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더는 못 믿어"…걸프국, 이란과 관계 재설정 한목소리

해외

이데일리,

2026년 September 22일, PM 03:48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카타르와 아랍에미리트(UAE) 등 걸프 국가들이 이란과의 관계를 새로 설정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으로 이란의 공격에 얼마나 취약한지 드러난 데다, 전쟁에 발이 묶인 미국을 더는 믿고 기댈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셰이크 모하메드 빈 압둘라흐만 알사니 카타르 총리 겸 외무장관. (사진=AFP)
셰이크 모하메드 빈 압둘라흐만 알사니 카타르 총리 겸 외무장관. (사진=AFP)
21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셰이크 모하메드 빈 압둘라흐만 알사니 카타르 총리는 전날 유엔총회 부대행사로 열린 카타르 경제포럼에 참석해 지난 2월 미국과 이스라엘이 시작한 이란 전쟁을 걸프 국가들에 대한 ‘경종’(wake-up call)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걸프 지역이 하나로 책임감 있게 행동해 이란과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한다”며 “걸프 국가들과 이란을 하나로 묶어 누구도 서로를 위협하지 않도록 보장하는 안보 틀이 없다면 이 지역은 예전처럼 굴러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와르 가르가시 UAE 대통령 외교고문도 별도 행사에서 아랍 국가들과 이란의 대화를 촉구했다. 그는 이란과 미국의 협상이 “사실상 진전되지 않고 있다”며 “우리 모두가 원하는 지역이 어떤 모습인지에 대해 새로운 사고방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역내 안정 논의가 미국과 이란 사이에서만이 아니라 “이란과 아랍 차원에서도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 다른 연설에서도 “이란은 여전히 우리의 이웃”이라며 “지리적 여건상 관여 외에 대안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도 전쟁이 발발한 이후 중동 국가들과 이란 간 불가침조약 구상을 동맹국들과 논의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전쟁을 말렸던 걸프 국가들이 결국 전후 이란과의 관계를 스스로 관리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사남 바킬은 “걸프 지도자들은 외부 보증인(미국)을 예전만큼 믿을 수 없고, 이란과의 관계도 불안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믿을 만한 미국이라는 닻 없이 스스로 안보를 관리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이란이 약해진 만큼 중동 국가들이 안보 질서를 직접 주도할 기회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걸프 국가들의 안보 부담은 여전하다. 사우디는 최근 몇 주 동안 친(親)이란 성향의 예멘 후티 반군으로부터 거의 매일 미사일과 드론 공격을 받고 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함께 공습에 나서달라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요청을 거절했다. 대신 앤디 버넘 영국 총리가 이날 사우디의 방어를 돕기 위해 공군 공중급유기 투입을 승인했다.

UAE는 전쟁 초기 약 3000발의 미사일과 드론 공격을 받으며 걸프 국가 가운데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이란을 수십 차례 공습하며 가장 강경하게 맞섰지만, 이후 중동의 금융·무역·관광 허브로서 지위를 지키기 위해 긴장 완화로 돌아섰다. 이달엔 셰이크 칼리드 빈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하얀 아부다비 왕세자가 인도에서 열린 브릭스(BRICS) 정상회의를 계기로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과 만났다.

아랍 국가들의 더 큰 고민은 약해졌지만 여전히 위협적인 이란이다. 이란은 역내 곳곳을 타격하고 걸프 지역 수출입의 핵심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의 해상 운송을 틀어막을 수 있는 능력을 입증했다.

카타르는 미·이란 전쟁을 멈추기 위한 외교 노력의 중심에 서 있다. 미국과 이란 사이에 직접 협상은 없지만, 중재국들이 물밑 채널을 유지하고 있다. 아랍 정상들은 이번 주 유엔총회 기간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 사태를 논의할 예정이다.

페제시키안 대통령과 아바스 아락치 이란 외무장관도 유엔총회에 참석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말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이란 대통령과 “아마도” 만날 의향이 있다며 “결정 모드”에 있다고 말했다. 선택지로는 이란을 “쓸어버리거나” 경제적으로 “썩게” 두거나, 합의를 하는 것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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