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재무장관 G20 복귀에 유럽 발끈…美와는 별도 회담

해외

이데일리,

2026년 9월 01일, 오전 06:15

[뉴욕=이데일리 성주원 특파원] 러시아 재무장관이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처음으로 주요 20개국(G20) 회의에 직접 참석해 미국 재무장관과 별도 회담을 가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우크라이나 종전을 추진하는 가운데 미국과 러시아의 경제 분야 고위급 접촉이 이뤄지자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와의 관계 정상화로 이어질 수 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안톤 실루아노프 러시아 재무장관이 지난 27일(현지시간) 모스크바 러시아 정부청사에서 열린 정부 회의에 앞서 자리하고 있다. (사진=타스)
안톤 실루아노프 러시아 재무장관이 지난 27일(현지시간) 모스크바 러시아 정부청사에서 열린 정부 회의에 앞서 자리하고 있다. (사진=타스)
31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안톤 실루아노프 러시아 재무장관은 이날 노스캐롤라이나주 애슈빌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 참석했다. 러시아 중앙은행 관계자들도 동행했다.

실루아노프 장관이 G20 회의에 직접 참석한 것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2022년 이후 처음이다. 러시아 측은 앞선 네 차례 G20 회의에 재무장관을 보내지 않았다.

실루아노프 장관은 회의장에서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과 별도로 만났다. 러시아 재무부에 따르면 두 장관은 양국 간 금융 분야 협력과 G20 체제 내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미국과 러시아 경제팀 간 이 같은 고위급 접촉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드물었다. 블룸버그는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로 양국 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 이번 회담이 이뤄졌다는 점에 주목했다.

NBC뉴스는 미 재무부를 인용해 베선트 장관이 실루아노프 장관과 트럼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평화구상에 대해서도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입장차가 여전히 큰 상황에서도 종전 구상을 진전시키기 위한 협상을 계속하고 있다.

미·러 경제관계가 실질적으로 개선될 경우 대러시아 경제제재와 금융 규제, 동결된 러시아 자산 처리 등이 핵심 의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 베선트 장관은 러시아에 대한 미국의 경제제재 정책을 총괄하고 있다.

◇유럽 “러시아 정상화 안돼”…단체사진도 거부

유럽 국가들은 즉각 반발했다. 라르스 클링바일 독일 재무장관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러시아와의 관계 정상화는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공동 대응이 가장 좋지만 미국 측의 입장이 완화되는 것인지 불분명할 때가 있다”며 “그런 점에서 러시아 재무장관을 이곳에서 받아들인다는 신호는 상당히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 측이 그를 정상적인 손님처럼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점을 더욱 명확하게 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럽 측의 반발은 G20의 전통적인 단체사진 촬영에서도 드러났다. 유럽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은 실루아노프 장관과 함께 ‘패밀리 포토’를 찍는 것에 반대했다. 결국 러시아 재무장관을 제외한 채 단체사진을 촬영하기로 결정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왼쪽)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와 가타야마 사쓰키 일본 재무상이 31일(현지시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애슈빌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도착하고 있다. (사진=AFP)
크리스틴 라가르드(왼쪽)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와 가타야마 사쓰키 일본 재무상이 31일(현지시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애슈빌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도착하고 있다. (사진=AFP)
클링바일 장관은 전날 존 힐리 영국 재무장관과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등 유럽 인사들과 러시아의 G20 참여 문제를 논의했다고 밝혔다.

그는 러시아 측에 유럽의 입장을 직접 전달하기 위한 대화 통로를 유지하는 것 자체는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러시아 재무장관이 네 차례 G20 회의 불참 이후 다시 돌아왔다는 사실 자체가 관계 정상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더욱 강하게 맞서야 한다”고 말했다.

유럽은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도 준비하고 있다. 클링바일 장관은 유럽이 새로운 대러시아 제재 패키지를 준비하고 있으며 미국과 긴밀히 협력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美가 참가 명단 결정…러시아 참석, 남아공·스페인은 빠져

이번 논란은 올해 G20 의장국인 미국이 참가국 명단을 결정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주최국인 미국이 구성한 참가 명단에 러시아가 포함됐다는 점이 유럽의 반발을 키웠다.

반면 미국은 지난해 G20 의장국이었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이번 회의에 초청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 중단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갈등을 빚어온 스페인도 참석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이번 애슈빌 회의는 단순한 국제 금융·경제 현안을 넘어 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싼 미국과 유럽의 대러시아 접근법 차이를 드러내는 무대가 됐다. 미국은 러시아와 이례적인 고위급 경제 접촉을 갖고 트럼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평화구상을 논의한 반면, 유럽은 이러한 움직임이 러시아를 국제무대로 정상적으로 복귀시키는 신호가 될 수 있다고 경계하고 있다.

다만 베선트-실루아노프 회담이 곧바로 미국의 대러시아 제재 완화나 관계 정상화를 의미한다고 단정하기는 이르다. 현재 공개된 회담 내용은 금융 분야와 G20 협력, 트럼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평화구상 논의 정도다. 향후 미국이 유럽이 준비하는 추가 대러 제재에 어떤 태도를 보일지가 미·러 관계와 미국·유럽 간 공조의 향방을 가늠할 중요한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31일(현지시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애슈빌에서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이 본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31일(현지시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애슈빌에서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이 본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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