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부에는 안 보여…빅테크 AI 지출, 실제론 3조달러 더 많아

해외

이데일리,

2026년 8월 18일, 오전 10:22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미국 대표 빅테크 9개사의 ‘숨어 있는’ 인공지능(AI) 관련 지출이 3조달러(약 4251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들이 분기마다 공시하는 자본지출만 봐서는 투자자들이 실제 부담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다는 뜻이다.

(사진=AFP)
(사진=AFP)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7일(현지시간) 메타·알파벳(구글 모회사)·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MS)·오라클·엔비디아·브로드컴·스페이스X·AMD 등 미국 기술기업 9곳의 최근 증권 공시 주석을 분석한 결과, 재무제표에 잡히지 않는 AI 관련 약정이 3조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3조달러는 이들 9개사가 지난 1년 동안 집행한 자본지출 6000억달러(약 850조원)의 5배에 달하는 규모다. 또한 장부에 잡힌 리스부채(임차 중인 시설에 앞으로 낼 임차료)와 장기차입금을 합친 것의 약 3배 금액이다.

3조달러는 크게 둘로 나뉜다. 하나는 빌려 쓰기로 계약은 맺었지만 아직 사용을 시작하지 않은 시설의 임차료다. 회계에서 ‘미개시 리스’라 부르는 이 항목이 1조 2000억달러(약 1700조원)로, 1년 전 공시액의 4배로 불었다. 다른 하나는 칩과 전력 등을 사기로 미리 약속한 구매 약정으로 1조 9000억달러(약 2692조원)다. 회계 기준상 임차료는 실제로 내기 시작할 때, 구매 약정은 물건이나 서비스를 받을 때 비로소 장부에 오른다.

메타가 루이지애나주에 짓는 초대형 데이터센터 ‘하이페리온’이 대표 사례다. 축구장 1700개 크기인 이 시설도, 건설 자금인 270억달러(약 38조 3000억원) 부채도 메타 장부에는 없다. 블루아울캐피털이 운용하는 펀드가 합작사 지분 대부분을 갖고, 그 지분을 보유한 지주회사 베이넷인베스터가 채권을 발행해 돈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메타는 소수주주이자 임차인일 뿐이며, 메타가 내는 임차료가 채권 상환 재원이 된다.

메타는 2029년부터 4년간 임차하기로 하고 최장 20년까지 연장할 수 있는 선택권을 뒀다. 20년을 채우지 못하면 채권 투자자 손실을 메워주겠다고 보증했지만, 실제로 지급할 가능성이 낮다고 보고 부채로 잡지 않았다. 초기 임차 약정액은 123억달러(약 17조 4000억원), 6월 말 기준 메타의 미개시 리스 총액은 3470억달러(약 491조 7000억원)다.

구매 약정이 가장 크게 불어난 곳은 알파벳이다. 6월 30일 기준 8110억달러(약 1149조원)로, 석 달 전 3320억달러(약 470조원)의 2.4배가 됐다. 회사는 기술 인프라와 재고, 데이터센터용 전력 확보 계약이 주라고만 밝혔고 급증 이유는 설명하지 않았다. 전력 계약 가운데는 2054년까지 이어지는 것도 있다. 엔비디아는 지난 4월 26일부터 2027년 1월 회계연도 말까지 270억달러를 다른 기업 주식에 넣기로 약속했다.

알파벳·아마존·메타·MS 4곳만 떼어 보면 격차가 뚜렷하다. 장부에 잡힌 리스부채와 장기차입금은 각각 2480억달러(약 351조원), 3560억달러(약 504조원)인데, 장부 밖 미개시 리스는 9040억달러(약 1281조원), 구매 약정은 1조 5200억달러(약 2153조원)에 이른다. 전년 대비 증가율도 알파벳이 800%대, 메타가 750%대로 자본지출 증가율을 크게 앞질렀다.

낙관론자들은 AI 수요가 몇 년간 강할 것이라며 청구서를 감당할 매출이 들어올 것으로 본다. 반면 알파벳과 아마존은 최근 자본지출이 영업으로 번 현금을 넘어서면서 잉여현금흐름이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벌어들인 돈보다 쓴 돈이 많았다는 얘기다. 구매 약정과 이미 서명한 임대차 계약은 대부분 취소할 수 없어, 수요가 어긋나면 쓰지도 못할 설비에 값을 치러야 한다.

모건스탠리 회계 담당 애널리스트들은 지난 4월 보고서에서 “장부 밖 약정이 잦아지고 커지고 복잡해지면서 투자자가 기업의 총 잠재 레버리지를 평가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레버리지란 빚을 끌어다 쓰는 정도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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