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사진=AFP)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은 20일(현지시간) 이런 ‘슬랩(SLAPP) 소송’이 미국에서 남발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관련 자료를 관리하는 뉴욕대 연구팀에 따르면 슬랩 소송은 재작년보다 지난해 32% 늘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게시물이 빌미가 되는 사례가 특히 많았다.
슬랩은 ‘시민 참여를 방해하기 위한 전략적 소송’의 영어 머리글자를 딴 말이다. 돈 많은 기업이나 유력 인사가 명예훼손·비방·업무방해 등을 내세워 소송을 거는 방식이 대부분이다.
대표적 사례가 세계 최고 부자인 일론 머스크다. 2023년 언론 감시단체 미디어매터스가 대기업 광고들이 히틀러와 나치 독일을 옹호하는 게시물 옆에 노출됐다는 보고서를 내놓은 뒤 IBM과 월트디즈니 등이 잇따라 엑스(X) 광고를 중단하자, 플랫폼을 운영하는 머스크는 같은해 11월 이 단체를 향해 “월요일에 법원이 열리자마자 핵폭탄급 소송을 내겠다”고 경고했다.
미디어매터스는 미국은 물론 해외에서도 재판에 대응해야 했다. 3년 가까이 이어지는 갈등이다. 엑스는 이 단체가 자사를 신나치와 반유대주의가 지배하는 공간처럼 보이게 해 손해를 입히려 했다고 주장한다.
비영리단체 언론자유재단은 이 소송을 두고 “안타깝게도 효과적인 슬랩 소송이 되고 말았다”고 평가했다. 재판 결과와 무관하게, 소송당할 위험을 느끼는 순간 비판이 움츠러들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슬랩 소송으로 지목된 주요 재판. (출처=니혼게이자이신문)
슬랩 소송은 1980년대 대기업이 환경단체에 맞서는 전략으로 쓰면서 퍼졌다. 법과 윤리를 전공한 베넷 거슈먼 페이스대 교수는 “유력 기업과 개인이 법적 절차와 법원을 악용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소송을 당한 쪽의 부담은 무겁다.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단체 ‘자유발언연구소’는 근거 없는 명예훼손 소송에 대응하는 데 통상 2만1000~5만5000달러(약 2930만~7670만원)가 든다고 추산했다. 경우에 따라 수백만달러가 들기도 한다.
엑스가 혐오 표현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가 머스크에게 소송당한 디지털증오대책센터(CCDH)는 대응 비용으로 25만달러(약 3억 4900만원)를 썼다. 임란 아메드 대표는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드는 과정”이라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지난해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과의 관계를 다룬 보도를 문제 삼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100억달러(약 13조 9500억원)를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거슈먼 교수는 이런 사례를 들며 “예전보다 훨씬 자주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권력자라 해도 악의적인 명예훼손에 맞서는 행위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다만 승산도 없이 압박을 위해 제기되는 재판이 늘어나면 헌법이 보장한 언론의 자유가 위태로워진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AFP)
각 주(州)에서는 대응 입법이 잇따르고 있다. 뉴욕과 캘리포니아, 텍사스 등 40개 주가 반슬랩법을 시행 중이다. 이 법이 있는 주에서는 특별 신청을 통해 슬랩으로 인정되면 소를 각하할 수 있다.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드는 증거 개시 절차 전에 소송을 멈출 수 있어 피고에게 유리하다. 원고에게 변호사 비용을 물리는 주도 있다.
이 문제에 정통한 데이비드 오즈번 변호사는 “슬랩 소송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많이 일어나고 있다”며 “피고가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대부분 합의로 끝나는 탓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자택이 압수수색당한 경험을 뮤직비디오로 만들었다가 오하이오주(州) 경찰에게 소송당한 래퍼 아프로맨을 변호해 승소했다. 오즈번 변호사는 “표현의 자유를 봉쇄하려 한 전형적인 슬랩 소송이었다”며 “아프로맨이 이긴 것은 재판을 끝까지 끌고 갈 돈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최근에는 반슬랩법이 있는 주를 피해 소송을 내는 흐름도 강해지고 있다. 자신이 쓴 책 때문에 소송을 당한 언론인 오언 히긴스는 “뉴욕주에 반슬랩법이 있어서 상대가 일부러 연방법원에 소송을 냈다”고 주장했다. 연방법원 재판이었지만 뉴욕주 반슬랩법 적용이 인정돼 소는 각하됐다. 다만 원고가 항소해 사태는 끝나지 않았다.
아메드 대표는 “억만장자가 법원을 무기로 쓸 수 있는 상황은 권력에 책임을 묻는 모든 사람에게 위협”이라고 강조했다. 재판을 끝까지 끌고 갈 돈과 시간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소송을 걸 힘’이 남용되는 현실은 사법이 누구를 위한 것이냐는 물음을 던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