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제47회 ‘라이츠 포토그래피카 옥션’에서 650만 유로(한화 약 110억 2300만원)에 낙찰됐던 프란치스코 교황 한정판 M-A 모델. (사진=라이카 카메라)
안드레아스 카우프만 라이카 이사회 의장이 라이카를 17억 달러로 인수했을 당시만 해도 전 세계 카메라 시장은 필름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흐름 속에서 파산 위기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현재 약 6억 5000만 달러(약 8800억원) 매출 규모로, 생존에 성공했다. 유럽 제조업의 흔치 않은 사례다. 카우프만 의장은 WSJ에 “초고가 명품에 특화한 방식이 유럽내 모든 제조업체에 일률 적용될 순 없지만, 대형기업에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기술의 급변 속에서 많은 유럽 제조업체들은 경쟁에서 도태돼 왔다. 라이카도 초반에 마찬가지였다. 일본에서 디지털 카메라 대중화에 나서면서 변화를 이끌었지만 라이카 경영진은 이를 일시적 해프닝으로 치부했다. 이에 카우프만 의장은 새로운 경영진을 영입하고 기술 투자에 나서며, 2006년 라이카 최초의 디지털 레인지파인더(RF)식 카메라 ‘M8’를 선보였다. M8의 성공은 라이카를 디지털로 바꿔놓는 기점이 됐다.
그럼에도 라이카는 전통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기술자들이 작업대에 앉아 렌즈를 연마하고 직접 붓칠을 한다. 옆에선 최첨단 기계가 유리 소재를 압축해 렌즈로 가공한다. 라이카 공장에서 생산되는 M모델은 하루 45대에 불과하다. 이같은 공정 탓에 제품 가격도 비싸다. 최신 디지털 카메라 모델인 ‘M11’의 경우 1300만원(한국 가격) 이상이고, 필름카메라 ‘MP’도 1000만원을 넘긴다.
카우프만 의장은 WSJ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방식은 일반 제조업의 표준이 되긴 어렵지만, 유럽에서 무언갈 생산하는 사람이라면 소재와 디자인, 두 가지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안타깝게도 현재 유럽 자동차들은 하나같이 디자인이 부자연스러워 사고 싶은 차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디지털화만이 부활의 전부는 아니었다. 카우프만 체제 아래 라이카는 딜러 중심의 유통망을 자체 통제망으로 흡수해 갤러리를 겸한 전용 매장 120곳을 개장했다. 현재 라이카 매출의 50%가 이 같은 직영 유통 채널에서 발생한다.
또한 라이카는 중고 제품이 신제품보다 비싸게 거래되는 특성을 활용해 중고 시장도 적극 공략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고(故) 프란치스코 교황이 소장했던 ‘M-A’(필름카메라) 모델이 경매에서 약 750만 달러(약 100억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매장을 통한 공식 리퍼비시 제품 판매도 확대하고 있다.
현재 카우프만 의장의 라이카는 새로운 확장도 추진 중이다. 우선 중국과의 협력이다. 중국 하이센스와 공동 개발한 홈 시네마 프로젝터 ‘시네 1’, 샤오미와 협력해 선보인 2000유로(약 300만원) 상당의 사진 특화 스마트폰 ‘라이츠폰’이 대표적이다. 지난 4월에는 디지털 카메라에 탑재할 자체 센서 개발을 위해 중국 자이픽셀과의 협력을 발표하기도 했다.
라이카는 카메라에 이어 최근엔 손목시계 시리즈도 선보이고 있다. 사진은 'ZM 11'. (사진=라이카 카메라)
그럼에도 라이카가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기류는 명확하다. 라이카는 44세의 컨설턴트 출신 안드레아스 볼을 신임 CEO로 선임했다. 볼 신임 CEO는 영상 기능이 강화된 제품을 늘리고, 젊은 고객층을 겨냥한 저가형 라인업을 출시하겠다는 구상이다.
지정학적 리스크도 새로운 과제다. 2021년에는 첫 스마트폰 파트너였던 화웨이가 미국의 제재 대상에 오르면서 협력을 중단해야 했다. 미국이 중국산 부품 수입을 금지하거나 핵심 공급업체를 제재할 경우,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거대 시장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을 위험이 크다. 카우프만 의장은 “두 강대국 간의 충돌로 라이카가 무너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면서 “라이카는 1920년대 초하이퍼인플레이션 시기부터 수많은 위기를 겪어왔지만, 언제나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찾아냈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