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동 건 대미투자, 꽉 막힌 실무채널

해외

이데일리,

2026년 September 22일, AM 04:31

[이데일리 김영환 정두리 성주원 기자] 2018년 국내 섬유업체들은 미국 수출을 과정에서 난감한 상황에 놓였다. 인조섬유 직물을 만드는 데 필요한 ‘큐프라암모늄 레이온 원사’를 한국은 물론 미국에서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인데, 제3국산 원사를 사용하면 미국의 관세 혜택을 받을 수가 없어서였다.

(그래픽= 김정훈 기자)
(그래픽= 김정훈 기자)
해법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협의 틀 안에서 나왔다. 한국 정부가 2018년 업계의 애로를 반영해 원산지 기준 개정을 요청한 뒤 양국은 긴 협의를 이어갔고, 2024년 3월 제3국산 큐프라암모늄 레이온 원사를 사용하더라도 일정 요건을 갖춘 직물은 원산지 기준을 충족할 수 있도록 규정을 바꾸기로 합의했다. 기업이 현장에서 부딪힌 통상 장벽을 양국 실무협의를 통해 풀어낸 사례다.

한미 관세협상의 핵심인 대미투자가 사업 선정과 집행 단계에 들어서면서 이 같은 실무 협의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사업 선정부터 자금 집행, 공장 건설과 현지 생산·운영까지 최소 10년이 걸리는 만큼 세제와 인허가, 현지조달, 공급망 등 양국이 조율해야 할 현안이 계속 발생할 수 있어서다.

하지만 정부는 이미 구축한 실무 협상 테이블인 FTA 협의체마저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FTA 이행을 총괄하는 공동위원회는 2024년 3월 제7차 회의를 마지막으로 2년 넘게 열리지 않았다. 무역구제·농업·환경·금융서비스 등 분야별 현안을 다룰 수 있는 위원회와 작업반도 20여개 마련돼 있지만 역시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이 무역확장법 232조와 무역법 301조 등 자국법을 활용해 FTA 밖에서도 통상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기존 협의 틀의 가치가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오히려 FTA 실무 협의채널 등을 활용해 미국과 지속적으로 실무진 협상을 이어갈 수 있다고 제언한다.

관세율이나 대규모 투자처럼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사안은 정상·장관급에서 다루되 자동차·섬유·디지털 규제처럼 기술적·제도적 조율이 필요한 현안은 실무 협의체에서 상시적으로 논의하는 ‘투트랙’ 대응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근 관세 문제에 양국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FTA 협의체가 기존 의제의 이행 여부를 점검하는 수준에 머무른 측면이 있다”면서 “미국이 얘기하는 비관세 장벽이라든가, 한국의 쿠팡 문제 같은 디지털 플랫폼 관련 규제 문제 등은 경쟁 챕터와 연관이 있는데 각 챕터에서 논의해 협의체를 실질적인 현안 논의의 장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FTA 협의체의 상시 가동과 함께 대미투자를 계기로 미국 정부·의회와의 소통 채널을 장기적으로 구축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제현정 한미경제연구소(KEI) 시니어 특별연구원(펠로)은 “한국 정부와 기업들은 단기적인 처방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체질 개선에 나서야 한다”며 “전통적 공급망 모델에서 탈피해 미국 현지 투자를 교두보 삼아 미 행정부와 의회 등과 제도적 소통 채널을 긴밀히 구축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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