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 워시(가운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지난 27일(현지시간)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열린 잭슨홀 경제정책 심포지엄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AFP)
이번 연설은 지난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기자회견 이후 불거진 워시 의장의 통화정책 커뮤니케이션과 인플레이션 대응 의지를 둘러싼 시장의 우려를 상당 부분 불식시키려는 성격이 짙었다.
당시 워시 의장은 연준이 기준금리를 동결한 이유와 향후 정책 방향을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특히 연준의 2% 물가안정 목표가 변경될 가능성까지 열어놓은 듯한 발언은 시장의 의구심을 키웠다. 투자자들은 장기 국채를 팔았고 장기금리는 거의 20년 만의 최고 수준까지 치솟았다.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는 의지가 충분한지를 둘러싼 ‘신뢰의 문제’가 채권시장에 반영된 셈이다.
◇2%는 ‘고정’…7월과 달라진 워시
잭슨홀에서 워시는 훨씬 명확했다. 연준의 2% 물가상승률 목표를 ‘확고하고 고정된(firm and fixed)’ 것으로 규정했다. 인플레이션이 목표치를 웃도는 상황에서 연준의 최우선 과제는 물가라고 못 박았다.
통화정책 수단에 대해서도 모호함을 걷어냈다. 그는 단기금리가 연준의 물가안정과 최대고용이라는 이중책무를 달성하기 위한 ‘주된 수단(predominant tool)’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금융여건 역시 제약적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이는 단순한 원론적 발언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금리 수준이 경제를 지나치게 억누르고 있지 않다는 판단은 인플레이션이 지속될 경우 추가 금리인상을 뒷받침하는 논리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장의 반응은 지난달과 달랐다. 7월 기자회견 이후에는 워시 체제에 대한 불확실성이 부각되며 장기금리가 크게 뛰었다. 이번에는 정책금리 전망에 민감한 2년물 국채금리가 한때 9bp(베이시스포인트, 1bp=0.01%포인트) 상승한 반면 30년물 금리는 오히려 2bp가량 하락했다.
시장이 이번 연설을 연준의 신뢰에 대한 우려보다는 실제 정책금리가 올라갈 가능성이 커졌다는 신호로 받아들였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연방기금금리 선물시장에 반영된 9월 금리인상 확률도 연설 전 약 40%에서 55% 안팎으로 뛰었다.
◇금리 방향은 말하지 않는다…‘의도된 모호함’
하지만 워시가 시장이 요구했던 모든 답을 내놓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향후 금리 방향을 미리 알려달라는 요구에는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그는 중앙은행이 미래의 금리 경로를 제시하는 ‘포워드 가이던스’가 금융위기와 같은 비상 상황에서는 유용할 수 있지만 평상시에는 “명확성을 추구한다는 명목으로 오히려 모호성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래 금리에 대한 준(準)약속은 새로운 정보가 들어왔을 때 연준이 최선의 결정을 내릴 자유까지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배경에는 경제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중앙은행의 전제 자체에 대한 워시의 회의론이 깔려 있다. 경제 상황과 정책 효과를 기계적인 공식처럼 계산해 미래 금리 수준을 제시할 만큼 연준의 경제에 대한 이해가 정밀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워시 체제에서 시장이 연준과 소통하는 방식이 이전과 달라질 수 있음을 뜻한다. 연준 의장의 발언에서 다음 금리 결정을 읽어내기보다는 투자자들이 고용과 물가, 성장 등 경제지표를 직접 해석해 금리 경로를 가격에 반영해야 하는 비중이 커질 수 있다.
워시의 “결정이 아닌 원칙에 전념한다”는 발언이 중요한 이유다. 연준이 무엇을 중요하게 보는지는 설명하되 그 정보로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회의 때까지 열어놓겠다는 의미다.
케빈 워시 연준 의장이 지난 27일(현지시간)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열린 잭슨홀 경제정책 심포지엄 만찬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AFP)
워시가 취임 전 강조했던 새로운 통화정책 아이디어와 당장의 금리 결정을 분리한 점도 눈에 띈다.
그는 과거 인공지능(AI)에 따른 생산성 향상과 연준 대차대조표 축소가 금리를 낮출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할 가능성을 거론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워시를 연준 의장으로 지명한 이후 시장이 그의 정책 성향을 판단하는 중요한 근거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이번 잭슨홀에서는 AI를 비롯한 장기 구조 변화가 당장의 금리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명확히 했다. 워시가 출범시킨 5개 태스크포스(TF)의 연구 결과에 대해서도 향후 정책 과제를 준비하기 위한 작업일 뿐 “현재의 정책 결정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당장 연준이 봐야 할 것은 보다 전통적인 변수라는 의미다. 물가와 고용, 성장, 금융여건이 그것이다. 특히 워시는 현재 미국 경제가 전반적으로 견조하고 금융여건 역시 제약적이지 않다고 평가했다.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금리를 내려야 한다는 논리보다 목표를 웃도는 물가를 잡는 것이 우선이라는 쪽에 무게를 실은 셈이다.
이 같은 판단은 금리인하를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트럼프 대통령과도 거리가 있다. 워시는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인플레이션이 충분히 둔화하지 않는다면 금리를 추가로 올릴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중앙은행의 물가안정 책무를 우선시했다.
◇“모든 회의가 라이브”…데이터 민감도 커진다
결국 시장의 시선은 다시 경제지표로 향하게 됐다.
연준은 다음 달 15~16일 FOMC를 연다. 그전에 8월 고용지표와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나온다. 물가 상승세가 다시 강해질 경우 9월 인상론에 힘이 실릴 수 있다. 반대로 물가 둔화가 확인되고 노동시장 약화가 이어진다면 동결할 명분도 충분하다.
리처드 클라리다 전 연준 부의장이 이번 연설 이후 “모든 회의가 라이브”라고 평가한 것도 이 때문이다. 특정한 금리 경로를 약속하지 않겠다는 워시의 원칙 아래에서는 9월뿐 아니라 이후 FOMC에서도 직전까지 나온 경제지표에 따라 인상과 동결 가능성이 계속 재평가될 수 있다.
이는 시장에는 양날의 검으로 작용할 수 있다. 연준이 잘못된 전망에 스스로 묶이지 않고 경제 상황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다음 정책 방향을 알려주는 연준의 신호가 줄어들수록 경제지표 하나하나가 금리와 주식, 환율에 미치는 충격은 더 커질 수 있다.
워시는 이날 시장에 9월 금리 결정을 알려주지 않았다. 대신 자신이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지는 이전보다 분명하게 보여줬다. 2% 물가 목표는 바꾸지 않고, 필요하면 금리를 사용하되, 다음 결정을 미리 약속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취임 후 첫 잭슨홀 연설에서 ‘워시식 연준’의 첫 윤곽이 드러났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한 트레이더가 업무를 보고 있는 가운데 화면에 케빈 워시 연준 의장의 기준금리 결정 관련 기자회견이 생중계되고 있다. (사진=로이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