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코로나 후 최다 순방…트럼프 회담 앞두고 '몸값 올리기'

해외

이데일리,

2026년 9월 03일, 오전 10:40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가장 바쁜 해외 순방에 나서고 있다. 이달 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이 미국보다 믿을 만한 상대라는 점을 각인시키려는 행보라는 해석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월 15일 중국을 국빈방문한 뒤 떠나기 전 베이징 중난하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AFP)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월 15일 중국을 국빈방문한 뒤 떠나기 전 베이징 중난하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AFP)
◇미 동맹국까지 파고든 시진핑…유엔총회는 건너뛴다

2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시 주석은 이날 이집트 카이로 대통령궁에서 압델 파타 엘시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개최했다. 다음주에는 인도 뉴델리에서 열리는 브릭스(BRICS)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오는 24일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5월 베이징을 찾은 데 대한 답방으로 워싱턴을 국빈방문한다.

앞서 시 주석은 이번 주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중국·러시아와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주도하는 이 안보 협의체에는 인도와 파키스탄, 이란도 들어와 있다.

시 주석이 팬데믹 이후 해외에 나가는 대신 외국 정상을 베이징으로 불러들이는 쪽을 선호해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행보다. 전문가들은 시 주석의 잇단 순방이 개발도상국과 중동에서 중국의 외교적 영향력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주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특히 미국의 동맹국인 이집트를 방문한 건 의도적인 성격이 짙다는 평가다. 이집트는 미국에서 매년 13억달러(1조 7680억원)의 군사 원조를 받고 있다.

마샤오린 저장외국어대 교수는 “미국의 전반적인 국력 쇠퇴와 전략적 후퇴, 러시아의 제한된 역량, 유럽 국가들의 영향력 약화가 중동 국가들로 하여금 더 동쪽인 중국을 바라보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와 이란과의 전쟁, 전통적 안보 파트너들에 대한 엇갈린 신호가 미국에 대한 지지를 흔들어놓은 상황이다.

시 주석이 미국 방문 중에 유엔 무대에 서지 않는다는 점도 주목된다. 폴리티코는 지난달 17일 소식통 4명을 인용해 시 주석이 23일 밤 미국에 도착해 24일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한 뒤 25일 떠날 예정이라며, 22일 시작되는 유엔총회에는 참석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중국은 뉴욕에 사전 준비팀조차 보내지 않았다.

미 외교가에서는 시 주석이 총회 연설을 통해 미국·이란 전쟁과 대비되는 중국식 평화 구상을 내놓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던 터라 의외라는 반응이 나왔다. 중국이 주도하는 다자회의에는 잇달아 얼굴을 내밀면서도, 미국이 이끌어온 국제기구 무대는 비켜서는 셈이다.

◇“고대 문명” 앞세운 시진핑…10년 만의 이집트 방문

2016년 이후 10년 만에 이집트를 국빈방문한 시 주석은 이날 엘시시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두 나라 모두 ‘고대 문명’이라는 점을 부각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는 기자 피라미드 인근 대이집트박물관도 찾을 예정이다.

시 주석은 이집트 매체를 통해 공개한 서한에서 “아랍 세계를 잇고 아프리카 대륙으로 뻗어나가는 이집트의 독특한 위치를 활용해 이집트 측과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이어 “100년 만의 대변혁”이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며 “중국과 이집트는 진정한 다자주의를 실천해 세계 평화와 안정, 국제적 공정과 정의를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100년 만의 대변혁’은 미국의 힘이 빠지고 있다는 뜻으로 중국이 즐겨 쓰는 표현이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시 주석은 또 “중동에 대한 외부 세력의 간섭에 반대한다”며 “역내 국가들이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서도 “어느 때에도 무시되거나 주변으로 밀려나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 주석은 또 미국과 이란의 전쟁으로 위태로워진 해상 운송을 지키기 위해 역내 국가들과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도 했다.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이 2일(현지시간) 이집트 카이로 알이티하드야 대통령궁에서 압델 파타 엘시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사진=이집트 대통령실 제공, AFP)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이 2일(현지시간) 이집트 카이로 알이티하드야 대통령궁에서 압델 파타 엘시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사진=이집트 대통령실 제공, AFP)
중국은 이집트와 경제 협력도 이미 진행하고 있다. 중국은 이집트가 짓고 있는 신행정수도 건설에 참여하고 있다. 중국 화웨이는 2024년 이집트에 클라우드 서비스를 열면서 인공지능(AI)과 아랍어 대규모언어모델(LLM)을 제공하겠다고 했다.

◇‘AI 협력’ 카드까지 꺼냈지만…각국은 여전히 신중

한편 시 주석은 SCO 회의에서도 회원국들이 “외부 세력이 우리 내정에 간섭하고 정치적 안보를 위협하며 지역 안정을 훼손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제 AI 응용 협력센터’를 세우고 앞으로 3년간 회원국들과 100개의 기술 협력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다만 각국이 중국에 선뜻 다가서는 것은 아니다. 중국의 막대한 무역흑자가 자국 산업을 위협할 수 있어서다. 이번 주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에서는 무역 불균형을 줄이기 위한 ‘비시장적 정책’ 철폐 방안이 중국의 반대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그럼에도 중국이 겨냥하는 지점은 분명하다는 진단이다. 미국이 관세와 전쟁으로 신뢰를 잃는 사이, 믿을 만한 무역·투자 상대라는 자리를 대신 차지하겠다는 것이다.

FT는 시 주석의 이번 순방을 “2019년 이후 가장 빡빡한 일정”이라고 전하며, 미국의 영향력을 깎아내리기 위한 캠페인의 일환으로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마주 앉기 전에 우군을 최대한 확보해두겠다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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