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든 빌린다"…AI 빅테크 채권 680조원, 국채와 자금 쟁탈전

해외

이데일리,

2026년 September 29일, PM 03:02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인공지능(AI) 투자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려는 미국 빅테크들이 전 세계 채권시장을 휩쓸고 있다. 국채와 투자금을 놓고 경쟁하는 양상까지 벌어지면서 다른 기업은 물론 각국 정부의 자금 조달 방식까지 바꿔놓고 있다.

28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골드만삭스 집계 결과 올해 투자자들이 AI 관련 기업들에 공급한 자금은 약 5000억달러(약 680조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아마존·알파벳·메타·마이크로소프트(MS)·오라클 등 초대형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는 ‘하이퍼스케일러’가 약 2000억달러(약 272조원)를 차지했다. 이들은 앞으로 수년간 1조달러(약 1360조원)가 넘는 채권을 새로 발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차입 규모도 전례가 없다. 지난주엔 일본 소프트뱅크가 오픈AI 투자 자금을 마련하려고 110억달러(약 14조9600억원)가 넘는 투기등급 채권을 발행해 역대 최대 기록을 세웠다. 시장에선 1960년대 유로본드 시장 탄생 이후 가장 큰 변화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사진=AFP)
(사진=AFP)
◇“얼마나 빌릴 수 있나”…캐나다·호주·스위스까지 노크

채권 발행이 본격화한 지난해, 빅테크들은 은행들에 “1년 동안 얼마나 발행할 수 있다고 보느냐”고 물었다. 미국뿐 아니라 통화를 가리지 않고 전 세계에서 빌릴 수 있는 최대치를 알고 싶어 했다고 스콧 슐트 바클레이스 투자등급채권 신디케이트 공동 대표는 전했다.

첫 무대는 12조달러(약 1경6320조원) 규모의 미국 회사채 시장이었다. 하지만 물량이 한꺼번에 쏟아지자 투자자들은 더 높은 금리를 요구했고, 빅테크의 조달 비용도 올라갔다. 그러자 빅테크들은 해외로 눈을 돌렸다.

아마존은 지난 6월 캐나다달러 표시 채권으로는 역대 최대인 140억캐나다달러(약 13조3854억원)를 발행했다. 불과 몇 주 앞서 알파벳이 세운 종전 기록을 단숨에 갈아치웠다. 알파벳은 지난달 호주에서 종전 최대의 2배가 넘는 55억호주달러(약 5조2136억원)를 조달했고, 지난 2월엔 스위스프랑 채권 역대 최대인 31억스위스프랑(약 5조457억원)을 발행했다. 같은 달엔 100년 만기 파운드화 채권을 포함해 315억달러(약 42조8400억원) 규모의 채권도 팔았다. 아마존도 이달 처음으로 파운드화 채권을 발행했다.

그렉 피터스 PGIM 공동 최고투자책임자(CIO)는 “큰 흐름은 ‘어디서든, 모든 곳에서’”라며 “시장에 쏟아지는 채권 물량이 역사적이다. 판을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 무대는 유럽이다. 메타는 올가을 처음으로 유럽 채권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레한 라티프 모건스탠리 신용거래 글로벌 대표는 “빅테크 채권을 받아줄 유로화 시장의 여력은 아직 손도 안 댄 상태”라고 말했다. 반면 크리스티안 한텔 본토벨 글로벌 회사채 대표는 “스위스·영국·캐나다 같은 작은 시장은 곧 한계에 가까워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채와 ‘자금 쟁탈전’…다른 기업·정부도 ‘눈치’

빅테크의 차입 행렬은 국채시장과도 부딪치고 있다. 케빈 워시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과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빅테크들이 31조달러(약 4경2160조원) 규모의 미 국채시장과 자금을 두고 경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지난주에 이어 이날 연 5.241%까지 치솟아 2007년 6월 이후 최고치를 새로 썼다. 유럽중앙은행(ECB) 직원들도 블로그에서 “빅테크 차입 급증으로 다른 기업과 산업의 자금 조달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투자자들의 셈법도 달라졌다. 마리옹 르 모르에덱 피델리티인터내셔널 채권 CIO는 “빅테크 30년물을 살지 국채를 살지 고민하는 게 예전엔 없던 일”이라며 “빅테크 채권은 국채와 경쟁한다”고 짚었다. 다만 애덤 보섬리 HSBC 부채자본시장 글로벌 대표는 “국채 쪽 규모가 훨씬 크다”며 빅테크 발행이 국채 금리를 지속적으로 끌어올린다고 보긴 무리라고 반박했다.

다른 발행자들은 이미 ‘눈치 보기’에 들어갔다. 기업들은 빅테크와 발행 시기가 겹치지 않도록 일정을 조정하고, 만기도 짧게 잡는 추세다. 데이비드 브라운 뉴버거버먼 투자등급채권 공동 대표는 “대형 AI 발행이 예정되면 매수를 미루거나 여력을 남겨둔다”고 말했다.

아베드 람지 TD증권 캐나다 부채자본시장 대표도 캐나다 기업들이 대형 거래와 맞붙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며 “시장 진입 시기가 예전보다 훨씬 중요해졌다”고 전했다.

헨리에타 파크먼트 올스프링글로벌인베스트먼트 채권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일부 국가들도 AI 발행 시기를 피하거나 만기를 줄이는 것을 검토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블랙록 분석가들은 “막대한 정부 차입이 늘어나는 AI 자금 수요와 맞부딪치면서 조달 비용이 높은 수준에 머물 수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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