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달걀 몇 개에 9만원…이란 9000만의 무너진 삶

해외

이데일리,

2026년 8월 31일, 오전 10:07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9000만 이란 국민들의 삶이 무너지고 있다. 미국·이스라엘과의 전쟁이 6개월을 넘기면서 물가가 1년 새 두 배 가까이 뛴 탓이다.

지난 25일 이란 테헤란 북부의 한 재래시장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사진=AFP)
지난 25일 이란 테헤란 북부의 한 재래시장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사진=AFP)
◇물가 89%·식품값 127% 폭등…리알화 사상 최저

30일(현지시간) 알자지라방송과 AP통신 등에 따르면 이란 통계청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이란력 다섯 번째 달(7월 23~8월 22일)의 물가가 1년 전보다 89% 올랐다고 밝혔다. 특히 식품 물가 상승률은 127%가 넘는다. 국민 대다수가 하루하루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이유다.

화폐 가치가 바닥을 뚫은 탓이 크다. 이란 리알화는 전날 테헤란 시장에서 1달러당 206만8000리알까지 밀리며 사상 최저치를 갈아치웠다. 지난 6월 16일 1달러당 152만6000리알과 비교하면, 불과 74일 만에 화폐 가치가 26% 떨어진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달러로 값이 매겨지는 수입품 가격이 같은 기간 36% 뛴 셈이다. 이란 중앙은행이 고시하는 공식 환율은 1달러당 150만리알 안팎이지만, 국민 대다수가 실제로 부담하는 것은 시장 환율이다.

그 결과 국민들의 밥상에 올라가는 음식이 대폭 줄었다. 전쟁 전과 비교해 쌀값이 60%, 쇠고기값이 150% 각각 폭등해서다. 이란 북부에 사는 41세 두 아이의 어머니는 최근 우유와 달걀, 화장지 등 몇 가지를 사는 데 8900만리알(약 65달러·9만원)을 썼다. 고기는 담지 못했다. 그는 보복이 두려워 이름을 밝히지 않는 조건으로 AP통신에 “기본 생필품을 사는 게 우선순위가 됐고 장바구니는 더 작고 빈약해졌다”고 토로했다.

임금은 물가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이란의 연평균 물가상승률을 68.9%로,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6.1%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올해 법정 최저임금은 월 1억6625만리알로 85유로(약 13만 6000원) 수준인데, 노동계가 추산한 최소 생계비는 월 4억5000만리알(약 225유로·36만원)에 달한다. 최저임금으로는 기본 생계비의 37%밖에 못 채운다는 얘기다.

테헤란 도심의 기술기업에서 데이터 분석가로 일하는 비잔(33)은 3년 전 입사 당시 월급이 1000달러(약 138만원)가 넘었지만, 지금은 세 차례 인상을 거치고도 500달러(약 69만원)에도 못 미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10여년 전 학사 학위를 마치고 이란을 떠났다면 어땠을지 이따금 생각한다며 “그때는 상황이 이 정도로 나빠질 거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에너지 대국이지만…연료·전기 끊기고 겨울 가스난 우려

이란은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자원 부국이지만, 국제사회의 오랜 제재 및 전쟁 여파로 연료난과 전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전쟁 과정에서 석유·가스 시설은 물론 석유화학·철강 공장, 발전소, 주택, 항만, 공항, 교량 등 기반시설들이 무더기로 파괴됐기 때문이다. 이에 당국은 겨울철 천연가스 부족에 벌써부터 대비하고 있다. 이미 자가용 연료 할당량을 줄였고, 몇 주 안에 휘발유 가격도 올릴 방침이다.

수출길도 막혀 있다. 이란은 오만과 호르무즈 해협 통항로 개설에 합의했다고 밝혔지만, 미국은 해협의 전면적이고 조건 없는 재개방을 요구하며 이 합의에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과 미국의 공격이 겹치면서 해협 통항량은 전쟁 전의 일부 수준에 머물러 있다.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은 지난 28일 국영TV 인터뷰에서 정부가 심각한 재정난에 처해 있으며 석유를 파는 것조차 어렵다고 전했다. 국민의 생활 형편을 개선할 여력이 없다는 고백이다.

지난 25일 이란 테헤란의 한 주유소에서 차량들이 급유를 위해 줄지어 서 있는 모습. (사진=AFP)
지난 25일 이란 테헤란의 한 주유소에서 차량들이 급유를 위해 줄지어 서 있는 모습. (사진=AFP)
◇통제 위한 사형·히잡 단속 등 강화…“외부 압박 때마다 반복”

경제가 무너지는 사이 통제는 강화됐다. 사법·정보 당국은 공식 서사에 어긋나는 언행을 잡아내고 있고, 사법부는 매주 새로운 사형 집행 사실을 발표한다. 지난해 6월 이스라엘·미국과의 ‘12일 전쟁’과 올해 1월 전국 반정부 시위 때 붙잡힌 이들이 포함돼 있다.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지난 3월 19일 이후 국가안보 관련 혐의로 최소 56명이 처형됐으며, 이 가운데 27명은 연초 시위와 얽힌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100명 넘는 이들이 비슷한 혐의로 처형 위기에 놓여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이란 정보부는 지난달 국가안보를 이유로 국민이 접촉해서는 안 되는 인물과 매체 명단을 공개했다.

히잡 착용 의무를 강제하는 단속도 다시 강해졌다. 이슬람 규범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카페와 아이스크림 가게, 온라인 판매업체 등이 이번주 무더기로 문을 닫기도 했다.

최고지도자에 오른 모즈타바 하메네이는 지난 28일 서면 메시지에서 “사회적 결속을 해치는 어떠한 행위도 금지된다는 점을 분명히 선언한다”고 경고했다. 테헤란에 사는 사산은 “외부 압박이 커질 때마다 당국이 고삐를 조여왔다는 것이 그동안의 경험”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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