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 지방선거에 좌파당 대표로 출마하는 엘리프 에랄프 후보. (사진=AFP)
17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오는 20일 치러지는 베를린 지방(주의회)선거를 앞두고 좌파당 지지율은 21.9%로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의 기독교민주연합(CDU·기민당) 20.5%를 근소하게 앞섰다. FT가 독일 여론조사 집계기관 발할레히트 자료를 분석한 결과로, 지난 10일 기준 최신 조사다. 이어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 17.5%, 녹색당 16.0%, 사회민주당(SPD·사민당) 11.1% 순이었다.
기민당은 전통적으로 좌파 색채가 강한 베를린에서 20여년 만에 처음으로 직전 선거를 이겼다. 하지만 인기 없는 현 시장과 메르츠 총리에 대한 전국적 불만에 발목이 잡혔다.
좌파당 대표 후보인 에랄프는 인구 390만명의 베를린에서 튀르키예계 첫 시장에 도전한다. 베를린에는 튀르키예 밖에서 가장 큰 튀르키예 공동체가 있다. 이민자 2세 여성이라는 배경과 세련된 외모, 강경 좌파 공약이 겹치면서 그는 미국 뉴욕의 조란 맘다니 시장과 자주 비교된다. 맘다니 시장은 민주당 소속으로 미국 좌파 진영에 활력을 불어넣은 인물이다.
실제 소통도 이뤄지고 있다. 맘다니 시장의 선거 전략가가 올봄 베를린을 찾아 에랄프 후보와 좌파당에 조언했다. 에랄프 후보는 지난주 기자들에게 “자본주의의 심장부인 뉴욕에서 민주적 사회주의자가 성공한 것은 엄청난 성취”라며 “우리는 많은 의견을 주고받았다”고 말했다.
올해 45세인 에랄프 후보는 1980년 쿠데타 이후 튀르키예를 떠난 좌파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AfD가 연방의회에 처음 진출한 2017년 그날 좌파당에 입당했다. 짧은 앞머리와 문신, 링 귀걸이에 붉은 립스틱이 그의 상징이다. 청바지와 운동화에 항공점퍼를 걸치고 좋아하는 색조인 ‘레드 포피’를 바르는 차림으로 유세에 나선다.
◇기업형 집주인 아파트 22만채 몰수 공약
베를린에서도 좌파당의 최대 무기는 부동산 공약이다. ‘뻔뻔한’ 기업형 집주인들로부터 아파트 22만채를 몰수하겠다는 약속이 젊은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에랄프 후보 역시 목에 ‘임대료 상한’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금목걸이를 차고 다닌다.
베를린은 1980~1990년대 빈 공간과 값싼 집세, 무단 점거로 유명했다. 예술가와 테크노 음악 애호가들이 몰리며 유럽 반문화의 중심지가 됐다. 하지만 지난 20년간 인구가 늘고 민간 자본이 들어오면서 주택시장이 완전히 달라졌고 집세는 치솟았다.
2021년 주민투표에서 베를린 시민 58%가 기업형 집주인 소유 아파트 몰수에 찬성했다. 좌파당은 이를 근거로 독일 증시 대표지수인 닥스(DAX) 상장사 보노비아 같은 부동산 투자사의 자산을 거둬들이겠다는 입장이다. 보노비아는 베를린에만 주택 약 13만채를 갖고 있다.
몰수 비용을 두고는 논란이 뜨겁다. 추산치가 70억유로(약 11조1000억원)에서 360억유로(약 57조1000억원)까지 벌어진다. 좌파당은 시가 받게 될 임대 수입으로 차차 회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에랄프 후보는 베를린시가 보유한 공공주택 40만채에도 상한을 적용하겠다고 공약했다.
재계는 경계심을 감추지 않는다. 몰수 계획이 실행되면 줄소송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다. 은행권은 지난 6월 좌파당이 “불장난을 하고 있다”며 투자와 신규 건설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당 이미지도 변모…옛 동독 연금생활자→도시 젊은 여성
좌파당의 뿌리는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까지 동독을 통치한 공산당 계열 사회주의통일당(SED)이다. 하지만 최근 3년 사이 세대교체가 뚜렷했다. 지도부가 젊은 층으로 교체됐고, 특히 극우 AfD를 정면으로 공격하는 여성 정치인들이 독일 좌파 진영에서 소셜미디어(SNS) 스타로 떠올랐다.
그 결과 지지자가 몰려들었다. 당원 수는 1년 만에 두 배로 늘어 지난해 말 12만3000명에 이르렀다. 마르쿠스 콜베르크 훔볼트대 정치학자는 “좌파당은 시골에 사는 동독 출신 연금생활자들의 정당이었다”며 “이제 전형적인 유권자는 도시에 사는 젊은 여성이다. 정당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했다.
다만 좌파당이 1위를 해도 에랄프 후보가 시장이 될지는 불투명하다. 베를린 시장은 주민이 직접 뽑는 것이 아니라 주의회에서 과반 지지를 얻어야 선출되기 때문이다. 기민당이 다른 정당과 손잡고 과반을 만들면 1위 정당이 밀려날 수 있다. 사민당의 슈테펜 크라흐 후보는 몰수 공약에 강하게 반대해 왔다.
연방 정부처럼 기민당과 손잡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다만 크라흐 후보는 공공 입찰 관련 부패 의혹으로 자택과 사무실이 경찰의 압수수색을 받으며 입지가 약해졌다. 그는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에랄프 후보는 다른 좌파 성향 정당들과 합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는 “결국 우리가 베를린에서 가장 강한 세력이 된다면 우리 정책도 승리한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