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을 놓고 미국의 전직 고위 당국자와 외교 전문가들이 내린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렸다. 강한 압박을 통해 상대의 양보를 끌어내는 외교가 성과를 내고 있다는 평가가 있는 반면, 미국이 가진 신뢰와 국제적 권위를 갉아먹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그러나 한 가지에는 이견이 거의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남은 임기 2년 동안에도 지금의 방식을 바꾸지 않을 것이며, 동맹국들은 이에 맞춰 자체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3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사우스론에서 전용헬기 마린원에 탑승하기 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다. (사진=로이터)
◇코츠 “압박이 실제 성과 만들어”…눌런드 “신뢰 훼손”
트럼프 대통령을 가까이서 경험한 코츠는 트럼프의 이번 유엔 연설을 지난해보다 한층 분명해진 ‘목적의 선언(declaration of purpose)’으로 평가했다. 전쟁 중인 대통령으로서 지난 6개월을 보낸 데다 자신의 마지막 선거가 될 중간선거를 앞두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어조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코츠는 트럼프식 압박 외교에도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국제기구와 동맹을 향한 비전통적인 압박이 충격을 주기는 하지만 유엔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등 결과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냈다는 주장이다. 중동 국가들 역시 미국의 보호와 참여를 확보하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에 상당한 양보를 할 준비가 돼 있다고 평가했다.
눌런드의 평가는 달랐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제재와 관세부터 군사력까지 미국이 가진 수단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며 ‘미국 우선주의’를 밀어붙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취임 당시 미국을 국제질서의 ‘피해자’로 규정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이제는 자신이 그 질서를 바꿔 미국을 ‘승자’로 만들었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미국의 신뢰가 훼손될 수 있다는 점이다. 눌런드는 “대통령이 말할 때 미국의 신뢰성이 걸려 있다”며 각국이 미국 대통령의 발언을 들을 때마다 ‘그가 정말 그 말을 의미하는가’를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예측 불가능성이 동맹을 약화시키고 다른 선택지를 찾도록 만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
컬럼비아대 국제공공정책대학원(SIPA) 산하 국제정치연구소(IGP)가 지난 24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 이해하기’를 주제로 웨비나를 진행하고 있다. 오른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빅토리아 코츠 헤리티지재단 부회장과 빅토리아 눌런드 전 국무부 정무차관, 기디언 로즈 컬럼비아대 선임강사, 대니얼 베나임 IGP 전무이사(사회자). (사진=컬럼비아대 IGP 웨비나 영상)
로즈는 더 비판적이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 집권 아래 미국의 물리적인 힘 자체가 약해진 것은 아니지만 국제사회에서 미국이 행사해온 ‘권위(authority)’는 훼손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우리의 힘은 반드시 변한 것이 아니지만 우리의 권위는 변했다”고 말했다. 각국이 미국 대통령의 말보다 실제 정책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정책 역시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는 것이다.
로즈는 이를 ‘포스트 아메리칸 월드(post-American world)’로의 전환이라고 표현했다.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들이 미국의 리더십을 기다리기보다 스스로를 지켜야 하는 ‘자조(self-help)의 세계’에 대비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흐름이 장기화하면 각국이 독자적인 안보 수단을 찾게 되고, 궁극적으로 핵무장 필요성을 고민하는 국가까지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한 위협이 실제 협상력을 높이는지를 놓고도 시각이 갈렸다. 코츠는 “트럼프가 보여준 것은 이를 행동으로 뒷받침할 의지가 있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로즈는 이란을 초토화하겠다는 위협을 사례로 들며 반복적인 극단적 위협이 오히려 신뢰성을 떨어뜨려 다음 위협을 상대방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AI에서도 충돌…결론은 “트럼프는 안 바뀐다”
인공지능(AI)을 둘러싼 평가도 엇갈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엔 연설에서 AI 경쟁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과도한 규제가 미국의 경쟁력을 제약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코츠는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쉬운 길을 택한 것이 아니라고 평가했다. 데이터센터와 AI가 일자리와 환경을 위협한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이를 이유로 미국의 미래를 속박해서는 안 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판단을 높이 평가했다.
눌런드는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이 기회를 놓쳤다고 봤다. AI가 전 세계가 공동으로 대응해야 할 문제인 만큼 유엔 연설을 통해 투명성과 정보 공유, 가드레일 구축을 위한 미국의 리더십을 제시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을 바라보는 세 사람의 평가는 달랐지만 공통점도 나타났다. 트럼프 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자신의 외교 방식을 바꾸지 않을 것이며 다른 국가들도 이에 적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코츠는 “트럼프 대통령은 80세이고 변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것이 말 그대로 그가 누구인지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동맹국들이 스스로 회복력을 높이고 자체 역량을 구축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평가했다. 눌런드 역시 동맹들이 자체 방위와 에너지 다변화 등을 통해 회복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81차 유엔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