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투자하든 AI 리스크 떠안는다"…연기금 분산투자도 무력화

해외

이데일리,

2026년 September 21일, AM 10:09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수백조원을 굴리는 글로벌 연기금과 국부펀드들이 인공지능(AI) 쏠림에 비상이 걸렸다. 주식과 채권, 사모펀드, 인프라까지 어디에 투자하든 결국 AI 리스크를 떠안게 되면서, 위험을 나눠 담는 분산투자가 사실상 무력화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AFP)
(사진=AFP)
◇“어디에나 AI”…시총 40%·회사채 49%·VC 87%

블룸버그통신은 20일(현지시간) AI 관련 자산이 주요 자산군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면서 대형 기관투자자들의 분산투자가 ‘착시’가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 시가총액의 약 40%를 반도체 기업과 대형 클라우드 기업 등 AI 인프라 기업이 차지한다. 아폴로글로벌매니지먼트 집계로는 올해 투자적격 등급 회사채 발행의 49%, 벤처캐피털(VC) 투자의 87%가 AI와 관련돼 있다.

이에 따라 시장에선 ‘AI 리스크’를 줄이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3270억달러(약 454조원)를 운용하는 미국 뉴욕시 퇴직연금(NYCRS)의 몬테 타복스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최근 한 사모펀드의 투자 제안을 거절했다. 운용사 실적은 괜찮았지만 AI 관련 자산 비중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그는 “언제가 충분하고 언제가 지나친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거절할 수밖에 없다”며 “여러모로 내 자리에 있는 사람에겐 공포스러운 시기”라고 토로했다.

같은 기업이 여러 자산군에 걸쳐 있다는 점도 위험을 키운다. 알파벳은 시가총액이 4조달러(약 5556조원)에 달하는 동시에 미상환 부채가 1300억달러(약 181조원)에 이르고, 전 세계 30곳 이상의 데이터센터를 운영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투자하는 이른바 ‘순환 금융’으로 얽힌 기업도 많다.

JP모건이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의 자산 배분을 본뜬 모델 포트폴리오 4개를 분석한 결과, 최근 몇 년간 모두 AI 관련 위험 요인과 뚜렷한 동조화 현상을 보였다. 인베스코가 국부펀드 90곳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절반 이상이 AI 투자의 최대 위험으로 ‘시장 집중’을 꼽았다.

리사 샬렛 모건스탠리웰스매니지먼트 CIO는 “언젠가는 인프라가 충분해지는 시점이 온다”며 “철도든 인터넷이든 역사적으로 수없이 봐왔다. 반드시 일어날 일이고, 문제는 언제냐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연기금들 “우리 AI 노출 얼마?”…측정 나서

연기금들은 자신이 AI에 얼마나 노출돼 있는지 파악하는 데 나섰다. 940억달러(약 131조원) 규모의 LA카운티 공무원퇴직연금(LACERA)은 지난 5월 이사회에서 AI 관련 우려가 제기되자 자체 점검에 착수했고, 전체 자산의 8~19%가 AI에 노출돼 있다고 추산했다.

다만 AI 노출을 정확히 측정하기는 쉽지 않다. 자산군이나 업종, 지역과 달리 AI 노출에는 표준 정의가 없어서다. 반도체 기업처럼 AI 그 자체인 곳부터 AI 기술을 도입하기만 한 기업까지 범위가 넓다. 미국 최대 공적연금인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캘퍼스)은 비상장 대형 AI 기업에 투자하면서 AI 노출이 커졌고, 이사회가 AI 위험 평가 체계 마련을 요구했다.

일부 연기금은 자산군 구분 없이 포트폴리오 전체를 하나로 보고 AI 같은 테마 노출도를 추적하는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하지만 AI가 워낙 빠르게 변해 아무리 정교한 분석도 금세 낡는다는 한계가 있다.

◇피하자니 수익 놓치고…커지는 딜레마

그렇다고 AI 비중을 무작정 줄이기도 어렵다. 블룸버그인텔리전스의 글로벌 AI 관련주 지수는 지난 2년 가까이 시장 전체보다 연평균 11%포인트 높은 수익률을 냈다. 핀란드 연기금 엘로의 카리 바타넨 자산배분 총괄은 “적절한 자산군보다 적절한 테마를 포트폴리오에 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위험은 이미 현실로 나타나기도 했다. 지난 7월 막대한 AI 투자가 높은 주가를 정당화할 수 있을지 의문이 커지면서 반도체주가 급락했고, 빅테크 회사채 가격도 떨어졌다. 유명 헤지펀드들이 줄줄이 큰 손실을 봤다.

NYCRS는 외부 운용사들에 산업 구조 변화와 과잉 투자 위험을 경고하는 한편, 펀드별 소프트웨어 투자 한도 같은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타복스 CIO는 “우리가 투자하는 거의 모든 펀드가 결국 AI 노출을 더 늘릴 것이라는 걸 안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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