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EU “반도체 더 지어라”…대만, 해외 투자 확대

해외

이데일리,

2026년 9월 07일, 오후 02:16

[이데일리 신수정 기자] 세계 첨단 반도체 생산을 주도하는 대만이 미국과 유럽의 생산시설 유치 압박에 대응해 해외 투자를 늘리고 반도체를 외교적 지렛대로 활용하고 있다. 인공지능(AI) 확산으로 커진 반도체 산업의 이익을 우방국과 나누는 대신 국제사회에서 대만의 전략적 입지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이다.

ABF가 사용되는 고성능 반도체 패키지기판을 형상화한 이미지. (사진=아지노모토 홈페이지)
ABF가 사용되는 고성능 반도체 패키지기판을 형상화한 이미지. (사진=아지노모토 홈페이지)
7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대만 정부와 주요 반도체 기업들은 지난주 타이베이에서 열린 ‘세미콘 타이완’에서 대만을 AI 시대의 안정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공급 파트너로 내세웠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이 대만 기업에 현지 투자를 확대하라고 요구하는 상황에서 해외 생산 확대를 받아들이겠다는 메시지도 잇달아 나왔다.

대만에는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TSMC가 있다. TSMC가 생산하는 첨단 반도체는 AI 서비스와 데이터센터 등에 폭넓게 사용된다. 중국의 외교적 압박으로 국제무대 참여에 제약을 받아온 대만은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국제사회의 지지를 확보하는 수단으로 활용해왔다. 중국은 대만을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라이칭더 대만 총통은 세미콘 타이완 행사에서 대만 기업의 세계 시장 확대를 강조했다. 그는 대만 기업들이 해외 진출을 통해 공급망의 회복력을 높이고 번영을 공유하겠다는 취지로 말했다. 대만의 반도체 경쟁력이 민주주의와 법치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대만이 가장 큰 투자 압박을 받는 곳은 미국이다. 미국은 대만의 최대 국제 후원국이자 무기 공급국이지만 반도체 생산을 미국으로 더 이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TSMC는 미국 애리조나주에 모두 2650억달러를 투자해 반도체 생산시설을 짓고 있다. 쿵밍신 대만 경제부장은 세미콘 타이완 미국관 개막식에서 대만 기업들이 미국에 200억달러를 추가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만은 올해 미국과 무역협상을 통해 대미 투자를 늘리는 대신 수출 관세를 낮추기로 합의했지만 반도체 관세를 둘러싼 불확실성은 남아 있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지난주 CNBC 인터뷰에서 미국에서 반도체를 생산하지 않는 기업에는 반도체 관세가 부과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정부가 반도체 공급망의 자국 이전을 계속 압박하고 있다는 의미다.

다만 미국 정부는 대만과의 협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대만과의 관세 합의를 담당하는 빌 프라우엔호퍼 미 상무부 당국자는 세미콘 행사에서 양측이 협력을 성공시키는 데 공통의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대만 기업들도 해외 생산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엔비디아의 최대 AI 서버 생산업체인 폭스콘의 류양웨이 회장은 대만 기업들이 이제 “대만에서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있는 국가에서 “대만과 함께 생산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 최대 반도체 패키징·테스트 업체 ASE의 우톈위 최고운영책임자(COO)도 같은 토론에서 이에 동의했다. 그는 해외 생산 확대에 대해 정치적으로 올바른 방향이라며 사실상 다른 선택지가 많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유럽도 대만 반도체 기업의 투자를 요구하고 있다. EU는 이번 세미콘 타이완에 킬리안 그로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관계자를 보내 대만 정부와 기업들을 상대로 ‘유럽 반도체법 2.0’을 설명하고 투자 유치에 나섰다.

대만 역시 EU와의 관계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양측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를 지지해왔고 중국과 무역·외교 문제에서도 갈등을 겪고 있다.

프랑수아 우 대만 외교부 차관은 세미콘 타이완 프랑스관 개막식에서 대만과 프랑스가 민주주의와 자유, 규범에 기반한 국제질서라는 가치를 공유한다고 강조했다.

우 차관은 “우리는 기술을 세계를 통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계와 연결하기 위해 사용한다”고 말했다. 대만이 반도체 공급망의 해외 확대를 산업 공동화가 아닌 우방국과의 협력 확대라는 외교 전략으로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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