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히트펌프 한 대로 냉방·난방·급탕”…제주, 보일러 없는 집 만든다

해외

이데일리,

2026년 September 16일, AM 11:02

[제주=이데일리 정두리 기자] 지난 14일 찾은 제주시 도남동의 한 단독주택. 마당 한쪽에 놓인 실외기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일반적인 에어컨 실외기보다 몸집이 큰 이 장비는 여름철 냉방만 담당하는 게 아니었다. 집 안의 바닥 난방부터 온수까지, 계절을 가리지 않고 집의 냉난방과 급탕을 책임지고 있었다.

표순재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 개발팀 프로가 지난 14일 제주시 도남동의 한 단독주택에 설치된 히트펌프 시스템 ‘EHS 올인원’ 제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정두리 기자)
표순재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 개발팀 프로가 지난 14일 제주시 도남동의 한 단독주택에 설치된 히트펌프 시스템 ‘EHS 올인원’ 제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정두리 기자)
이 주택은 지난 6월부터 삼성전자가 ‘히트펌프 필드 테스트 랩’으로 활용하고 있다. 실제 사람이 거주하는 가정집에 고효율 냉난방 시스템 ‘EHS 올인원’을 설치하고 장기간 운전하면서 성능과 에너지 비용 등을 검증하는 곳이다.

집 안으로 들어서자 1층과 2층에 벽걸이형 실내기 4대가 눈에 들어왔다. 겉모습은 기존 에어컨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차이는 주택 지하에 있었다. 지하에는 온수와 난방에 필요한 물을 저장하는 축열조와 물 관련 설비를 담당하는 하이드로 유닛이 설치돼 있었다.

이 시스템의 핵심은 ‘열을 만들어내는 것’보다 ‘열을 옮기는 것’에 있다. 히트펌프는 외부 공기의 열을 끌어와 냉·난방에 활용하는 방식으로, 기존 가스보일러를 대체할 수 있는 친환경 난방 기술로 꼽힌다.

현장에서 가장 눈에 띈 기능은 냉방 과정에서 버려지는 열을 다시 사용하는 ‘열회수’였다. 일반적인 에어컨을 켜면 실내의 열이 실외기로 이동하고 실외기에서는 뜨거운 바람이 나온다. 반면 이 시스템은 이 과정에서 발생한 열을 그대로 버리지 않고 물을 데우는 데 활용한다. 냉방과 동시에 급탕에 필요한 에너지를 줄이는 방식이다. 실외기 한 대로 냉방과 난방·급탕을 함께 구현할 수 있는 구조다.

실제 현장에서 확인한 냉방 효율은 4.1 수준이었다. 히트펌프의 효율을 나타내는 성능계수(COP)는 투입한 전기에너지 대비 몇 배의 열에너지를 이동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표순재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 개발팀 프로는 “기존 에어컨의 효율이 약 3.5 수준인 것과 비교하면 20~30%가량 높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 수치만으로 가정의 전기요금 절감액을 단정하기는 아직 이르다. 현재 실증은 여름철 운전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어 난방 수요가 집중되는 겨울철 운전 데이터가 충분히 쌓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히트펌프의 국내 보급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된 우려도 겨울철 성능이다. 외부 기온이 떨어지면 공기에서 가져올 수 있는 열이 줄어들어 성능과 효율이 낮아질 수 있어서다.

표 프로는 “제주 보급사업에 적용되는 히트펌프는 영하 25도에서도 정격 난방 성능을 100% 제공하도록 설계됐다”면서 “지난해 경기 양평에서 진행한 실증에서는 영하 15도의 한파 기간에도 성능과 효율에 문제가 없었다”고 말했다.

표순재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 개발팀 프로가 지난 14일 제주시 도남동의 한 단독주택 지하에 설치된 히트펌프 시스템인 축열조와 하이드로 유닛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정두리 기자)
표순재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 개발팀 프로가 지난 14일 제주시 도남동의 한 단독주택 지하에 설치된 히트펌프 시스템인 축열조와 하이드로 유닛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정두리 기자)
제주에서 히트펌프가 주목받는 배경에는 태양광 발전이 많은 지역적 특성도 있다. 제주에서는 태양광 발전량이 전력 수요를 웃돌 경우 발전량을 줄이는 출력제어가 발생한다. 히트펌프에 연결된 축열조를 활용하면 태양광 발전량이 많은 시간대에 물을 미리 데워두고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다.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많은 시간대의 전력을 열에너지로 전환해 저장하는 방식이다.

제주가 정부와 함께 히트펌프 보급사업에 열을 올리고 있는 이유다. 제주는 올해 단독주택 히트펌프 사업에서 정부 예산 물량의 95%를 배정받아 총 2460가구를 대상으로 진행된다.

아파트 등 공동주택으로의 적용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한 실증도 시작한다. 제주도는 제주개발공사, 한국생산기술연구원, LG전자와 함께 아파트 등 공동주택을 대상으로 전국 최초의 히트펌프 실증사업을 추진한다.

실증 대상은 서귀포시 효돈동에 있는 지하 1층, 지상 7층 규모의 12세대 신효아파트다. 이 아파트는 제주개발공사의 공공임대주택 새단장 사업을 통해 태양광 발전설비와 고효율 전기 인덕션, 스마트 에너지관리체계 등을 도입할 예정이다. 태양광은 세대별 2kW, 공용부 5kW 규모로 설치된다.

이번 실증을 통해 세대별 냉난방과 중앙 급탕을 모두 전기 기반 히트펌프로 전환한다. 주민이 실제 거주하는 공동주택에서 냉난방과 급탕을 전면 전기화하는 첫 사례다.

다만 아파트에 히트펌프를 보급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과제도 있다. 가장 먼저 공간 문제다. 현재 실증 중인 단독주택은 지하에 축열조와 하이드로 유닛을 설치할 수 있지만 아파트는 실외기실과 설비 공간이 제한적이다. 기존 에어컨 실외기에 히트펌프 실외기까지 추가하면 별도의 설치 공간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실외기 한 대에 기능을 통합하고 제품 자체를 소형화하는 것이 공동주택 보급의 중요한 조건으로 꼽히는 이유다.

신축과 구축 아파트의 여건도 다르다. 신축 아파트는 설계 단계에서 실외기실이나 설비 공간을 확보할 수 있지만, 이미 지어진 구축 아파트는 실외기와 물탱크를 설치할 공간뿐 아니라 하중 문제까지 고려해야 한다. 삼성전자 측도 구축 공동주택에는 별도의 해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소음 역시 변수다. 개별 가구용 모델은 저소음 설계를 적용할 수 있지만, 여러 가구에 열을 한꺼번에 공급하는 중앙집중식 방식은 대형 설비가 필요해 소음 문제가 커질 수 있다.

초기 설치비도 보급 확대 과정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친환경·고효율인 히트펌프 보급 계획은 긍정적이나 개별 기구 및 건물의 초기 설치 비용이 기존 가스 보일러 대비 매우 높다”면서 “보급 속도를 높이기 위해선 정부의 재정 지원 규모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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