자금 투입 시점과 별개로 투자 프로젝트 발표를 서둘러 달라는 입장을 한국 정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입장에서는 한국이 관세 인하 혜택은 이미 받고 있으면서 투자 이행은 늦어지고 있다는 불만이 나올 수 있는 구조다. 트럼프 행정부가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대규모 해외투자 유치 성과를 가시화할 필요가 있다는 점도 투자 발표를 재촉하는 배경으로 꼽힌다. 지난 14일 미셸 스틸 주한미국대사가 한국 정부 각료 가운데 외교부 장관에 이어 김 장관을 만난 것도 미국이 대미 투자 이행을 주요 현안으로 보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됐다.

다만 청와대와 정부가 미국의 속도 요구만을 좇아 사업을 서둘러 확정하기도 쉽지 않다. 조선업 협력을 제외한 2000억달러 전략투자에는 ‘상업적 합리성’이 전제돼 있기 때문이다. 한미 조인트팩트시트와 관련 특별법 시행령에는 전략투자 사업의 예상 수입으로 원리금을 충당할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의 기준이 반영돼 있다. 수익성이 불확실한 사업에 정부 자금을 투입했다가 손실이 발생할 경우 향후 재정적·법적 책임 문제가 불거질 수 있어 사업 선정에 신중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미국 측에서는 한국 정부가 ‘상업적 합리성’을 이유로 투자 결정을 미루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국내에서는 해당 조건을 충족하는 신규 사업을 단기간에 발굴하는 데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북미 사업을 담당하는 한 재계 핵심관계자는 “정부에서는 수익성이 담보되지 않은 사업은 자제하라고 하지만, 수익성이 좋은 사업은 이미 국내 기업들이 진출해 있는 경우가 많고 막상 새로 찾으려 하면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숙제’를 제출해야 하는데 여간 간단치 않다”고 귀띔했다.

미국이 원하는 시점에 투자 성과를 보여줘야 하지만 손실 가능성이 높은 사업을 정치·외교적 필요만으로 밀어붙일 수도 없는 딜레마에 놓여 있는 셈이다.

◇투자 늦으면 ‘15% 관세선’도 부담

청와대가 대미 투자 프로젝트를 중요하게 보는 가장 큰 이유는 투자 이행이 관세 문제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정부 안팎에서는 대미 투자 이행 속도가 향후 미국과 추가 관세 문제를 협의하는 과정에서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최근 미국의 추가 관세 움직임은 이런 부담을 더욱 키우고 있다. 미국은 이미 강제노동 제품 사용 문제와 관련해 한국에 12.5% 관세를 부과한 데 이어 무역법 301조에 따른 과잉생산 조사도 진행하고 있다. 조사 결과에 따라 추가 관세가 부과될 경우 지난해 한미 무역합의에서 사실상 정한 ‘15% 상한’을 넘어설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정부는 미국 측과 기존 한미 합의의 정신을 지켜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는 입장이다. 김 장관도 러트닉 상무장관과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강제노동 관세 논의 과정에서 한미 간 합의를 존중하겠다는 뜻을 밝혀왔다고 설명했다.

다만 김 장관은 과잉생산 조사 결과에 따른 추가 관세가 나오더라도 15% 상한이 유지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예단하지 않고 최선을 다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정부가 15% 관세선을 이미 확보된 결과라기보다 앞으로 계속 지켜내야 할 협상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의 갑작스러운 면직도 변수다. 이 대통령은 지난 15일 여 본부장을 직권면직했다. 정부는 구체적인 면직 사유를 밝히지 않았으며 한미 관세 협상과는 무관한 사안으로 알려졌다.

다만 대미 투자 프로젝트를 놓고 한미 간 막판 협상이 진행되는 시점에 통상교섭본부장이 공석이 되면서 협상 연속성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산업부는 당분간 박정성 통상차관보 등을 중심으로 관련 업무를 이어갈 방침이다.

김 장관은 “여 본부장이 비관세 분야와 FTA 쪽을 많이 챙겨왔지만 개인이 다 챙긴 것은 아니다”며 “협상은 개인이 하는 게 아니고 전체 조직이 같이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공백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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