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티, 홍해 '원유 길목' 장악…사우디 우회 송유관마저 멈췄다

해외

이데일리,

2026년 September 12일, AM 04:30

[뉴욕=이데일리 성주원 특파원] 친이란 예멘 후티 반군이 홍해로 향하는 핵심 원유 수송로인 바브엘만데브 해협의 전략 요충지까지 진출했다. 이란의 압박으로 호르무즈 해협 통항이 사실상 마비된 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가 원유를 홍해로 우회 수송하는 데 이용해온 핵심 송유관마저 공격받자 가동을 멈췄다. 중동 원유의 양대 해상 수송로가 동시에 위협받으면서 글로벌 에너지 공급 불안이 한층 커지고 있다.

지난 10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메디나 남동쪽 사막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인근에는 사우디의 동서횡단 송유관 ‘페트로라인(Petroline)’이 지나고 있다. (사진=AFP)
지난 10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메디나 남동쪽 사막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인근에는 사우디의 동서횡단 송유관 ‘페트로라인(Petroline)’이 지나고 있다. (사진=AFP)
11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후티는 이날 바브엘만데브 해협에 있는 페림섬에 진입했다. 사우디가 지원하는 예멘 정부군은 페림섬에서 철수했으며 후티는 섬 맞은편 홍해 연안 도시 두바브도 점령한 것으로 전해졌다.

페림섬은 홍해 남쪽 입구인 바브엘만데브 한가운데 자리 잡은 전략적 요충지다. 섬이 좁은 해협을 두 개의 항로로 나누고 있어 이곳을 장악한 세력은 홍해를 드나드는 선박을 위협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를 확보하게 된다. 후티는 전날에는 전략적 항구도시 모카도 점령하는 등 예멘 홍해 연안을 따라 빠르게 세력을 확대하고 있다.

이번 진격은 미국과 전쟁 중인 이란에 중요한 전략적 이점을 제공할 수 있다. 이란이 아라비아반도 동쪽의 호르무즈 해협을 압박하는 상황에서 이란의 지원을 받는 후티가 반대편 바브엘만데브에서도 선박 운항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호르무즈와 바브엘만데브는 중동산 원유가 세계 시장으로 나가는 핵심 관문이다.

특히 사우디에 타격이 크다. 사우디는 이란전쟁 이후 호르무즈 해협 통항이 급감하자 자국 동부 산유지역에서 생산한 원유를 육로로 홍해 연안까지 옮긴 뒤 수출하는 방식으로 호르무즈를 우회해왔다.

그러나 이 우회로마저 흔들리고 있다. 사우디 에너지부는 이날 호르무즈를 우회하는 핵심 인프라인 동서(East-West) 송유관이 전날 여러 차례 공격을 받아 예방적 조치로 가동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공격으로 여러 명이 다쳤으며 긴급 대응팀이 송유관 안전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동서 송유관은 사우디 동부 페르시아만 인근 산유지역에서 서부 홍해 연안 얀부까지 원유를 운송한다. 호르무즈를 통하지 않고 사우디 원유를 해외로 수출할 수 있는 핵심 대체 통로다. 다만 사우디 정부는 이번 공격의 배후가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최근 후티가 사우디 에너지 시설에 대한 공격을 확대하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송유관 공격을 후티 소행으로 단정할 수 없다.

사우디의 원유 공급은 이미 큰 폭으로 감소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사우디의 8월 원유 공급은 전월보다 하루 230만배럴 감소한 600만배럴로 30여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IEA는 후티 연계 세력의 바브엘만데브 통항 선박 공격 등을 공급 감소의 원인으로 꼽았다.

지난 10일(현지시간) 예멘 하자주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카라옐(Karayel) 무인전투기가 격추된 뒤 잔해가 널려 있다. 후티 반군 측이 공개한 사진이다. (사진=AFP)
지난 10일(현지시간) 예멘 하자주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카라옐(Karayel) 무인전투기가 격추된 뒤 잔해가 널려 있다. 후티 반군 측이 공개한 사진이다. (사진=AFP)
호르무즈 해협 상황도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선박 추적 자료에 따르면 10일 호르무즈를 통과한 선박은 7척으로 9일 11척보다 줄었다. 전쟁 전 하루 약 125척의 대형 상선이 통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극히 낮은 수준이다. 후티 측은 사우디 선박을 제외한 다른 선박의 운항은 안전하다고 주장하면서 “봉쇄에는 봉쇄로, 확전에는 확전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상황이 급박해지자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직접 군사지원을 요청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빈 살만 왕세자는 10일 트럼프 대통령과 최소 두 차례 통화해 후티와 싸우기 위한 미군의 지원을 요청했다. 미국은 당장 직접적인 군사행동에는 나서지 않겠다면서 정보 공유와 표적 선정 등을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이는 사우디의 기존 태도에서 상당한 변화다. 지난 7월 후티와의 긴장이 고조됐을 당시 사우디는 미국에 후티를 자체적으로 상대할 수 있다며 전쟁이 확대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후티가 홍해 연안을 따라 빠르게 진격하고 에너지 시설에 대한 공격까지 확대하자 미국에 직접 도움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외교적 돌파구를 찾으려는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이란은 오는 14일 오만에서 이라크 및 걸프 아랍국가들과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한 상업용 선박 운항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걸프 국가들은 이란과의 잠정 합의를 통해 호르무즈 통항을 정상화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이란이 호르무즈를 압박하는 동시에 후티가 바브엘만데브에서 장악력을 확대하면서 중동의 에너지 수송망을 둘러싼 위기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국제유가는 이번 주 급등해 브렌트유가 배럴당 100달러를 웃돌고 있다. 호르무즈를 피해 홍해로 향하던 대체 수송로까지 차질을 빚을 경우 글로벌 원유 공급 충격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겸 총리가 지난 2025년 11월 18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집무실에서 회담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겸 총리가 지난 2025년 11월 18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집무실에서 회담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