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짊어진 이자만 2700조원…국방비보다 더 쓴다

해외

이데일리,

2026년 September 08일, PM 05:17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세계 각국 정부가 빚을 갚는 데 쓰는 돈이 한 해 2조달러(약 2694조원)를 넘어섰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를 비롯한 10여개 국가에서는 이자가 국방비보다 많다. 사상 최대 규모로 빚을 낸 시점에 조달 비용까지 2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뛴 탓이다.

(사진=AFP)
(사진=AFP)
◇이자가 국방부보다 큰 부처

8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 지난해 빚을 갚는 데 쓴 돈은 2조달러를 넘었다. 전체 회원국 국내총생산(GDP)의 3%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38개국 가운데 12개국 넘는 나라에서 이 비용이 국방비를 웃돌았다. 영국은 현재 이자로만 연 1100억파운드(약 200조원)를 지출한다.

빚 자체도 불어나고 있다. 미국 정부 부채는 지난달 40조달러(약 5경 3880조원)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OECD 국가들이 올해 새로 빌릴 돈은 18조달러(약 2경 4246조원)로 이 역시 역대 최대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전 세계 공공부채는 지난해 세계 GDP의 94%에 이르렀고, 국제통화기금(IMF)은 2030년 무렵 100%에 닿을 것으로 본다.

미 의회예산처(CBO)는 미국의 부채 비용이 향후 10년 사이 두 배로 늘고, 지금 흐름대로라면 2047년 이후에는 사회보장 지출마저 넘어설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보다 국채를 팔기 어려운 나라들의 부담은 더 클 수밖에 없다.

마이크 리델 피델리티인터내셔널 펀드매니저는 “막대한 국가 부채를 계속 오르는 금리로 갈아타야 한다”며 “세계 투자자들이 이미 겁을 먹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공짜로 돈 빌리던 시대는 끝났다”

2008년 금융위기 전에는 금리가 높아도 나랏빚이 적었고, 이후에는 빚이 늘어도 중앙은행이 금리를 눌러줬다. 지금은 사상 최대 부채와 높은 조달 비용이 겹쳤다.

최근 주요 7개국(G7)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평균 4%로 2008년 이후 처음 이 선을 넘었다. 이란 전쟁발 물가 상승 압력에 유럽중앙은행(ECB)은 지난 6월 2023년 이후 처음으로 금리를 올렸고, 케빈 워시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도 이르면 이달 인상을 시사했다.

연기금 제도가 바뀌면서 장기 국채를 사주던 큰손이 물러나고, 조금만 불안해도 높은 금리를 요구하는 헤지펀드가 그 자리를 채운 것도 금리를 밀어 올렸다. 킴 크로퍼드 JP모건자산운용 글로벌 채권 매니저는 “(저금리에 사실상) 공짜로 돈을 빌리던 시대는 확실히 끝났다”며 “채권시장은 이제 재정 규율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돈을 빌리려는 쪽은 정부만이 아니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전 세계 정부와 기업의 빚을 합치면 300조달러(약 40경 4100조원)에 육박한다. 질 무엑 악사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같은 저축을 놓고 민간과 공공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고 짚었다.

일본의 변화도 큰 변수다. 마이너스 금리와 왕성한 해외 자산 매입으로 오랫동안 글로벌 금리를 눌러주던 나라였지만, 이제는 일본은행(BOJ)이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다. 더불어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경기 부양을 위한 재정 확대를 공공연히 내세우고 있다.

일본의 조달 비용이 1990년대 이후 처음 보는 수준으로 오르면서, 해외에 나가 있던 일본 자금이 본국으로 돌아와 다른 나라 금리까지 밀어 올릴 것이라는 우려가 커졌다.

주요국 총 이자 지출. (자료=파이낸셜타임스, OECD)
주요국 총 이자 지출. (자료=파이낸셜타임스, OECD)
◇빚이 빚을 부르는 악순환 우려

투자자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악순환이다. 이자 부담이 재정을 갉아먹고, 빚이 늘고, 투자자가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하고, 이자가 다시 불어나는 이른바 ‘둠 루프’다.

빠져나갈 길은 세금을 더 걷거나 지출을 줄이는 것뿐이지만 둘 다 정치적으로 어렵다. 닐 메타 RBC블루베이자산운용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정치인들이 “어려운 결정을 내리면 다음 선거에서 쫓겨난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런 결정을 하려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부담은 이미 각국 정치를 뒤흔들고 있다. 영국에서는 2022년 리즈 트러스 전 총리가 재원 없는 감세안을 내놨다가 국채 금리 급등으로 취임 45일 만에 물러났다. 현재 금리는 당시보다 높다. 프랑스는 2024년 총선 이후 총리가 세 번 바뀌었는데 이자 부담이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 프랑스와 독일의 10년물 금리 차이는 0.9%포인트 안팎으로 유로존 재정위기 직후 이후 가장 큰 수준에 가깝다. 모건스탠리는 프랑스의 올해 재정적자가 GDP의 5.4%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 목표치(5%)를 크게 웃도는 수치로, 이자 부담 급증이 주된 요인으로 꼽혔다.

각국은 금리가 낮은 단기 국채를 늘리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다만 에이코 지베르트 스코프레이팅스 이사는 이를 “임시방편”이라며 “충격이 오면 훨씬 빠르게 이자 비용으로 옮겨붙는다”고 경고했다.



◇금융억압·AI 생산성 향상 등 해법 거론

출구가 없지는 않다. 국내 금융기관이 자국 국채를 더 사도록 유도해 금리를 눌러놓는 ‘금융억압’이 한 방법으로 꼽힌다. 인공지능(AI)이 생산성을 끌어올려 빚 부담을 감당할 만한 수준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다. 다만 영국 예산책임처(OBR)는 생산성이 크게 오르는 경우에도 2075년 부채비율이 GDP의 180%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1990년대 캐나다처럼 고통스러운 지출 삭감도 해법으로 거론된다. 다만 정치적으로 감당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타티아나 그레일카스트로 무지니치 글로벌 투자총괄은 “시장은 빚을 줄이려는 정치적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문제로 본다”며 “고삐를 죄지 않으면 상황은 계속 나빠지고, 결국 위기로 끝날 것”이라고 말했다.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