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지 몰린 이란, 확전으로 맞서자…트럼프도 '딜레마'

해외

이데일리,

2026년 September 10일, AM 10:09

[뉴욕=이데일리 성주원 특파원] 미국의 군사·경제·외교 압박에 궁지에 몰린 이란이 굴복 대신 확전으로 맞서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셈법도 복잡해지고 있다. 미국은 이란의 석유 수출과 핵 프로그램을 동시에 압박하고 있지만 이란의 보복이 거세질수록 호르무즈 해협 불안과 국제유가 상승이 미국의 물가와 금리 부담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여기에 이란의 핵 프로그램과 연관됐을 가능성이 있는 지하시설을 군사력만으로 제거하기 어렵다는 분석까지 나오면서 압박을 어디까지 끌고 갈지가 새로운 딜레마로 떠올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7일(현지시간) 메릴랜드주 앤드루스 합동기지에서 전용기 에어포스원에서 내린 뒤 손짓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7일(현지시간) 메릴랜드주 앤드루스 합동기지에서 전용기 에어포스원에서 내린 뒤 손짓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미국은 이란의 핵심 자금줄인 원유 수출을 직접 겨냥하고 있다. 최근 이란 유조선 5척을 파괴한 데 이어 추가 공격까지 예고했다.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지난 8일(이하 현지시간) 콜롬비아 방문 중 “이란은 계속 미 해군 함정을 공격하려 하고 있다”며 “그들이 그렇게 하거나 시도할 때마다 유조선을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란에 대한 국제사회의 핵 외교 압박도 더해졌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9일 이란의 미신고 핵시설 조사 비협조 문제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회부했다.

◇“비례 대응 시대 끝났다”…궁지 몰린 이란의 확전

하지만 이란은 물러서기보다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의회 의장은 지난 6일 “미국의 공격에 비례적으로 대응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말했다.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는 적이 이란 내 2~3곳을 공격할 경우 20개 목표물을 타격하겠다며 추가 공격에 더 강하게 보복하겠다고 경고했다.

이란 지도부가 강경 대응에 나서는 배경에는 갈수록 커지는 경제적 압박이 자리 잡고 있다. 미국의 해상 봉쇄로 이란의 핵심 수입원인 원유 수출이 크게 제한된 가운데 미국의 호위로 일부 선박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면서 이란의 해협 통제력도 약해지고 있다. 이란으로서는 확전을 통해 미국과 동맹국의 경제적 비용을 끌어올리는 것이 남은 핵심 지렛대라는 분석이 나온다.

제네바대학원대학교의 이란 전문가 파르잔 사베트는 “어떻게 주도권을 되찾을 것인가. 확전하는 것이다”라고 진단했다. 이란이 전면전 재개는 피하면서도 군사적 대치를 강화해 국제유가를 끌어올리거나 호르무즈 해협을 다시 사실상 봉쇄하려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 호르무즈를 통과하는 원유 물량은 최근 하루 200만배럴 아래로 떨어졌다. 지난달 30일 전투가 다시 격화하기 전에는 하루 800만~900만배럴까지 회복됐었다. 브렌트유는 이날 배럴당 101달러를 넘어섰다. 골드만삭스는 선박 공격이 격화하면서 브렌트유가 120달러를 넘어설 위험도 커졌다고 경고했다.

확전 위험은 걸프 지역 전체로 번지고 있다. 친이란 후티 반군의 사우디 석유시설 공격 이후 파키스탄은 이란에 후티의 추가 공격을 막으라고 압박하고 나섰다. 사우디아라비아와 파키스탄, 튀르키예 간 군사 공조도 강화되고 있다. 이란과 미국의 충돌이 양국 간 문제를 넘어 중동의 역내 안보구도까지 흔들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9일(현지시간) 이라크 영해에서 드론 공격을 받은 유조선 ‘뉴 안드로스(New Andros)’에 물을 뿌리고 있다. 이라크 항만 당국자들은 해당 유조선이 드론에 피격됐다고 밝혔다. (사진=로이터)
9일(현지시간) 이라크 영해에서 드론 공격을 받은 유조선 ‘뉴 안드로스(New Andros)’에 물을 뿌리고 있다. 이라크 항만 당국자들은 해당 유조선이 드론에 피격됐다고 밝혔다. (사진=로이터)
◇유가 100달러 ‘부메랑’…트럼프도 부담

문제는 이 같은 압박의 비용이 미국에도 돌아온다는 점이다. 국제유가 급등으로 미국의 인플레이션 우려가 다시 커진 가운데 이날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4.85%를 넘어 2023년 11월 이후 최고 수준으로 올랐다. 30년물 금리도 5.3%를 웃돌았다. 뉴욕증시 3대 지수는 사흘 연속 하락했고 시장은 9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상 가능성을 약 60%까지 반영하고 있다.

미국이 이란의 원유 수출 압박을 강화하는 가운데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지렛대로 대응하면서, 유가 상승이 다시 미국의 물가와 장기금리에 부담을 주는 역설이 나타나고 있다. 미 재무부가 이날 장기국채 바이백 상한을 기존 20억달러에서 60억달러(약 8조원)로 3배 확대한다고 발표했지만 시장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금리 상승세를 막지 못했다.

군사적 해법에도 한계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일 백악관에서 “이란은 핵무기를 갖지 못할 것”이라며 “만약 그곳에서 뭔가 진행되고 있다면 우리는 곧 곡괭이산을 타격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9일 공개한 위성영상 분석은 공격만으로 이란 핵 문제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목한 이란의 ‘곡괭이산’ 지하시설에서는 올해 건설 활동이 관측 이래 가장 활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나탄즈 핵시설에서 불과 2㎞ 떨어진 이곳은 화강암 산 깊숙이 조성돼 있다. 아직 우라늄 농축이 진행 중이라는 증거는 없지만 내부시설 건설과 출입구 보강이 본격화한 정황이 포착됐다.

미국이 보유한 최강의 재래식 벙커버스터 GBU-57조차 관통 능력이 약 60m로 알려져 있어 시설이 완성될수록 제거는 더 어려워질 수 있다. CSIS는 “몇 달마다 이란을 반복적으로 폭격하는 것은 불충분하고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군사공격으로 지하시설의 기능을 떨어뜨리거나 일시적으로 무력화할 수는 있어도 이란의 핵 능력을 장기적으로 제거하려면 검증 가능한 외교적 해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로서는 이란을 압박할수록 단기적으로는 타격을 키울 수 있지만 동시에 유가·인플레이션이라는 경제적 비용과 핵시설을 완전히 제거하기 어렵다는 군사적 한계를 함께 떠안게 됐다. 궁지에 몰린 이란이 굴복 대신 확전으로 맞서면서 미국 역시 압박의 강도를 높일수록 출구를 찾기 어려워지는 딜레마에 직면하고 있는 셈이다.

9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 거리에 ‘우리는 트럼프를 죽일 것이다(We will kill Trump)’라는 영어와 페르시아어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는 가운데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사진=AFP)
9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 거리에 ‘우리는 트럼프를 죽일 것이다(We will kill Trump)’라는 영어와 페르시아어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는 가운데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사진=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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