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에너지장관, 베네수엘라 도착…석유협정 마무리 수순

해외

이데일리,

2026년 9월 02일, 오후 04:55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크리스 라이트 미 에너지장관이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 도착했다. 미국이 이 나라 석유 매장량의 5분의 1을 사실상 손에 넣는 협정에 마침표를 찍기 위해서다.

크리스 라이트 미국 에너지장관. (사진=AFP)
크리스 라이트 미국 에너지장관. (사진=AFP)
◇셰브런 등 이번 주 줄줄이 서명

1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라이트 장관은 이날 밤 카라카스 인근 마이케티아 시몬볼리바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기자들에게 “이번 계약에 따른 투자로 원유 생산이 대폭 늘면 유가에 하방 압력이 가해질 것”이라며 수년 안에 베네수엘라 산유량이 두 배 이상 늘어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라이트 장관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추진하는 석유협정 서명식을 마무리하기 위해 베네수엘라를 방문했다. 이번 방문은 지난 1월 미군이 니콜라스 마두로 전 대통령을 붙잡아 간 뒤 두 번째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베네수엘라와의 석유협정 뼈대를 공개했다. 백악관 설명자료에 따르면 미국이 뒤를 받치는 민간 석유회사 노스아메리칸블루에너지파트너스(NABEP)가 매장량 650억배럴 규모의 유전 17곳을 100년간 빌린다. 미국 전체 확인 매장량 460억배럴을 웃도는 양이다. 미 정부는 이 회사 지분 35%를 갖고, 생산된 원유의 20%를 생산원가로 사들이며 나머지 물량에도 우선매수권을 쥔다. 매장량 기준으로 NABEP는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에 이은 세계 2위 민간 석유회사가 된다.

베네수엘라 의회는 이날 이 협정을 승인했다. 2일에는 미국 최대 석유기업 셰브런을 비롯해 이탈리아 에니, 인도 ONGC, 콜롬비아 지오파크 등이 잇따라 개별 계약에 서명한다. 셰브런은 세계 최대 원유 매장지인 오리노코 중유벨트에서 사업을 확대할 예정이다.

미국이 서두르는 배경에는 유가가 있다. 지난 2월 말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면서 미국 휘발유값은 갤런당 4달러를 넘어섰다. 전쟁 전에는 3달러에 못 미쳤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물가 불만이 커진 상황이다. 다만 라이트 장관은 지난달 31일 호르무즈 해협을 지난 원유가 1700만배럴로 전쟁 이후 가장 많았다고 밝혔다.

◇야권 반발 속 美 “중·러 밀어냈다”

베네수엘라 야권은 반발하고 있다. 일부 야당 의원은 의회 거수 표결에서 기권하며 문서로 된 조건부터 확인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루이스 에밀리오 론돈 의원은 “작은 글씨에 무엇이 적혀 있는지 알아야 하고 알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마두로 전 대통령이 끌려간 지 여덟 달이 지나도록 민주주의가 돌아오지 않았다는 불만도 크다. 반면 호르헤 로드리게스 국회의장은 “석유가 땅속에 묻혀 있으면 누구에게 이득이냐”며 협정을 옹호했다.

미 당국자들은 이번 협정을 두고 “중국과 러시아 기업들의 영향력 아래 있던 유전을 확보하는 지정학적 기회”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NABEP를 이끄는 알레한드로 베탕쿠르가 미국과 유럽 당국의 조사를 받은 전력이 있다는 지적에 “기소된 적은 없다”며 “누구를 성인으로 추천하는 자리가 아니다. 지정학은 이상적인 것과 불완전한 것 사이의 선택인 경우가 드물다”고 일축했다.

미 당국자들은 또 이번 협정이 베네수엘라 민주주의를 되살리는 과정의 일부라고 강조하면서도 선거는 단기간에 치르기 어렵다고 인정했다. 정부와 야권의 다음 단계 대화는 이달 중순 재개된다.

중국은 반발했다. 궈자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중국과 베네수엘라 간 협력은 국제법과 양국 법률의 보호를 받는다”며 “베네수엘라 내 중국의 정당한 권리와 이익은 반드시 보장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가 간 경제·무역 협력은 평등과 상호 호혜의 원칙을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크리스 라이트 미 에너지장관이 탑승한 항공기가 1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 라과이라주 마이케티아의 시몬볼리바르 국제공항에 착륙했다. (사진=AFP)
크리스 라이트 미 에너지장관이 탑승한 항공기가 1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 라과이라주 마이케티아의 시몬볼리바르 국제공항에 착륙했다. (사진=AFP)
◇“오히려 회복 늦출 것” 반론도

협정 자체가 비현실적이라는 비판도 거세다.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이 협정을 “웃음극”이라 부르며 650억배럴이라는 추정이 회수율을 20%로 잡은 지나친 낙관이라고 지적했다. 6~8%로 보면 200억배럴이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100년 임차 역시 개발권을 25년으로 제한한 베네수엘라 법상 불가능하며, 델시 로드리게스 임시 대통령도 기간을 25년이라고 밝혔다.

로이터 칼럼니스트 론 부수는 협정이 오히려 석유산업 회복을 늦출 수 있다고 짚었다. NABEP에만 특혜를 주면 시장가로 원유를 사고팔아야 하는 셰브런 등 경쟁사가 구조적으로 불리해지는 이중 구조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이 다른 나라 석유자원을 직접 통제한 전례가 없다고도 지적했다.

현실은 아직 장밋빛과 거리가 멀다. 로이터가 선박 추적 자료를 분석한 결과 베네수엘라의 지난달 원유 수출은 하루 117만배럴로 전달과 큰 차이가 없었다. 미국으로 간 물량은 55만 3000배럴로 오히려 줄었고 셰브런이 실어낸 원유도 28만 6000배럴로 감소했다. 늘어난 곳은 인도와 유럽이었다. 산유량도 1990년대 후반 하루 300만배럴을 넘어섰다가 투자 부족과 경영 부실, 미국 제재로 무너져 최근 110만~120만배럴에 머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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