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 美경고에도 화웨이 AI칩 저울질…"외국 정부 첫 中칩" 되나

해외

이데일리,

2026년 September 08일, AM 09:26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말레이시아가 미국의 거듭된 경고에도 국가 인공지능(AI) 사업에 중국 화웨이의 AI 칩을 쓰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도입이 확정되면 외국 정부가 미국산 대신 중국산 AI 칩을 공식 채택하는 첫 사례가 된다. 미국의 투자는 원하면서도 미국 진영에 완전히 편입되기는 거부하는 나라들을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어떻게 다룰지 가늠할 시험대로 평가된다.

(사진=AFP)
(사진=AFP)
◇“기술 소비자로만 남지 않겠다”

7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말레이시아는 20억링깃(약 4억 9400만달러·6654억원) 규모의 국가 AI 사업에 화웨이 AI 하드웨어를 핵심 기반으로 삼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 자국 데이터에 대한 통제권을 강화하려는 사업으로, 구매 규모는 확인되지 않았다.

검토 대상은 화웨이 간판 제품인 ‘어센드 910C’다. 더 앞선 ‘어센드 950’ 계열은 생산량이 아직 제한적이다. 문제는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해 전 세계를 향해 어센드 910C 사용이 미국 수출 규제 위반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는 점이다.

이 사업은 정부 기밀과 군사·정보 자료를 포함한 데이터를 국내에 두는 것이 핵심이다.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총리는 미국의 ‘클라우드법’이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해왔다. 해외에 저장된 자료라도 미국 법원이 미국 기업에 제출을 강제할 수 있게 한 법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첫 임기 때 서명했다. 안와르 총리는 지난 4월 대학생들과 만나 “그 법이 합리적이라고 보지 않는다”면서도 “그렇다고 트럼프 대통령과 어떻게 논쟁하겠는가”라고 말했다.

안와르 총리는 말레이시아가 해외 기술을 소비만 하는 나라에 머물러선 안 된다고 강조해왔다. 화웨이에서 들여올 설비와 별개로, 자국 통신사들이 외국 기업과 손잡고 더 폭넓은 AI 체계를 제안하도록 독려하는 이유다.

사업 핵심 운영사로는 국영 통신사 텔레콤말레이시아가 선정됐다. 이미 화웨이와 협력 관계를 맺고 클라우드 인프라에 화웨이 기술을 쓰고 있는 회사다. 공개 입찰을 거친 선정이었지만, 미 행정부 일각에서는 미국 기업이 경쟁할 기회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불만이 나온다.

◇엔비디아에 한참 뒤지지만…글로벌 시장 노리는 화웨이

화웨이는 수년간 이어진 미국의 첨단 생산 장비 접근 제한 속에서도 AI 칩 성능을 끌어올리는 데 힘써왔다. 그럼에도 화웨이 가속기는 여전히 엔비디아 제품에 큰 격차로 뒤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생산 전망이 개선되면서 동남아시아부터 중동까지 세계 데이터센터 시장에서 발판을 마련하려 하고 있다. 이집트 정부의 AI 데이터센터 사업에도 뛰어들었고, 미국은 맞불 제안을 준비 중이다.

말레이시아는 미국 기업들의 투자에 힘입어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AI 데이터센터 거점 중 하나로 떠올랐다. 엔비디아와 마이크로소프트, 오라클에 중요한 시장인 만큼 워싱턴도 민감할 수밖에 없다.

◇美 “권위주의 정권에 조종당할 수도”

미 국무부 대변인은 “안전한 기술은 번영하는 경제의 토대”라며 말레이시아가 미국의 중요한 협력국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중국이나 화웨이를 직접 거명하지는 않은 채 “신뢰할 수 없는 공급업체는 권위주의 정권에 의해 조종·교란·통제될 수 있다”며 핵심 인프라와 지식재산권, 국가안보에 강력한 위협이 된다고 지적했다.

미국 관리들은 외국 정부가 제공한 민감한 정보까지 화웨이 장비가 다루게 되는 상황을 우려한다는 뜻을 말레이시아 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와 별도로 글로벌사우스(주로 남반구의 개발도상국)를 겨냥해 AI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묶어 제공하는 프로그램도 준비 중이다. 미국 정부의 자금 지원이 붙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말레이시아는 지난해 5월에도 비슷한 논란을 겪었다. 통신부 차관이 화웨이 어센드 칩 3000개로 국가 AI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발표했다가 곧바로 철회했고, 투자통상산업부는 민간 사업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어센드 910C 등 일부 화웨이 칩을 겨냥한 글로벌 지침을 막 내놓은 데다, 미국이 비공개로 말레이시아를 강하게 질책한 직후였다. 일부 미 당국자들은 말레이시아가 서둘러 거리를 둔 것을 미국의 규제가 억지력을 발휘한 증거로 받아들였다.

다만 투자통상산업부는 당시에도 “모든 수출 통제법을 완전히 준수하겠다”면서 국익에 맞게 정책을 결정할 주권적 권리를 재확인한다고 밝혔다. 국가안보회의 관계자들은 이달 말 이 문제를 논의하러 워싱턴을 찾는다. 안와르 정부는 엔비디아 등 미국 기업이 좀 더 직접 경쟁할 수 있는 추가 입찰 절차도 검토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이번 결정을 순수한 상업적 판단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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